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화의 미술사이렌] ① 헨리다거 Henry Darger

-'반짝반짝 빛나는' 제도권 밖의 미술가, 별이 되는 사람들 -불우한 환경에서 꽃피운 미술...헨리다거 Henry Darger

2021-10-15     권용화 칼럼

 

<권용화의 미.술.사.이.렌 >

빛나는’
제도권 밖의 미술가, 별이 되는 사람들

 

① 헨리 다거

불미스러운 아파트 층간 누수 사건으로 윗층의 90세가 넘는 노부부와 두 달 이상을 다투고 난 후, 단지 비용을 낮추겠다는 어리석은 주부의 일념으로 검은 곰팡이가 슨 천장 벽지를 아이를 재운 밤에 혼자 벗겨내기 시작했다. 혼자 서걱서걱 행한 한밤중의 단순 잡노동은 은근 중독성이 있었다. 20여년 동안 켜켜이 쌓인 벽지들은 결코 차례와 질서를 지켜 뜯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간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가족들의 음식 연기와, 몸의 때와, 돈이 걸렸다 하면 무조건 난폭해지는 우리들의 싸움과 이빨을 떠올렸다. 돈. 사람의 임종을 지켜줄 것이 결국은 강아지도 손녀도 촛불도 아닌 돈이라는 것을.

이른바 절대 고독 속에서, 평생 어떤 방문객도, 찾아오는 가족도 없이, 겉으로는 지저분한 경비원과 비천한 하녀의 모습이었지만 밤에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리고 물감, 잉크, 아니 온갖 이상한 것들을 손에 묻혀가며 기이하고 이상한 그림을 그려나간 이들이 있었다.

마침내 흉물스럽게 드러난 시멘트 천장을 어떤 검은 거울처럼 대하며, 내 마음은 어느새 그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첫 번째 여행의 주인공은 1973년에 사망한 헨리 다거 Henry Darger이다.

헨리

 

다거, 다저… 때로는 다저리우스

1892년 4월 12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헨리 다거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겪었다. 4세 때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다가 사망, 여동생은 즉시 입양되었고 양복장이였던 아버지는 다거가 9세 때 그를 가톨릭 학교에 맡겼다. 하지만 그는 수업을 방해할 정도의 이상한 소음과 괴행동을 멈추지 못해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했으며 12세 때는 공공 장소에서 자위행위를 하여 결국 타지역의 지진아 보호 시설로 이송됐다.

그런 그가 스스로 고향 시카고에 돌아온 것은 17세 때로, 아버지가 타계했음을 뒤늦게 알고 시설에서 거듭 탈출을 시도하다 겨우 성공한 세 번째에서였다. 그는 무려 약 160㎞를 노숙해가며(이는 약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에 해당한다.) 고향의 대모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주선으로 한 가톨릭 병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 20대 잠깐의 육군 복무와 생의 마지막 약 10년간 사회보장요양원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 평생을 그 직업으로 살았다.

1972년 요양원으로 떠나며 집주인 부부에게 아파트 열쇠를 돌려주기까지, 이웃들은 그의 이름이 헨리 ‘다거’인지 아니면 ‘다저’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요양원 서류에는 헨리 조셉 다저리우스 Henry Joseph Dargerius라는 이상한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헨리 다거는 생전에 병원 경비원이었을 뿐 확실히 어떤 예술가도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의 창작물 – 그림과 소설은 발표된 것이 아니다. 그가 남긴 모든 창작물들은 ‘발견되었다be found’는 표현이 맞다.

다거는 시설에서 돌아온 첫 10년을 제외하고 시카고 웹스터 851W. 아파트 2층에서 40년간 월세를 내며 살았는데, 방 열쇠를 돌려받은 아파트 주인 나단 기요코·러너 부부는 그가 일터-집-하루에 4~5번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에 가는 것 외에 길에서 자주 ‘채집물’을 들고 왔기에 예상되는 ‘쓰레기’를 내다버리기 위해 무심코 트럭을 빌렸을 뿐이었다. 실제로 두 트럭의 쓰레기를 내다버린 후 다거의 침대 머리맡에서, 1)폭 2m 안팍의 빳빳한 카드보드 표지 안에 차곡차곡 모아 놓은 온갖 드로잉 무더기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2)벽지로 표지를 만들고 《비현실 왕국의 이야기 The Realms of the Unreal》라고 금빛으로 제목을 적고, 손수 제본까지 해놓은 엄청난 양의 타이핑 원고와, 또 그것들의 육필 원고까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헨리

러너 부부가 발견한 공상소설 《비현실 왕국의 이야기》는 타자기로 친 본으로 는 7권(총15,145페이지), 육필 원고로는 8권에 이른다.(※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의 영문판은 약 300페이지 정도다) 집필에 착수한 시기는 19세 무렵인 1912년으로 보인다. 또한 이 소설의 삽화로서 인물을 직접 그리거나 콜라주한 뒤 수채화로 완성한 드로잉들은 300여점에 달한다.

헨리

 

“나에게 아무 것도 가져다 줄 것 없어. 갖다버려도 돼.”
- 헨리 다거가 요양원으로 떠나며 집주인에게 남긴 말

그림 그리는 교육을 받은 적이 전무했던 탓에 아마도 실제 그림 솜씨로는 머릿속의 구상을 따라잡기 힘들었던 듯, 다거는 먹지를 이용해 잡지나 만화책 그림을 베껴낸 다음, 연필로 세부를 묘사하고 다듬어 자신의 소설에 필요한 인물이나 요정 등 피조물들로 재탄생시키는 방법을 썼다. 때로 큰 이미지가 필요할 때는 동네 가게에 가서 이미지를 확대 복사했는데, 같은 이미지를 여러 곳에 수차 반복 사용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 등 세부는 달라도 자세히 보면 같은 옆모습에 같은 팔다리를 하고 있는 소녀상들을 여럿 볼 수 있다.

헨리

 

아이들의 노예화에 맞서는 용감한 일곱 소녀들
“지구보다 수천배나 거대한 가공의 행성에 있는 가공의 세계와 
이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서 다음 이야기가 시작한다.”

소설에서, 평화로운 왕국 ‘애비엔’은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글랜델리아’국의 침공을 받는다. 글랜델리아 군인들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왕국의 소녀들과 그 가족들을 학살하고, 이들에 맞서 애비엔 국의 일곱 딸-비비안걸즈는 소녀들을 이끌고 게릴라전을 불사하며 저항한다.

하얀 뭉게구름, 꽃밭, 나비날개나 산양 류의 뿔이 달린 소녀 모습의 기이한 피조물들까지 평화롭게 어울려 살던 땅은 초토화되고, 소녀들은 군인들에게 수색되다가 내장이 들어 내지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등 끔찍하게 살해당하는데, 특이하게도 이들은 남자아이의 성기를 달고 있다.

이 때문에 다거의 그림을 처음 접한 이들은 다거가 그림을 통해 그가 실제로 행한 것이나 본 것 혹은 내적으로 열망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거나, 그에게 아동성도착이나 기타 심각한 폭력성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생애에서 거의 타인과 모든 접촉-간단한 대화조차 차단하고 살아간 사람으로, 현실보다도 오히려 소설 속 인물들과 생을 합일하여 보낸 듯싶다. 소설 속에서 그는 아이들이 처한 잔인한 현실을 고발하려는 사명을 띠고 전쟁터를 취재하며 따라다니는 종군기자로 등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아파트 여주인 기요코 러너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며칠 전의 어느 날 다거가 찾아와 남편을 만나고 싶어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남편은 5시쯤 들어올 거예요.” 다거는 일단 되돌아간 후 ‘정확히’ 5시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또한 그는 ‘강박적으로’ 집세 내는 날을 지켰다. 다거가 수용소에 있었던 수년간 “아동 학대와 방임에 노출되었다.”고 보는 연구자들의 추측이 맞다면, 어쩌면 다거는 그곳에서 끔찍하도록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했던 상황을 성인이 된 후에도 시계처럼 약속을 지키는 성실한 생활로 보여주며 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웃사이더

나는 낡은 옷을 입고 늙수그레한 그가 한 관공서의 데스크에 기대어 서류의 페밀리 네임 family name을 쓰는 란을 두고 지독히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상상 하게 된다. 직장을 바꿀 때마다, 어떤 신청서를 쓸 때마다 쓰게 되어 있는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성명들, 그러나 그에게는 오직 ‘글자’였을 뿐 실제에서는 ‘존재해주지 않았던 존재’.

현실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가족의 부재에 대해 원망이나 항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소설 속 소녀들의 무수한 입이 헨리의 입을 대신하여 절규하듯 외칠뿐.

 

“너희는 나쁜 놈들이야.
너는 내 오빠와 언니를 오래 전에 죽였어.
그리고 지금은 내 소중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찾고 있지.
그러나 넌 그럴 수 없어.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죽었으니깐.
네가 부리는 장교들이 그들을 죽였어.”

헨리

 

※영화 <One Fine Day, 1996>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나탈리 머천트(미국)의 <헨리 다거의 발라드, 2001> 노랫말 전문.

 

〈헨리 다거의 발라드〉

누가 불쌍한 저 소녀를 구해줄 것이가?

누가 그 소녀의 이야기를 전해줄 것인가?

누가 그 모든 얘기를 세상에 알려줄 것인가?

이제 누가 그 먹지를 살 것인가?누가 소녀의 입을 그대로 그려낼 것인가?

누가 낯선 세상을 정복할 것인가?

납치된 아이들을 찾으면서….

공주님들,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요.

소녀들의 수호천사가 여기 있으니까요

누가 기병대를 몰고 들어가

자신의 몸을 다쳐가며

우리의 안젤리아를 다시 자유롭고 평화로운 땅으로 만들 것인가?

누가 불쌍한 고아 아이를 사랑해 줄 것인가?

버려진 채, 야생처럼 돌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아이를?

 

헨리

<권용화의 미.술.사.이.렌 > 다음 달에 계속


[주요 자료 출처 및 참고 문헌]

도서
•<Sound and Fury : the Art of Henry Darger> Edward Gomez, Edlin Gallery;Bilingual edition, 2009
•<Henry Darger : Disasters Of War> Klaus Biesenbach,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2004

사이트
•아메리칸 포크 아트 뮤지엄 www.folkartmuseum.org
•인튜이트 www.art.org/henry-darger-room-collection
•시카고 공립 도서관 www.chipublib.org
•위키피디아 www.wikiped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