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그녀는 ‘드라이브’를 즐긴다.

2006-10-18     강찬호 기자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는 이들을 보면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반드시 주위에서 그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 이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어디서 저런 열정이 나오는 것일까. 뚜렷한 목적이 있다. 일에 대해 소신도 있다.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그들의 삶은 적극적으로 주변에 비친다. 이런 기질이 있는 이들은 조직의 리더가 된다. 그리고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런 자리에 가있기도 하다. 때론 이들의 적극성이 살짝 뒤집어 보면, ‘욕심꾸러기’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다. 그런데 제 욕심만 차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자기 일처럼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야 그 분야가 발전하게 된다. 챔프 어린이집 박인숙(37, 소하1동) 원장을 만나서 받은 느낌이다. 개인적인 느낌은 시원한 외모에, 시원한 성격이다. 광명사람들 박인숙 원장, 그녀가 궁금하다. 

최근 지역은 보육조례 제정을 두고, 보육인들 사이에 보육문제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실  보육조례에 대해 현안을 가지고 만나야 할 때이지만, 민감한 현안은 뒤로하고, 광명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가 살아가는 삶과 일에 대해 인터뷰했다.

일. 박 원장은 거의 10년 가까이 광명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4세 미만의 영아들이 다니는 가정 보육시설이다. ‘97년 광명시에서 어린이집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전에서 6년 동안 유치원 교사로 근무했다. 대학 시절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가정 어린이집 외에도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민간어린이집도 있다. 광명시에는 가정어린이집이 117개, 국공립어린이집이 18개, 민간어린이집이 78개가 있다고 한다.

그녀의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박 원장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 말고도, 5년째 가정어린이집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위 3개 어린이집이 올해 초에 서로 협력하기 위해 통합도 했다. 수석부회장으로서 역할도 부여 받았다. 경기도보육시설연합회 감사 직책 역시 가지고 있다. 이곳, 저곳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궁금하다. 왜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는지. 노골적으로 질문도 해보았다. “욕심이 많은 겁니까?” (웃음). “의사와 상관없이 떠밀려서 온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상투적이고, 의례적이다. 이것으로 만족할 기자가 아니다. 뭐가 있을 것이다. 사적인 것을 더 요구했다. “보육에만 만족하지는 않는다. 보육에서 배운 것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다. 졸업학기다. 졸업해도 공부를 계속 할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강단에도 서고 싶다.” 역시 그랬다. 박 원장을 이끄는 자기만의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리더가 되는가. 박 원장이 어린이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젊은 나이에 속했다. 지금도 젊은 측에 속한다.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이 박 원장은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박 원장에 대한 주변의 신뢰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연장자 순으로 가는 것이 소위 임원 자리 아닌가? 시원한 외모에 시원한 성격이다. 거기에 적극적이다. 자기 분야 일에 소신과 열정이 있다. 그러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람들은 그를 낙점하게 돼있다. 그 정도 능력이면, 일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조직을 위해서. 지역보육 발전을 위해서. 박 원장은 그렇게 ’선택‘되어 일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일터=일하는 곳. 박 원장의 일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 9시부터 차량을 운전한다. ‘영아’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방문하여 데리고 올 경우, 한 명씩 시설로 데리고 온다. 아이들을 태우고서 돌면, 아이들이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위해서 ‘발품’을 더 파는 것이다. 현재 보육교사는 3명. 7년 동안 함께 했던 교사가 어린이집을 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5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교사도 있고, 최근에 함께 일하는 교사도 있다. 박 원장은 자랑한다. 같이 일하는 보육교사가 큰 불편 없이 오랜 기간 같이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또 교사들이 잘 해줘서, 바깥 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것 역시 이들 때문이라고.

스스로 정리할 줄 아는 아이들로 키워간다.

아이들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특히 3세 아이들이 말문이 트여 가면서 노래를 다 소화할 때는 ‘보람’과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4세 아이들은 가정 어린이집에서는 최고 연장자(?)다. 연장자로서 이들의 행동은 의젓하다. “자기들이 할 것은 다한다. 자신들이 스스로 큰 아이라는 것을 안다. 스스로 정리할 줄 안다. 먹고 나면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갈 줄도 안다.” 4세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런 것을 나름대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또 박 원장은 영아와 유아는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영아들이 활동을 침해 받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리할 수 있으면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충전. 일에 빠진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충전하나. 술도 안 즐긴다. 종교도 없다. 일이 끝나면, 가능한 집에 들어박힌다. 쉬려고?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두 아이들 공부를 봐주기 위해서다. 누가 말리나. 취미도 없고, 여가도 없단다. 이런. 그런데 유일하게 자기만의 방이 있다. 차량 운전을 시작하기 전 30분이다. 8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고속철도 광명역사로 달린다. 드라이브도 하고, 역사 근처 공원에 주차하여 아침을 즐기는 것이다. 가학산을 마주하며 먼 산이 주는 정감을 느낀다. 산의 계절 변화 역시 감상한다. 차에서는 음악이 나오고, 손에는 머그잔에 커피가 담겨 있다. 아침마다 머그잔을 들고 나가는 박 원장의 모습이 아파트 주민들 눈에도 이제는 익숙하다.

아침 8시 30분이면, 머그컵에 커피한 잔 그리고 아침 드라이브 

결혼. 했다. 박 원장의 외모는 시원(?)하다고 했다. 시원, 글쎄. 외모가 시원하면 일찍 결혼을 할 가능성, 혹은 결혼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 별명은 ‘공주’란다. 공감. 결혼한 남편과는 동갑내기. 남편 대학 4학년 때 결혼했다. 박 원장은 졸업해서 유치원 교사로 있을 때다. 여하튼 학생과 결혼한 거다. 그리고 남편이 서울로 직장을 다니게 되어, 서울 인근인 광명으로 이사했다. 시누가 예전에 광명에 살게 된 것이 연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살고 있다. 앞으로도 다른 곳 이사하는 것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한다. 변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최근에 토요일이면 시 자원봉사센터 가족봉사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철산복지관에서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공부하는 사회복지 실습과 연계된 면도 있다. 이래저래 주말 하루 일정은 봉사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보육 그리고 보육정책. 인터뷰 특성상, 딱딱한 이야기는 배제. 여성가족부로 보육 업무가 이관이 되면서,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좋아진 것이다.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회계 관리 등 요구하는 것도 많아진다. 지원받아 일하는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광명에도 한 마디. 광명시 보육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보육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라며, 긍정적이라고 평한다.

보육이란? 우리아이들로 키우는 것

박 원장은 유치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에 비해, 지금은 작은 단위의 가정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은 가끔 왜 규모가 큰 보육시설 운영을 안 하는지 의아해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작은 규모에서 줄 수 있는 더 큰 것이 ‘보육’에는 있다는 것이다. 양 보다는 질을 추구하겠다는 ‘철학’이 있는 거다. 내침 김에 질문했다. ‘보육’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보육인지만, 아이들 ‘보육’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우리아이다. 우리 아이들, 엄마로서 키운다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답을 기대했는데, ‘어머니’의 역할로 답변을 대신한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것이 박 원장의 ‘보육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후기. 박 원장은 충복 옥천에서 자랐다. 대전으로 대학을 ‘출퇴근’하면서 다녔고, 남편 만나 결혼하고 광명으로 왔다. 오빠가 둘인 집에서 외동딸로 자랐으니, 공주병을 탓할 일도 아닐 것 같다. 젊은 보육인으로서 아직도 그에게 요청되는 지역의 일은 많을 것 같다. 거창한 듯, 산만한 듯 박 원장을 인터뷰해 보았다. 정리하자면, 그는 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비교적’ 젊은 리더 중에 한 명일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열정이 계속되는 한, 그의 롱런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무엇을 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