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꼴통 처남의 천막농성
제14화 꼴통 처남의 천막농성
  • 오상식
  • 승인 2008.12.21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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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좀 말려주세요. 제 말은 듣질 않아요. 민호가 상식 씨는 따르는 거 같아서..”

처음 사무실 들어오고 며칠 안 되어 새벽 일찍 의원님을 모시러 갔다가, 민호와 만난 적이 있었다. 민호는 집으로 들어가며 (분명 집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나를 쓱 훑어보더니 아주 밥맛이란 표정을 지으며,

“정치한답시고 가족들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정말 재수 없어.”

하길래, 나는 어쭈- 저 놈봐라-. 어린 녀석이 까칠한데가 있네. 생각하며 의원님의 아들로 추정되는, 그래서 내 예비처남인 그 녀석에게,

“임마, 니가 날 몰라 그러는데, 난 세상에서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야.”
“웃기고 있네. 그러면서 가족하고 아침도 안 먹고, 의원님 모시러 왔어?”
“그럼. 열심히 일해서 우리 할매한테 월급 갖다 주면 우리 할매 진짜 좋아하거든. 그리고 우리 할매는 새벽부터 바빠서 내가 놀아주려고 해도 같이 놀 시간도 없어.”
“할매랑 둘이 살아? 부모님은?”
“부모님은 나 어릴 적에 돌아가셨고, 난 우리 삼촌이랑 할매랑 살아.”
“....”
“야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난 비록 우리 엄마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 엄마가 날 돌봐주지 않는다고 질질 짜고 서운해서 삐딱선 타고 안 그랬다. 난 사나이거덩!”

가슴을 탕탕 치며 잘난 척을 하자 이놈이 은근히 약이 오른 얼굴로 말했다.

“나도 찔찔 짜지는 않거든.”
“하지만 아침에 학교를 가는 게 아니라 집으로 오는 거 보니까 삐딱선은 타는 거 같은데? 그러면 엄마 속상하셔.”

하고 내가 받아 치자, 이 녀석 눈썹이 꿈틀하더니 눈을 가늘 게 뜨며 말한다.

“우리 엄만 내가 아침에 들어오는 지, 저녁에 나가는 지 모르거덩. 그러니 속상할 일도 없어.”

하는데, 문이 열리더니 의원님이 나오셨다. 의원님은 아들 민호를 보자 의아해하며,

“민호야, 이렇게 일찍 학교 가니?”

했고,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나에게 이것보란 표정을 했다.
난 모른 척 하며 의원님을 모셨고, 의원님은 차에 타자 아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지 학교로 가는 지 쳐다 볼 틈도 없이 서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난 차에 타기 전에 민호에게 말했다.
“너 축구 좋아하냐? 언제 나랑 한 판 하자-.내가 또 동네 축구에서는 날리던 골게터거덩.”

민호는 축구공을 도르르 굴려 올리며 축구공이 떨어지기 전에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말하자면 나한테 욕한 거다. 그래서 나는 얼른 손바닥을 펴서 말했다.
“반사~~~!”

그리고는 얼른 다시 욕이 돌아오기 전에 차에 탔다. 그리고 백밀러로 보자 민호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멀어지는 차를 한참 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 가끔 민호를 만나면 축구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친해졌던 것이다.

“엄마가 모르게 해결하고 싶어요. 아, 무엇보다 동회 씨에겐 절대 비밀이에요.”
“왜요?”
“동회 씨가 아무리 아는 사이라 해도...기자잖아요. 국회의원 아들이 학교에서 천막농성하고 있단 거, 나름 기사거리 될 텐데...혹 기사라도 쓰면....엄마가 곤란할 거예요. 아무래도 아직은 제가 기자를 잘 못 믿어서...제 맘 이해하시죠?”

기자를 잘 못 믿는다-. 민주 씨의 신중한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럼 그렇지. 그 동안 동회 놈이랑 붙어 다니는 것 같아 신경 쓰였는데 아직 믿음도 없는 사이다. 무엇보다 동생의 일로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나를 더 믿는다는 소리지. 하하!

“근데, 동회 놈은 민주 씨가 장윤희 의원의 딸인 거 모르는 거 같던데..”
“예...여러모로 모르는 게 제가 편할 거 같아서요..”
“하긴...잘 알겠습니다. 동생 학교가 어디라구요?”

00고를 찾아가보니 운동장 한 쪽에 천막이 보였다. 현수막과 대자보들에는 그들이 왜 이러고 있는 지 조금은 짐작이 갈만한 글들이 보였다.

<성적조작, 시험부정, 성폭력, 금품 수수-부적격 교사 퇴출하라!>
<찬조금, 보충수업비, 급식비까지 횡령하는 교장과 재단은 물러가라!>

학생들과 교사들이 천막 안에 모여앉아 농성 중이었고, 나는 일단 민호를 찾기 위해 천막을 기웃거렸다. 천막 저 구석에서 매직으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민호가 보였다. 민호에게 다가가려는데 누군가가 막으며 물었다.

“누구신지...?”
“아, 저기 민호 학생 형이에요.”

하며 민호를 불렀다. 그러자 민호가 나를 보더니 의외란 듯 놀라더니 금방 눈을 가늘게 뜨며 무심한 얼굴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를 슬쩍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야, 여기서 지금 뭐하는 거냐?”
“보면 몰라요?”
“모르겠다. 학생의 임무인 공부는 안 하고 해봤자 손해만 볼 농성을 하는 이유, 나는 모르겠다.”
“모르면 배워요. 무식한 게 자랑도 아니고.”

아니, 이놈마저 나를 무시하네?! 나는 순간 꼭지가 확 돌았지만 겨우 참으며 생각했다.
‘내가 먼저 흥분하면 안 돼. 그럼 이 놈 페이스에 말리는 거야.’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차분히 물었다.

“그래? 그럼 무식한 나 좀 가르쳐주라. 학생이 공부 안 하고 농성을 왜 해야 되는데?”
“형은 학교 다니면서 폭력적 상황을 당한 적 없어요? 그런 상황을 당해도 공부만 했어요?”
“그래도 학생 땐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하는데,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선배-. 여기서 뭐하는 거야?!”

날 부르는 소리는 아닐 거라 여기며 민호를 설득하려는데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퍽 치며 말했다.

“오상식 선배! 반갑다!”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대학 동아리 후배 강정자였다.

“어, 정자야...넌 여기서 뭐하냐?”
“나 이 학교 선생이잖아. 근데 도대체 형은 여기 뭔 일이냐구-.”
“어..나는...”

다른 때 같으면 국회 의원실 비서로 취직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텐데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괜히 국회 의원실에서 나왔느니 어쩌니 알려지면 사태가 커질 수도 있고 장의원님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이 형 우리 동네 형인데요, 국회 의원실에 근무해요. 그래서 내가 우리 학교 상황을 알리려고 불렀죠.”

하고 민호 녀석이 내질러 버렸다.

“아, 아니..난 그냥 지나던 길에 이 녀석이나 보고 갈까하고 들린 거뿐이야.”
난 어색하게 머리를 긁으며 변명을 했지만, 내 후배는 눈이 반짝이며 기뻐했다.

“그럼, 국회의원 보좌관 된 거야? 형, 난 형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아,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 난 정말 대학 시절의 그 어처구니없는 일을 잊고 살려고 해왔는데, 이 후배 녀석은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하고 있다며 여러 교사와 학생들 앞에서 내 과거를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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