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고래 비행기’를 만나고 온 어느 멋진 하루
[강찬호의 가습기살균제 현장이야기] 국립생물자원관으로 떠난 특별한 나들이
2017-05-16 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으로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단출한 여행이었지만, 의미는 남 다른 여행이었습니다.
2017년5월14일(일) 오전11시 국립생물자원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이하 가피모)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5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작은 규모의 나들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바람이 가을바람처럼 시원하게 불었습니다. 한 동안 미세먼지와 황사먼지로 뿌옇던 대기도 한껏 맑은 날이었습니다. 전날 갑작스런 비바람덕분입니다. 서해바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 다가갈수록 바람은 더욱 시원했습니다. 바닷바람이 저 안에 섞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이후로 매년 5월5일 어린이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참사의 최대 피해자들이 영·유아 어린 아이들과 말 못할 아픔을 지닌 아이들의 엄마였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어린이날은 각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사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습니다.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들이 해야 할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무와 사명감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달려온 이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고,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하는 무엇이고, 어떤 감정 상태입니다.
11시 국립생물자원관 전시관 입구에서 만나, 전시해설사의 안내를 받고 1층과 2층 전시 코너를 둘러봤습니다. 백운석 관장님과 몇 분들의 직원들이 나와서 직접 응대를 해주고 전 일정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려니 했는데, 막상 자원관을 둘러보니 생물 자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에 어른들도 시선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전시해설사의 풍부한 이야기가 한 몫 했습니다. 백 관장님은 “최고로 잘하는 ‘프로 해설사’를 배치했다”고 너스레를 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전시 내용에 대해 ‘줄줄이’ 해설하는지 놀랐습니다. 체험 학습 등 학생들 학습여행지로 제격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마련해 준 일정은 선물꾸러미를 전달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전시관 3층에 마련된 교육실에서 최종 마무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끝일까요. 또 다른 선물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린디자이너 김성현 작가의 등장입니다. 한 시간 정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김 작가는 그림을 맞춰 보라며 종이를 나눠주었습니다. 색맹을 알아보는 종이를 응용해 나비나 고래 등 자연물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색들 속에 감춰진 고래와 나비 형태를 발견합니다. 조금 애를 써서 무엇인가를 찾는 행위는 그 자체로 관심을 기울이도록 요구합니다. 관심은 곧 애정으로 이어집니다. 이어서 발견한 그림을 아이와 아빠가 함께 색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견하고 채우는 행위를 통해 일체감을 가져봅니다. 자연에 대한 친숙함을 가져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그림이 주어집니다. 이번에는 자연물이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원전 표시입니다. 아이들이 무엇인지 구분할까요. 이 그림은 어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뭐지하고 좀 더 주위를 기울여 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물이 주어졌으니 그쪽으로 생각의 방향이 ‘유도’되어 잠시 헤매는데, 옆에 있던 김지원씨는 원전 표시라고 바로 알아 차렸습니다. 지원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면서 이 문제를 논문 주제로 삼고 작업을 하고 있는 서울대대학원 인류학과 학생입니다. 자연물에 이어, 원전 표시를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핵맹’이라고 하는 컨셉으로 ‘탈핵’에 접근하는 디자인입니다. 탈핵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는 접근입니다. 그린디자인에 대한 간접적인 이해의 시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어 ‘고래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고래 비행기. 근사합니다. 고래가 하늘을 나는 이유는 바다에서 인간들에게 포획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고래들의 몸짓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진행자는 아이들에게 고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내에 따라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비행기를 만들어 봅니다. 실내에서 시험 비행을 해보며 즐거워합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끝나고 야외에 나가서 다같이 비행기를 날려 보자고 제안합니다. 누구 비행기가 멀리, 잘 날 수 있을까요. 바람이 많이 부는 편이어서 비행기가 날기에는 적정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은 하늘을 향해 맘껏 날렸습니다. 비행기는 사방팔방으로 날다가 곤두박질 쳤습니다. 5월14일 하루가 그렇게 조금씩 저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비행기를 접는 그 시간에 고래에 대한 마음을 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속에 하늘을 나는 고래 비행기가 오래 기억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건강한 자연은 아이들의 미래여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각 종 환경파괴와 그 부산물로부터 아이들이 다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른들의 의무와 책임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으로 특별한 나들이를 떠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