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빼기(통신비, 기름값, 약값) 정책은 효과가 있나
거품빼기(통신비, 기름값, 약값) 정책은 효과가 있나
  • 이태복
  • 승인 2009.10.06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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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요금이 내린다는 광고가 도하 일간지에 일제히 실렸다. 기름값 인하도 10여 차례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요금이 내린 줄 알고 있거나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카드수수료도 실제적인 인하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그런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약값도 2조원대의 불법적인 리베이트 거래규모로 볼 때 20% 이상의 인하요인이 있으므로 곧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제약업계도 긴장하고 있고 국민들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생활과 밀접한 이러한 독과점 가격구조에 대해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작업을 하지 못할 같다. 대학생 학자금처럼 정부와 재계가 출연금을 내서 재원을 마련하고 본인들이 취업 이후에 갚는 구조라면 정부 발표처럼 대담한 정책을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기름값, 통신비, 카드수수료, 약값, 금리처럼 독과점 기업들의 폭리구조에 손을 대는 작업은 역대정권이 못했던 것처럼 그들의 파워로 볼 때 쉽게 단안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통신비 인하와 관련된 요란한 홍보는 사실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매년 정기 국회가 열릴 때면 통신요금이 인하되는 것처럼 대대적인 홍보를 해서 국민들을 현혹시켰다. 이번이 다른 점은 통화시간의 기본 단위를 초단위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인하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통신사의 대변인 노릇을 해왔던 방통위나 통신회사가 써준 질의서로 질문하는 의원들이나 통신회사의 이해를 대변하는 고위관료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에서 실제적인 서민정책은 나올 수 없다. 왜 아직도 가입비와 기본료를 핸드폰 이용자들이 부담해야 하는가? 매년 조단위의 흑자를 수십년 동안 걷어들였으면 이제 당연히 폐지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가격정책 심의기구를 구성해서 기업의 적절한 이윤을 보장하되 독과점 폭리구조를 바꾸자고 주장해왔던 것이다.

기름값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리터당 1600원 후반대에 형성돼있는 소비자가는 국제원유시세가 100달러를 넘었을 때의 가격인데 70달러 내외로 오르내리는 국제시세라면 한국소비자 가격은 리터당 1400원 수준이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번 오른 국내 판매가격은 좀처럼 내리지 않고 있다. 애꿎은 주유소만 압박해 기름값 인하에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만, 이미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석유회사와 한 통속으로 움직여온 정책 담당자들이 갑자기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리 없고, 부족한 재원으로 세수확보에 비상이 걸린 세정당국이 단일세목으로 노다지를 캐고 있는 꿀단지를 포기할 리 없다.

약값의 거품을 이제 국민들은 전부 알게 되었다. 그동안 흑막 속에 감춰져있던 사실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이대로 내버려둬선 안된다는 국민적 인식은 확산돼있다. 문제는 바이오산업을 잘 살려나가면서 약값거품을 어떻게 빼느냐 하는 것인데, 이 점에 관해서 정부당국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불법과 비리가 쏟아질 때면 소극적인 방어논리를 구사할 뿐이다.

이렇게 국민들의 실제생활과 밀접한 독과점 가격에 거품을 빼지 않고 국민부담으로 떠넘기는 사업에만 생색을 내고 만다면 친서민 중도실용주의정책은 겉돌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학자금대출이나 저신용자를 위한 미소재단의 출범과 같은 과감한 정책결정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중산서민층정당이라고 했던 국민, 참여정부도 하지 못했던 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그 재원과 부담이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정책에는 과감하고 수십 년 동안 정부의 특혜를 받아 독점 사업권을 따서 매년 수 조 원씩 폭리를 취해온 독과점 가격을 방치한다면 친서민중도실용주의 정책의 진정성은 의문을 갖게 만들 것이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정기국회 회기 동안 국민생활을 위협하는 독과점 대기업의 폭리구조를 수술해서 국민생활을 실질적으로 안정시키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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