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좋은 것이 좋은 의회를 '불신임'한다.

2007-12-20     강찬호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의회는 비교적 조용하다. 원칙이 훼손됐을 때 원칙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과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일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문화. 그것은 관용과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무력증과 패배감을 낳게 된다.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헛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대의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지역정치가 왜곡된다. 감시와 비판,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다. 패거리 정치가 부활하고 편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민주주의 원칙이 강조되는 것이다.

광명시장에 이어 광명시의회 의장의 행보가 최근 자주 거론된다. 시설관리공단 부결 책임을 특정 시의원에 전가하고, 의정비 인상과 연계해 의정활동을 간섭했다.

시장이 시의회 사무국장에게 의정동향을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자 의회사무국장에 대해 인사를 요청하고 시의회 의장이 이를 찬성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시 의회 의장의 인사 동의에 의원들은 격분했다.

어느 경우든 상식을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의회 의장은 중립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시의회의 고유 기능 즉 시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을 해야 한다. 시의회의 대외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활동과 함께 대외적 대표성을 갖는다.

그러데 시의회 의장이 본연의 일이 아니고, 오히려 시의회 위상을 실추시키는 언행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지방자치법은 이런 경우를 위해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상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재적의원 1/4의 동의로 발의할 수 있고, 과반수로 의결할 수 있다. 불신임 요건이 비교적 까다롭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왜일까? 의장직 수행이 중립성과 대외적 대표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불신임안이 상정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까다롭지 않은 조건은 그 만큼 의장직 수행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장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140회 시의회 예결위가 지난 18일 파행 끝에 늦은 시각 회의를 열고 심의를 진행했다. 우려했던 대로 일부 예산이 부활했다. 예결위 참석을 거부한 의원들은 이런 사태를 우려한 듯하다. 예결위를 앞두고서 의장이 예결위 위원들과 담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된다. 순수하게 격려 목적이라면 예결위를 마치고 시간을 갖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는 길이다.

따라서 예결위를 앞두고 갖는 자리에 일부 의원이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올바른 처신이다. 예결위원이라고 하는 한정된 역할이 부여된 그 시간은 예결위원으로서의 독자성과 독립성,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의장이 요청한 자리, 차 한 잔 하면 되지 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어쩔 수 없다. 누구나 생각과 처신에는 저 마다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인이 아닌 공인의 처신은 그에 맞는 사회적 판단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연일 이어지는 시의회 의장의 행보가 구설수가 되는 것은 이런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5대 의회가 일부 의원들의 활약으로 눈에 띠는 모습이 없지 않고,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시의장의 행보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는 5대 의회의 또 다른 일면이 되고 있어 씁쓸하다.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기에 시민단체는 의장직 사퇴와 의원직 사퇴라고 하는 강도 높은 요구를 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의회 파행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의장의 행보가 어디까지 갈지 의회 내부의 자정 노력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