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의 궤.도.이,탈.] 나의 학교

2023-06-20     별똥 이영신 <볕드는 창>

내가 다니는 학교는 노온사동, 그러니까 옛말로는 약방골에 20여 년 전에 자리 잡은 <구름산자연학교>다. 이 학교에서 나는 ‘자랐다.’ 이 학교에서 20여 년이니 교사 ‘별똥’으로서 이제 딱 성인이 되는 즈음이다. 학교, 그리고 학교를 품은 마을이 나를 먹이고 키웠다.

계절마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 계절의 색깔을 잊지 않고 보여주는 구름산. 나는 그 산에서 놀았다. 감자 심은 데 감자 나고, 고구마 심은 데 고구마 나는 학교 뒷마당 너머 텃밭. 나는 그 밭에서 감자꽃을 노래 불렀다. 지금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벌레들. 친숙하지 않지만 그들도 이 세상에서 누구 못지않게 소중한, 함부로 밟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앙증맞다 못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조그만 풀꽃을 볼 수 있게 됐고, 오늘은 '짹짹' 어제는 '깟깟' 그제는 '뱃쫑뱃쫑'…, 눈 한번 마주친 적 없어도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내가 많은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나를 ‘별똥’이라고 부른다. 별똥별의 생애.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짧지만 분명한 그 찰나" 자유롭게 ‘훅’ 궤도를 이탈해도 좋은, 별똥별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돌보는 교사지만, 친구들은 나를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그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궤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파수꾼들과 그 궤도의 바깥문을 활짝 열어 제끼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꿈을 꾼다. 그러나 때로는 궤도 안쪽을 자꾸만 기웃거린다. 궤도 안에서 마치 나를 지키는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않고 싶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지내온 20여 년 동안,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산과 들판, 꽃과 나무들도 있지만, 수없이 많은 변화들도 있었다. 어느 해는 꽃다지가 지천이었던 텃밭 가에, 다른 해에는 질경이가, 또 다른 해에는 비름나물이, 그리고 올해는 개망초가 서로 피어나겠다고 난리다.

뿐만 아니라 서둘러 욕심내지 않으면 차지가 될 수 없던 딸기밭 딸기를 요사이는 모두가 다 따먹고도 남을 만큼 아이들 수가 줄었다. 설상가상 신도시 개발로 우리는 우리의 터전에서도 오래오래 머물 수 없게 됐다.

나는 이제 궤도의 바깥으로 난 문을 여는 꿈을 꿀 수 없게 된 것일까?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싶다. 나의 친구들이 오래도록 이곳 <구름산자연학교>에서 나를 지켜주는 꿈. 세상 온 사람들이 정해진 궤도로 진입하러 열과 성을 다할지라도, 나와 내 친구들은 그 궤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나아가는, 그래서 세상 온 사람들도 나와 친구들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걷는 꿈을 말이다.

ⓒ별똥 이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