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전사의 탄생
제15화 전사의 탄생
  • 오상식
  • 승인 2008.12.2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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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우리 1학년들 사이에서는 거의 영웅적 존재였죠!”

누구 얘기냐고? 내 얘기다. 이 오상식의 대학시절 무용담을 그 당시 한 해 후배였던 정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사실 상식 선배는 학교도 나오는 둥 마는 둥 그다지 선배란 인식도 안 들 정도로 학교에서의 활동이 미미했었어요. 그래도 가끔은 도서관에서 봤다는 애들도 있었는데, 거의 책 깔고 자는 모습만 봐서..”

이 대목에서 나의 예비처남 민호가 킬킬킬 웃어댔지만 정자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바로 그날! 우린 선배의 실체를 알게 됐고 다들 깜짝 놀랐죠.”

모두들 궁금해 침을 꼴깍 삼키며 정자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민망해 먼 산만 바라보며 눈을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전국의 대학 총학생회가 정한 D-데이였죠. 다들 비장한 각오로 현 정부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모이고 있었어요. 사실 나는 그 때 1학년이라 암 것도 모르고 겁도 났지만 그래도 이런 폭력적 정부에 대해 그냥 두고 볼 수 없단 생각에서 친구 몇몇과 움직였죠.

하지만 집회란 걸 처음 가보는 상황이라 몸을 사리며 구경꾼 수준으로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겁니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코빼기도 안 보이던 선배가 바로 그 곳, 전국의 대학생들이 집결한 시위 현장에서 가장 높은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 있는 거예요!”

모두들 우와~~ 탄성을 지르며 나를 흘깃거리기까지 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민호 녀석까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완전 새로 봤단 표정으로 보더니,

“선생님, 그래서요?”

하며 내 후배 정자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사실 우리 학교는 그 당시 어용 총학생회장이 뽑혀 학생회 돈을 해 먹었니 어쩌니 소문만 흉흉하고...하여튼 총학생회가 전국 집회 같은 덴 관심도 안 두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참 답답하던 상황이었는데, 선배가 거기 그 빛나는 자리에 떡 버티고 서서 그것도 깃발을 당당하게 들고 있으니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 후배 몇몇이 달려가 선배님을 불렀죠.

그러자 선배님은 쑥스럽게 웃으시며 어린 녀석들이 이런 덴 왜 왔냐고 우리를 걱정하시더라구요. 야, 그때 정말 울컥 하면서... 이렇게 뒤에서 조용히 나라를 걱정하는 멋진 선배가 있었구나 싶으니까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 후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배님을 본받아 우리 학교의 민주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동아리도 재조직하고 불철주야 선배님 말씀에 따라 공부도 하고 조직도 꾸려서 그 다음 해엔 총학생회를 다시 세울 수 있었죠.

그런데 우리가 더욱 선배님을 존경한 이유는 선배님은 권력을 초개처럼 던져버릴 줄 아는 남자였다는 거죠. 사실 깃발 사건 이후로, 무너진 우리 기타대의 민주역사를 홀로 써 오고 있었던 선배에 대한 후배들의 존경심은 대단했거든요. 그러니 총학 출마만 하면 학생회장은 따 논 건데 결국 끝까지 사양하시고는 여학생인 저를 지목하셔서 우리 학교 역사상 첫 여성 총학생회장이 탄생했던 거죠.”

모두들 그 대목까지 듣고는 탄성을 지르며 존경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으며,

“그건 모두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을 뿐이에요. 나는 그런 영웅도 아니구요...”

하며 슬그머니 일어나려고 하는데 정자가 내 바지 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며,

“우리 선배님은 항상 겸손하시죠. 선배, 그러지 마시고 지금 며칠 째 천막 농성을 하면서 힘겹게 학교와 싸우고 있는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힘을 낼 수 있는 얘기 좀 해주세요. 예?”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며칠 동안의 천막 농성으로 지쳤을 텐데 나를 보는 그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심지어 골통 예비처남 민호 녀석 마저 눈을 빛내며 내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거 원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네. 근데 뭔 얘기를 하지? 그 때 정자 옆에 있던 한 선생이 말했다.

“사실 우리 교사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야 학내의 비리들을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농성을 한다지만 우리 학생들까지 우리를 지지하며 이렇게 참여하고 있으니 고맙긴 하지만... 우리야 그렇다 쳐도 이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가거나,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이구요, 심하게는 신나게 생활해야 할 학창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큽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끼어들었다.

“선생님, 그런 걱정 마세요. 우리 공부 알아서 해요. 그리고 이미 우리의 신나는 학창시절은 비리 투성이에 폭력적인 선생님과 재단 앞잡이 같은 교장 선생님, 학교를 지들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재단이 다 빼앗아 갔구요, 우리도 더 이상을 견딜 수 없어서 나서게 된 거라구요. 우리는 우리를 위해 용기내서 싸워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학교에 대한 애정을 붙들고 있는 거니까 더 이상 우리 걱정은 마세요.”

학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학생들도 함께 힘을 내자고 씩씩하게 한마디씩 했다. 선생님을 안아주며 글썽이는 눈물을 닦아주는 녀석도 보였다. 그러자 선생님들의 얼굴에 희망의 불씨가 다시 번지며 얼굴이 환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웬 지 가슴 한 쪽이 찌릿한 게 그들의 진심어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다시 학생들이 나에게 한마디 힘낼 말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사실 저는 정치도 잘 모르고 의원 비서로 일한 지도 얼마 안 되지만, 제가 아는 분이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정치란 야망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물론 제가 모시고 있는 의원님도 그런 노력을 하는 분 중에 한 분이시라고 저는 믿고 있구요.”

그 말에 순간적이긴 했지만 민호의 한쪽 눈썹과 볼의 근육이 움찔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 와보니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이 길을 선택한 거 같네요. 사실 전 아직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여러분이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그 마음을 교장 선생님이나 재단에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저도 도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힘을 냈고, 민호도 나름 나의 등장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난 민주 씨의 요청으로 민호를 집으로 데려가는 게 주 목적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녀석은 갈 생각을 않고 이젠 내게 이 문제를 해결할 비책을 마련하라고 협박하고 있다.

“돕겠다며.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며-. 의원 비서가 이 정도 일도 해결 못해?”

하며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진 집에 안 들어가겠단다. 웬지 나는 내가 늪 속에 한 발을 내디딘, 아니 두 발을 푹 담근 그런 기분이었다. 마치 후배 정자가 영웅의 무용담처럼 얘기했던 그 날처럼 말이다.

사실 난 정자가 오해하듯이 우리 대학의 민주 역사의 명맥을 유지하며 조용히 나라를 위해 일해 온 그런 놈이 아니었다. 난 그날 동회 놈이랑 술 한 잔 할 생각으로 전화했다가 그 놈이 거기 간다기에 그 놈 찾아 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동회 놈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데, 마스크를 쓰고 깃발을 든 학생이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깃발을 대신 좀 들고 서 있어달라고 했다. 정말 들기 싫었지만 그놈이 너무도 오줌 마려해서 인간적으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단지 그놈의 다급한 생리현상을 풀어주려는 작은 배려로, 깃발을 대신 들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에 우리 학교 후배들을 만났고 그 후 그들은 내가 아무리 우연히 깃발을 들었다고 해도 믿지 않고, 그날 이후 나를 따르며 나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령을 내려달라고 따라다녔던 거다.

난 너무도 난처했지만 이렇게 나를 믿고 신나게 뭔가 하려는 후배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니 차마 실망시키며 잠수를 탈 수가 없어 그날부터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후배들과 함께 동아리도 만들고, 공부도 하고, 결국 학내 문제를 일으킨 어용 총학도 몰아내고 뭐 그렇게 일이 꼬여 들어간 거다.

하지만 난 할머니가 언제나 강조해 온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마라>는 가훈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맹세할 수 있다! 어용 총학을 물러나게 한 것도 불의를 못 참아서가 아니라, 내 학생회비를 지들 몇몇이 꿀꺽한 것에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내 피 같은 학생회비, 그것도 우리 할매가 국밥 장사해서 뼈 빠지게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 낼 때 같이 따라나와 할매 등골 몇 퍼센트는 들어간 그 학생회비를 그 놈들에게 멍청하게 빼앗길 수는 없었던 거다! 그래서 난 내 학생회비 돌려달라고 했다. 우리 할매 등골 빼서 낸 그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이런 주장은 시위며 시끄러운 상황을 싫어하던 학생들의 마음까지 움직였고, 우리 후배들도 어려운 이야기보다 감성적 호소력이 있는 내 얘기가 먹혔다며 역시 선배는 선동의 귀재라 떠들어댔다. 결국 총학생회장 후보로 지목이 되며 교대 스타로 부상하자 난 그런 부담스런 시선과 찬사를 피해 군대로 도망쳤고, 그 후로는 조금은 자유로운 삶,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웬 지 난 다시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내 후배를 이 곳에서 다시 만난 것도 그렇고, 민호 녀석이 내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도 그렇고...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민주 씨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아...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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