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자, 첫마음으로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성공하자, 첫마음으로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이효성
  • 승인 2006.11.24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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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박노해 時, 첫마음> 

아침을 맞이하는 빛줄기와 저녁의 끝자락을 움켜진 어둠의 흔적들이 섞여 있는 새벽길을 걷는 것처럼 “청춘”이 갈구하는 꿈과 현실의 벽이 주는 느낌은 묘하다. 오랜 학교생활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세상은 자신이 오랫동안 갈구했던 꿈과 이상을 펼치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먹고 먹히는 사나운 정글의 싸움터이기도 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기자를 꿈꾸는 대학 졸업생인 앤드리아가 겉멋에 사로잡힌 속물들이 우글거리는 “런웨이”이라는 패션잡지 회사의 편집장인 미란다의  비서로 채용되면서 겪게 되는 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앤드리아는 식당창업이라는 소박한 꿈을 위해서 조방보조로 일하고 있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꿈을 정당한 방식으로 이뤄나가는 친구들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대학시절 “경비노조”에 대한 탐방 기사를 쓸 정도로 사회의식도 가지고 있다.

런웨이의 편집장인 미란다는 패션잡지계의 전설 같은 인물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미란다도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하여 “인간미”나 “너그러움”같은 단어가 가지는 촌스러움은 벗어던지고 ”냉혈적인 모습“과 ”일에 대한 강박관념“만이 그녀의 몸둥아리를 명품들처럼 감싸고 있다.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앤드리아처럼 학교라는 울타리를 막 벗어나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를 다루어왔다. “미스터 Q”의 강타는 “신입”이라는 단어가 주는 풋풋함을 풍기면서 어리숙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조직의 음로를 밝혀내기도 한다. “신입사원”의 강호는 회의장에서 팀원들을 향해 직원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임을 강변한다. 심지어 영화 “병태와 영자”에서 병태는 실업자 주제에 제약회사 사장의 약혼녀가 된 옛날 여자친구를 패기와 젊음으로 빼앗아 오기도 한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속물 같은 패션잡지 “런웨이” 사람들을 흉보던 앤드리아도 점차적으로 조직에 순응하게 된다. 공부벌레나 입을 듯한 모범생 복장에서 한없이 불편할 것 같은 뽀족한 하이힐과 명품 옷으로 온 몸을 치장하고,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선배가 그토록 염원하던 프랑스 출장을 가로채기도 한다. 심지어는 남자친구를 버젓이 놔두고 저명한 칼럼니스티인 크리스찬과 동침하기도 한다. 

출장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잡지계의 음모와 배신이 앤드리아의 눈 앞에 펼쳐지고 미란다는 자신의 충실한 파트너이자 런웨이의 일등공신이면서 앤드리아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던 나이젤을 무참히 내친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앤드리아는 미란다에게 강력히 항의하지만 미란다는 선배의 프랑스 출장을 가로챈 앤드리아와 자신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결국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러하듯이 앤드리아는 미란다가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펼쳐진 화려한 성공의 사다리를  보기 좋게 걷어차고 남자친구와 대학친구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박노해 시인이 감옥에서 지난 시절 관념적인 운동방식에 대한 반성과 노동운동의 초심을 깨끗하고 정갈한 언어로 꾹꾹 눌러쓴 “첫마음“이란 시는 ”정좌한 자세의 마음가짐“을  우리들 가슴 속에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처음처럼“이란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모회사의 소주는 위장을 파고드는 짜릿한 알콜의 기운만을 쏟아 붓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화려한 화면과 명품으로 치장한 배우들 덕분에 이야기가 함몰되기도 한다. 마치 모회사 소주처럼 이야기 전개보다는 화려한 화면과 옷차림만이 뇌속에 묘한 쾌감을 안기다.

그러나 앤드리아가 화려한 조각상위로 힘차게 물보라를 뿜어대는 분수대 속으로 미란다의 호출전용 핸드폰을 버릴 때 세상과 적당한 타협하면서 중년으로 달음박질하는 나에게 청춘이 주는 “만용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되내이게 만든다.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세상에서 성공하자.  다만 “앤드리아의 처음 발걸음”과 "참혹하게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첫마음”을 잃지 않고서.........

첨언) 앤드리아의 남자친구 네이트는 주방보조를 하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순박한 청년이지만 썰렁한 작업용 멘트만큼은 느끼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앤드리아가 네이트에게 런웨이 직원들의 옷차림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은 도저히 그런 옷을 입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나탈리는 앤드리아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 옷을 입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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