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불빛] 산타, 그리고 어머니
[작업실 불빛] 산타, 그리고 어머니
  • 권용화 <볕드는 창>
  • 승인 2023.12.15 15: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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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해였다.
집에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가셨다며 부모님이 우리를 깨우셨다.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리는데 은색으로 번쩍이는 작은 기차가 눈에 들어왔다.

오빠 것이라고 했다.
기차 모양인데 연필깎이라고 했다.
한참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는데 어머니께서 내 것도 있다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산타가 누구길래 선물이라고 물건을 놓고 간 것일까? 자고 있는 사이 부모님은 함부로 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인가? 물건을 준다고, 게다가 먹을 것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아도 되는 것인가?

내 것이라고 보니 노란색 종이상자였다.
초콜릿이었다.

나는 적잖이 뿔이 났다.
'오빠 것은 저렇게 멋진데, 나는 어리다고 먹어서 없어지는 것을 주나' 속으로 골이 났다.
자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소개도 없이 얼굴도 비추지 않고 왔다 가서는,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 걸 주고 갔다니 이상스러웠다.

그러나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주셨다 하니 감사히 여기고 하루에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꾸역꾸역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속이 느글느글해졌다.

그 할아버지가 더 괘씸하게 생각되었다.

 

 

세월은 흘러, 나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은 하였지만, 단 1년 후에 우리 가족은 설월리를 떠나 낯선 서울로 이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아버지의 직업이 잡히지 않아 무척 힘든 생활을 했다. 궁여지책으로 아버지는 야매로 수수료를 주고 미국 LA에 돈을 벌러 가시고, 실질적인 가장은 어머니가 되셨다.

어머니가 언제 오실지 몰라 오빠와 알아서 요를 펴고 잠들었다가,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깼다. 내가 일어나자 어머니는 썩 난처한 얼굴이 되셨다. 어머님의 양 손에는 하얀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양쪽에 똑같은 과자들을 잔뜩 넣은 터질듯한 주머니였다.

어머니는 궁색한 거짓말을 시작하셨다.
“엄마가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너희들 주라고 해서 가져왔어.”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월리에서 받았던 노란 상자에 담긴 초콜릿을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산타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자정이 다 되어서야 어머니가 비닐봉지와 함께 몰고 오신 12월의 찬바람이, 어머니 옷깃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머니는 적당한 선물을 고를 시간도, 돈도 부족하셨으리라.

 

 

어머니의 말년에 자유를 드리고, 어머니가 하시고 싶은 일은 그래도 대략은 해 드렸다는 생각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남들 하는 것은 다해주려고 노력하셨던 어머니의 정성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남매의 삶에 선물 같았던 사람은, 산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문득, 눈이나 한바탕 쏟아졌으면 좋겠다.


권용화
권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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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2023-12-15 18:13:26
좋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