기자의눈> ‘주민소환제’ 이름으로 시장과 시의장의 점입가경 행보를 지켜본다.
기자의눈> ‘주민소환제’ 이름으로 시장과 시의장의 점입가경 행보를 지켜본다.
  • 강찬호
  • 승인 2007.12.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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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1. 시의장은 의회 민주주의의 ABC를 아는가?

점입가경이다. 시민단체는 광명시장과 광명시의회 관계를 놓고 이렇게 표현했다. 시의장은 의회의 견제 기능을 포기했다. 한 시의원은 시의장의 행보에 대해 의회 독립성과 의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로 규정했다. 한 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가? 시의회와 시 집행부의 견제 기능과 긴장이 보이지 않는다. 일을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시와 시의회 간에 협조관계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시의회의 집행부 견제라고 하는 원칙의 훼손이 없는 전제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시의장을 비롯해 몇몇 의원들의 행보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식이다. 뭐가 좋은 것이고 뭐가 안 좋은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없다. 이를 두고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시민들이 의원들에게 무엇을 위임한 것인지에 대한 기본 사명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왜 삼권의 분립이 중요한지, 삼권분립이 민주주의 ABC인지를 모르는 듯한 행보다.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경우 자질론이 등장한다. 자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이들을 잘 못 뽑은 것이다.

그래서 보완책이 등장했다. 선거에 대한 보완장치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 주민소환제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그러나 그 선거마저도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그 보완책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선거라고 하는 방법을 이용, 주민소환제를 도입했다.

시 집행부와 시의회의 긴장관계가 1차적이라고 한다면, 선출직 정치인과 주민소환제는 2차적인 긴장관계다. 이러한 삼자의 긴장관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올곧게 정착하는데 기본이다. 그런데 이런 긴장관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시장은 시의장에게 시설관리공단 조례 통과를 요구하고, 조례 통과가 안 된다면 의정비를 인상해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의장은 특정 시의원에게 이런 사실을 거론하고 왜 해당 조례를 통과시켜주지 않았냐며 면박을 줬다. 해당 시의원은 모멸감을 느꼈고, 독립기관으로써 시의원의 위상을 거론했다. 시의원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스스로 지키려고 한 것이다. 의회의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자,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다.

시민단체는 이런 시의회 모습을 규탄했고, 자질 없는 시의장의 의장직 사퇴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의회에 방문해 입장을 전달했다. 시의회 스스로 권위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시장은 시의회 사무국장을 시 간부회의에 불러 시설관리공단 조례 부결을 질타했다. 이어 시의회 동향보고를 요청했다. 해당 사무국장은 이를 거부했다. 시장은 시의장에게 사무국장의 인사를 요청했고, 의장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본질과 현상에 대한 구분이 없다. 본질을 가린 채 진행돼는 정치적 인사에 대해 알고도 모르쇠인지, 알면서도 공모를 한 것인지. 아직은 양심선언이나, 진상조사가 진행된 것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또 다시 시민단체는 시의장의 행보를 질타했고, 의장직 및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시장에 대해서도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반복된 요구는 소모전이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자질론’이다. 만약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결국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의회 내부의 개혁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제도로 보장하고 있다. 주민소환제의 이름으로.


점입가경2. 공식과 비공식의 발언 경계가 모호한 이 시장의 화법, 어디까지? 

점입가경이다. 이효선 시장이 쓰리쿠션을 날렸다. 이미 이 시장의 화법은 세간의 화제가 된지 오래고,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리고 면역력이 생겼다. 원래 저러니까. 그런데 그것은 묵인이 아니다.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회피도 아니다.

이해라면 이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소극적인 이해다. 아니 피곤하고 지쳐서 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 그러니까’는 이런 맥락에서 통용되는 것이다. 마지못해 이해한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이 시장의 화법에 대해 주변의 평가를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이 시장의 화법은 취임 초부터 전국을 강타하는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여론의 뭇매와 특정언론에 주민소환제1호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언론의 조작이고 왜곡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문제가 가벼워졌다. 이 시장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당장 주민소환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치단체장으로서 일을 해야 하는 시장의 직분을 시민사회가 용인한 것이다. 이 일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는 역사에 맡기자.

그리고 이 시장의 화법은 다시 이곳저곳에서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이 시장의 화법이 구설수에 오르긴 하지만 폭발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언론의 작동 기능이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시장이 신중한 화법을 사용하는 것인가.

아마 소극적인 이해와 용인 그리고 회피일 것이다. 그리고 면역기능 탓일 것이다. 취임 초 전국을 강타했던 이슈보다 더 큰 사안이 터져야 쟁점이 되어 수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또 어찌된 일인가. 이 시장의 발언이 또 소극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일을 저질렀다. 한 큐에 쓰리쿠션이다. 이 시장의 입은 특정인을 향했고, 그 특정인은 개인이자 동시에 한 시민단체의 후원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지역의 전 향우회 회장이기도 했다.

이 시장의 발언에 특정인은 발끈했고, 두 조직도 발끈했다. 개인 차원의 대응과 두 단체의 대응이 동시에 이뤄졌다. 3일 이들은 시장실을 방문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시장의 언행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이날 자리에서 이들에게 사과했다.

부글부글 끊는 냄비는 방심하면 물이 금방 끓어오르기 마련이다. 놓치면 넘친다. 얼른 뚜껑을 닫거나, 불을 줄여야 한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방심한 사이 새어 나온 말은 이미 강을 건넜다. 수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일로 번지기 전에. 시장은 다급했다. 그리고 이날 국면은 일단 넘어 가는 듯하다.

자치단체장인 시장이나 시의회 의장의 행보가 점입가경인 이유다. 이들이 또 무슨 일을 연출할 것인지, 여전히 냄비는 끓고 있고 의장은 자리를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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