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보건소는 왜 늘어나지 않을까?
도시 보건소는 왜 늘어나지 않을까?
  • 이태복
  • 승인 2008.12.18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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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침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실질적인 실업자가 317만이라는 정부통계도 나왔다. 내년에 실물경기의 침체가 구체화되면 실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고, 자영업자의 폐업도 속출할 것이다. 일하고 있지만 빈곤한 근로빈곤층에 속하는 사람, 소득이 없는 500만명의 고령자들의 대부분을 합하면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넘쳐난다.

이런 현실에 대처하려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국은 4대보험에 이어 고령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장기요양보험제도도 도입했다. 하지만 5대보험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그동안 사각지대 해소대책이 매년 되풀이 됐음에도 실효성이 없었던 것은 빈곤층이 아예 배제되는 제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 가입율이 22%에 지나지 않고 근로빈곤층의 경우 대부분 산재와 건강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서민대책을 세운다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책이 되풀이 되는 까닭도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5대 안전망에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가입대상과 부과기준 등을 전면적으로 손질하고 빈곤층에 대한 지원도 뒷받침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민생법안을 코에 걸치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회안전망 보강법안이 빠져 있다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이다.

이 5대안전망 보강작업 못지않게 시급한 일은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의료시설 확보다. 경제난에 따라 건강이 악화되고 치료비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중산 서민층들이다. 이들이 돈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거나 각종 질환에 고통받으면서도 쉽게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때문인가. 우리 주변에 보이는 곳이 거의 전부 민간의료시설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선진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통계가 바로 선진국가들과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통계다. 선진국들이 대부분 70~80% 이상 공공의료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불과 12%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다. 세계 최저다. 물론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수치 못지않게 의료보장과 같은 질적인 수준도 중요하다. OECD 국가들은 의료보장률이 73%이지만, 한국은 55%다. 어느 경우이든 한국은 의료의 공공적 기능이 형편없이 취약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점을 의식해 한국정부나 정치권도 선거철이 되면 공공의료 비중을 30%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필자가 2002년 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300개의 도시보건소를 늘리는 작업을 추진했는데, OECD 기준을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타부처 고위관료들의 지능적인 방해에 부딪혀 10%인 30여개 밖에 확충하지 못했다. 참여정부도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2005년도에 공공의료 확충계획을 발표해 4조3천억 원을 투입한다고 했지만, 홍보용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가장 시급한 도시지역 보건소 확충계획은 아예 빠져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시설과 장비 현대화 계획 이상의 것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역대정권처럼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복지관계자와 노인단체,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서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도시지역 인구 10만명 당 1개의 보건소를 확대하라는 요구를 하자는 것이다. 최근 각 자치단체별로 동(洞)의 통폐합 작업이 계속되고 있어서 공공의료의 기능을 확대하는데 매우 좋은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 빈곤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폐지된 동(洞)에 보건지소를 설치하면 된다. 10만 명 당 1개의 공공의료시설을 확보하려면 복지부, 행자부의 예산 및 인력 확보가 진행되거나 아니면 지방의회가 조례를 개정해 필요예산과 인력을 담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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