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 '
강찬호(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
2016-08-24 광명시민신문
CMIT/MIT 원료 사용 업체에 대한 검찰조사를 실시하라
이렇듯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은 국정조사를 경과하면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숨 가쁘게’라는 것은 적어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의 시각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문제가 드러나고 그러한 진실에 근거해 이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할 진영에서는 여전히 문제의 축소와 회피,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최대 가해기업인 알비의 태도가 그렇다. 영국 본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수준에 근접해 있는 듯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송을 핑계로 숨고 있다. 국회 특위 위원들은 알비의 본사 책임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2000년~2001년 알비가 옥시를 인수할 당시, 왜 다국적기업인 알비가 국제수준의 안전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는지를 집중 추궁하고 있고, 알비도 이 과정에서 미흡하게 대응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정 수준에 있어서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를 계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알비 뒤에 숨어 있는 국내 가해기업들의 옹졸한 모습은 피해자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으므로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다만 CMIT, MIT 원료로 가습기메이트를 만들고 판매해 온 SK케미컬과 애경에 대한 특위 차원의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1차 정부의 독성실험 과정에서 흡입독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피해자 인정에서 제외되어 있고, 해당 기업들은 검찰 수사에서도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CMIT/MIT에 대한 유독성이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인정되어 있고, 여러 정황상 CMIT/MIT 1차 흡입독성 실험의 조건 등이 충분치 않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정부 1,2차 피해자 조사와 판정에서 3명의 해당 제품 피해자가 존재하는 게 확인된 상황에서도 검찰이 해당 업체를 기소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한편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또 하나의 관심 포인트는 정부의 태도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단순 사건이 아닌 참사이고, 사회적 혹은 국가적 재난에 이르는 사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피해 접수 기관에 피해신고를 한 피해자 접수 규모도 4천명을 넘어섰고, 이 중 사망자 숫자도 800여명을 넘어섰다. 피해자 인정을 놓고 판정조사위원회의 판정 방식과 결과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안전성 검사를 거치지 않고 유독물질로 제조돼 판매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노출과 그것으로 인한 잠재적인 건강피해는 상당할 것임에도, 정확한 실태는 여전히 미궁에 싸여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피해 실태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전 세계 유래가 없는 ‘바이오사이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내에서 최대 재난 사건이라고 거론되어 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뒷짐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조사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국가의 책임을 지목하고 있다. 엄청난 재난에 대해 피해자, 소비자 국민들은 국가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할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국가는, 정부는 존재하는가’하는 근본적 회의와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정부 부처 기관보고 과정에서 해당 부처의 장,차관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에 대해 ‘사과 발언’을 하는지를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부처 어느 누구도 사과 발언은 생략했다. 사과내지 사죄의 발언은 ‘깊은 위로’가 대신했다. 우원식 특위 위원장은 정부 부처 책임자들의 발언을 메모했다가,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 역시도 법률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도의적으로라도 사과 발언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무엇이던지 첫 단추가 중요하다. 사과 발언을 하고 시작하게 되면, 늦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진정성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과발언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의 기관보고는 알비와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을 핑계로 이 문제의 해결에 소극 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정부의 대응 모습은 알비와 닮았다. 피해자와 소비자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 모습에 기관보고를 지켜보는 내내 답답함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지난달 말 진행된 예비조사위원들의 현장조사에서 이미 예견된 모습이었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없다. 지난 과거의 시간이 무능의 시간이었다면, 현재의 시간은 무책임과 회피의 시간이다. 무능, 무책임, 회피의 태도가 특별히 다른 차이점이라도 있는 것일까. 가습기살균제 특위는 진상조사, 피해대책,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중점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면, 이에 대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대책 마련은 철저한 진상규명, 드러내기, 책임지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청문회 활동을 통해 정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살인기업, 가해기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현재의 모습대로라면 가능할지 의문이다. 특위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정부 책임을 제대로 묻고 관련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정부가 숨고, 가해기업이 숨으려고 하는 퇴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퇴로가 사법부의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법의 판단 이전에 국회가 있고, 사회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국민이 존재하고 있고, 소비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사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안전사회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높다는 점이다. 여러 어려운 제약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특위는 많은 내용들을 드러내고 있다. 기관보고를 통해 여러 성과들이 확인되어지고 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 과정에서 유독물 지정 및 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던 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를 가습기세정제로 품질인증마크(KC마크)를 부여한 과정에서도 업무를 소홀히 했다.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표시광고 문구를 부착해 수년간 유통했음에도, 정부는 이를 단속하지 못했다. 피해 신고가 들어왔음에도, 제 때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못해 적기의 때를 놓치는 무능도 보여주었다. 검찰의 수사 역시도 때를 놓치고 결과적으로 가해기업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피해구제 등 피해 대책 마련도 무능했고, 늑장 대응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막지 못했고, 발생된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도 무능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가해기업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법의 판단 뒤에 숨으려고 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더욱 깊게 진행돼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 역시도 제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당시 알 수 없었고, 제도가 미비되었다고 하는 ‘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참사, 재난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바꿔야 할 것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다면, 그 다음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청문회를 남겨 두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은 화학물질로 인해 사람이 죽고 다친 사건이다. 화학물질이 생활용품을 통해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그 과정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었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안전문제에 대해, 결국 최후의 감시자들은 소비자 국민 당사자들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우리의 상황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