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과 복지 GNP
삶의 질과 복지 GNP
  • 이태복
  • 승인 2009.06.08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동안 정부나 민간전문가들이 한국사회의 성장수준을 논의할 대 주로 국민소득이 얼마라는 식으로 말해왔다. 그래서 11년 전의 외환위기와 최근 위기 시에 국민소득이 1만불 이하로 떨어졌다거나 1만5천불로 내려앉았다는 보도를 듣고 낙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국민소득이 얼마라는 식으로 각 나라의 경제와 각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평가하는 방법은 사실 구체적인 국민생활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생산의 대부분을 대기업과 공기업이 담당하고 그것도 수출과 수입, 외국자본유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통계에 근거하는 것일 경우 거품이 많이 끼고 실제 국민생활의 수준과는 거리가 멀 게 된다.

이런 문제들은 사실 서구사회에서도 진작부터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국민총생산(GNP) 개념은 기존의 국민계정체계에 따른 것이다. 이 체계는 환경오염이나 교통체증, 사교육비와 통신비 등 생활비용의 증가로 국민생활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는데도 이 국민소득개념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1960년대 말부터 국민계정체계를 개선하여 실제적인 삶의 질 수준을 파악하려는 논의가 있어왔다. 이 결과 일부 선진국가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복지지표(ISEW)체계를 이용한 삶의 질 수준을 파악하고 있다. 이를 복지 GNP라고도 부른다.

한국에서도 이런 연구들이 구체화되어 지난해 말에 국책연구소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우리나라 복지GNP 수준을 파악해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한국의 조건을 반영하기 위해서 소득분배를 고려한 가중개인소비지출, 가사노동의 가치, 내구소비재 서비스, 보건․교육을 위한 공공지출, 순자본 성장, 국제자본수지 항목을 추가하고, 아울러 내구소비재 구입비, 보건교육을 위한 민간의 방어적 지출, 교통사고 비용, 출퇴근비용, 수질․대기오염비용, 소음 공해비용, 습지대와 농경지 감소,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고갈, 에너지 소비에 따른 환경위험과 오존층 파괴비용 등을 감산했다.

이렇게 해서 추계한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한국의 1인당 복지GNP는 IMF 시기인 1997년에 7,495달러였다가 1998년에 3,331달러로 급격히 추락하고 2004년이 되어서야 1997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삶의 질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1인당 GNP 대비 1인당 복지GNP가 1996년의 경우 72,9%에 비해 2006년은 1인당GNP의 64.6%에 지나지 않아 복지GNP가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현상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득재분배의 악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어적 보건교육지출과 환경파괴 등인데 이런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정책들을 변화시키지 않은 한, 복지GNP악화는 막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소득이 얼마라는 기준 대신에 복지GNP가 얼마라는 식으로 기준을 바꾼다고 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제대로 평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숙제다. 복지GNP는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 매우 소중한 반성을 요구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사회와 인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복지GNP 평가항목이 제한돼있고, 범죄발생이나 1인 가구, 이혼, 출산율과 같은 사회적 요인도 중요한데 빠져있다.

따라서 복지GNP산출을 계기로 우리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발전지표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나름의 사회통합지표개발이 이미 있기는 하다. 사회통합지표가 개발됐다는 것은 성장과 분배를 아우르고 균형적인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체계를 발전시켜나갈 필요성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분단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소득재분배 등 여러 분야에서 역삼각형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이 불균형 사회를 바로잡아가기 위해서는 각종 요인들이 충분히 반영된 새로운 평가모델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각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한국의 언론들도 국가경쟁력 순위와 같은 엉터리 숫자를 앞다퉈 보도하는 한심한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한국사회의 발전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노력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