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토양’을 가꾸고 싶다.
‘진보의 토양’을 가꾸고 싶다.
  • 강찬호
  • 승인 2008.06.1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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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람들> 광명의 진보 ‘토박이’, 박종기씨 인터뷰.

광명에도 ‘진보’ 토박이가 있다. 박종기(43)씨다. 광명에서 태어난 경우는 아니기에 ‘원조’ 토박이는 아닐 수 있다. 소위 토박이 그룹에 포함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가 광명에 머문 것은 올해로 38년째다. 70년도에 이사와 지금까지 광명에서 살고 있다. 이쯤이면 토박이로 봐줄만하다.

그런데 그는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그 쪽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민노당 광명지역위원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광명지역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그는 무대 옆자리를 지키며 행사 진행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행사 진행을 위해 바퀴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몸으로 현장을 누비는 그다. 박종기씨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 전날인 9일 저녁에도 그는 지역 곳곳에 6.10 촛불문화제를 알리는 포스터를 부착했다.

그가 지역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것은 지난 해 10월부터다. 광명지역에서 진보정당인 민노당을 지지하는 표를 모으기 위해 지난 대선과 총선 캠프에서 발로 뛰었다. “대선을 치르면서 광명지역의 유권자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고, 지역 선거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총선을 치르면서 당초 목표보다 낮은 지지율이 나온 결과에 대해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활동해 온 지난 4년에 대해 당과 인물 그리고 당 조직에 대해 지역 유권자들이 엄중하게 평가를 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총선 결과에 대해 아직도 정확하게 평가를 내리기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아쉬움도 있다. 당이 분열됐고, 4년 전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뛰었던 후보들이 지역에 남아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고, 당 조직의 활동력도 약해져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상황의 후퇴에 대해 낙심하지 않는다. 광명지역은 수도권 위성도시 중에 한 곳이지만 진보의 토양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그런 예로 “지난 총선에서 범 진보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이 15%를 보이고 있다”며 “유권자 의식에 부응하는 진보진영의 지역 활동이 저조했다”고 진단했다. 2006년도 진보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와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왜 다시 지역 활동으로 돌아 온 것일까. 물론 그가 지역 거주지를 옮긴 것은 아니다. 그는 지역에 컴백하기 전 7년 동안 재능교육에서 일하면서 노조활동을 했다. 4천여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재능노조에서 문화부장, 노조위원장도 역임했다. 그리고 지난해 광명지역으로 활동지를 다시 옮겼다.

“광명은 가능성이 있는 도시다. 젊고 새로움을 추구할 토양을 갖춘 곳이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씨를 뿌렸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활동한 경우는 드물다. 거쳐 간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새롭게 지속적으로 토양을 만들고 싶고, 해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고향 같고 편안한 곳이다. 안 된다는 것보다 길게 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진보의 ‘씨’를 뿌리는 것만이 아니라 ‘열매’를 보고 싶다.” 그가 지역에 머무는 이유다. 광명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고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 만큼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 6.10 서울 시청 앞 거리 집회 현장에서.

박종기씨를 인터뷰한 날은 공교롭게도 6월 10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87년 6월 항쟁 당시 그는 대학교 3학년 학생으로 아현동 고가도로에 있었다. 건국대학교 사학과 학생으로 단과대 학생회 활동을 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6월 항쟁의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시대도 달라졌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만은 한결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 단기복무를 마친 후 그는 광명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광명시민단체 1호인 광명만남의집에서 환경사업으로 재활용비누 만들기와 빈병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활동을 했다. 광명내일신문과 광명어린이신문, 시민신문 등에서 지역언론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다. 그 후 학습지 회사 노조 활동을 거쳐 다시 지역에서 진보의 토양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노조 일을 하면서 지역에서의 활동기간에 단절 기간이 생겼다. 그 사이 그가 바라보는 지역의 시민사회 모습도 새삼 변했음을 최근 느끼고 있다. 시민의식을 고양하고, 시민들이 주체가 돼 스스로 나서고 참여하면서 사회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그의 눈에 보이는 시민사회는 다소 약해졌거나 흐름이 다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시민사회단체가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고.

“힘들수록 돌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시민사회단체가 방법과 영역은 달리하더라도 경쟁적 관계가 아닌 보완과 협력의 관계가 돼야 한다”며 ‘실질적인 교류’를 주문했다. 또 박씨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민노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내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며, “그것은 실질적인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일에 매진할 계획이라며 마음을 추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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