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가리경제와 퍼붓기
마이가리경제와 퍼붓기
  • 이태복
  • 승인 2008.11.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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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10월 내내 쏟아내던 경제위기대책이 11월에도 계속되고 있다. 1,600억 달러의 단기차입금에 대한 지급보증도 모자라 미국과의 300억 달러와의 맞교환에 이어 10조원을 증액한 내년도 예산안까지 일일이 기억조차 하기 어렵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대책이 나올지 모른다.

정부대책을 발표하는 경제관료들의 기자회견장면을 보다가 필자는 불연 듯 2001~2년도의 경제팀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들의 얼굴은 저랬다. 지금의 경제관료들이 얼마 전까지 은행권의 단기차입금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다가 시기를 놓치고 나서야 태연하게 지급보증이나 통화맞교환을 무용담처럼 발표하는 태도는 꼭 저들의 선배들과 닮은 꼴이다.

IMF 당시의 경제관료들도 외자유치만이 살길이라며 알토란 같은 기업들을 헐값에 내다팔아 국부유출이 심각해지고 졸지에 고금리 초긴축정책으로 경제가 얼어붙어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그러자 이들은 갑자기 내수활성화대책과 서민중산층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경기는 6%로 뛰어오르고 극소수 일부 계층만 살판이 났다. 외신들은 탁월한 경기부양책이라며 치켜올렸고 실적의 걸림돌이었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도 퍼부었다. 그 결과 실업률은 3~4%대로 떨어졌고 경제주역들은 우수한 관료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몇 년이 가지 않아 독버섯이 되어 자라났다. 내수진작을 위해 카드를 남발하게 하고, 은행돈을 마구 빌려 부동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의 파산이 터져나오면서 4백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반짝 경기는 끝나 장기침체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필자는 그때 내수진작책을 ‘마이가리경제’라고 불렀다. 실질소득의 증가는 없는데, 빚내서 소비하는 행태를 ‘군대식 은어’로 비판한 것이다.

이들의 유전자는 참여정부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핵심부품을 수입하여 대기업이 조립해서 다시 수출하는 한국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작업이 중요한데도 건성이었다. 4~5%의 성장률과 3~4% 실업률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정치구호를 앞세워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어 연30조의 토지보상금을 뿌렸다. 그것도 모자라 2~30조의 단기외채를 미국과 일본에서 끌어와 부동산 투기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이 정책은 몇 년도 안가서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다. 서민들의 박탈감이 커지자 이들은 재빠르게 세금폭탄으로 거품을 고착화시켜놓고 말았다. 또 이때 들여온 단기외채가 폭증해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경제관료들은 기업들의 구체적인 현실과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수치관리형 경제정책 운용과 외자유치, 글로벌 스탠다드만을 외쳐대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자 한국경제의 위태위태한 현실을 도외시한채 한술 더떠서 747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젠 이전 선배들의 발목을 잡았던 중산, 서민대책은 외자유치와 규제완화가 이뤄지면 저절로 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참 고위관료들에게는 애초에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잊고 있었다. 단기차입금의 빚덩이가 눈덩이처럼 커져있었다는 사실을. 또 철옹성처럼 만고불변이라고 믿었던 글로벌 스탠다드의 본거지가 내부붕괴로 무너져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본거지에서 일어난 쓰나미를 저지할 어떤 방비책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들은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어 본거지에서 쓰고 있는 지급보증과 금리인하, 30조가 넘는 천문학적인 퍼붓기를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에 금리인상을 밀어부쳐 내수의 물줄기를 고발시켰던 그들이 다시 금리를 인하하고 30조원이 넘는 돈을 풀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MB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이 참담한 현실을 정말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이제까지 역대정권의 경제관료들이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보다 성장률과 일자리, 실업률과 같은 ‘수치관리’에 더 열심이었던 것은 자신들의 출세와 직결됐기 때문이다. 매년 100조원의 통화량을 늘려 4~5%의 성장률과 3~40만개의 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 자신들의 출세가 보장되는데, 왜 그들이 퍼붓기에 목을 매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출세의 사다리를 타는 사이, 국민들은 점점 죽어나가고 한국경제는 더욱 침몰의 위기에 빠지고 있다. 사태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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