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상업거래소, 오바마
시카고, 상업거래소, 오바마
  • 이태복
  • 승인 2008.11.2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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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요새 주식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집들이 많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땅의 중산층들이 불안한 현실과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만 그런가? 일터에서 밀려나와 허송세월하고 있는 4~50대들은 산이나 케이블TV를 껴안고 산다. 이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진 사람들은 가정이 파괴되고, 아이들을 시골집의 부모에게 보내거나 막노동일감을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우리나라만 이런가? 아니다! 미국의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700만명 이상이 주택대출 파산에 걸려 집을 잃고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신세다. 빈곤층지대는 더 넓어지고 중산층 지역에는 빈집이 넘쳐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감원과 공장폐쇄가 구체화되자 실업급여와 일자리 소개소에는 구직자들이 줄지어섰다.

이런 판국에 한국인들은 미국의 대통령에 오바마의 당선과 변화의 메시지에 환호했다. 깨끗하고 합리적이며 균형잡힌 감각을 갖고 있는 오바마는 미국인들의 기대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부시 시절보다 오바마의 미국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대화가 가능한 나라가 될지 모른다. 실제 미국이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달러폭락에 대처하려면 부시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게다가 부시의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정책이 실패하고,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지는 경제조건에서 극빈층과 실업자, 신규빈곤층의 폭증과 불만의 폭발을 방지하려면 대규모의 공공투자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신뉴딜정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비상처방이 극적인 변화를 만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바마의 미국은 민주당의 미국이고, 오바마정권의 주요자리에 클린턴 정부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오바마의 역할은 의외로 미국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국의 변화에 너무 높은 기대를 하다보면 한국이 직면한 현재의 위기국면에 대한 안이한 판단을 하기 쉽다. 많은 한국의 금융권 인사들이 2007년 7월 모기지 사태를 보고서도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당국의 말을 신뢰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왜 10년 전에도 당했으면서 똑같은 바보짓을 하고 있을까? 한국의 금융권과 지도층이 모두 집단최면에 걸리지 않고서는 지금의 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태도가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주식은 그동안의 거품이 꺼지고 10조 달러가 넘는 손실이 발생했으므로 당연히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를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 메우기 때문에 달러화가 폭락하고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몰려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런데도 한국 당국은 1000선을 지키겠다고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쏟아 부어 투기꾼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것이다.

환율문제도 같은 이치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순전히 무역흑자로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단기외채차입금과 투기자금 덕이 큰 것이 아닌가. 이들이 빠지면 한국의 달러보유액은 천억달러 미만이 된다. 자신들이 미국에서 본 수조달러의 손실로 파산상태인 판에, 당연히 서둘러 돈을 빼가게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이들의 달러수요로 환율이 계속 오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펀드환매수요가 많았다면, 내년 1월에 이 수요는 다시 늘어날 것이고, 한국주식시장 침체가 계속 되면서 아직 남아있는 자금도 빠져나갈 것이므로 환율의 안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냉엄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세계 주식시장을 좌우하는 시카고의 상업거래소를 주목해봐야 한다. 미국의 큰손들이 선물거래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쪽박을 차게 하는 대신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시카고 출신이고 흑인빈민가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오바마는 이 거래소가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것을 알고 있을까? 오바마가 진정으로 미국의 변화, 미국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한다면 이 상업거래소의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가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정말 영화제목처럼 시키고의 잠 못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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