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북의 미래, 농업의 길을 열자
천북의 미래, 농업의 길을 열자
  • 이태복
  • 승인 2009.11.2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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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 연재칼럼

가을걷이도 끝났다.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를 한 두 가지씩 하고 있지만, 아직도 밭에 널려있는 배추나 무우, 집안팎에 챙겨놓은 볏가마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날씨 좋은 것도 원수지 웬 풍년이 들어서 쌀값, 배추값만 떨어지고...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딱히 도시로 나가 벌어먹을 방책도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마구 들여온다고 해서 걱정했더니 고맙게도 국민들이 한우를 먹어줘서 그런대로 버틸만한데 유럽산 돼지고기가 들어오면 아예 돼지농가는 다 망하는 거 아닌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이런 궁리 끝에 내 고향 젊은 농사꾼들이 모여 천북의 미래를 개척해간다는 의미에서 ‘천북의 미래’라는 영농법인을 만들었다. 그동안 각자 알아서 살길 찾아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왔던 고향에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짬을 내어 이런 궁리, 저런 방책을 찾아왔던 것은 갑갑한 농촌의 현실도 문제지만 앞으로 부딪칠 미래가 도무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은 없는 것일까? 정부는 대기업의 수출길을 열어주기 위해 모든 농산물을 안전검사도 없이 마구잡이로 받아주더니, 마침내 쌀까지 수입해서 창고에 넘쳐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의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책도 문제지만, 결구 믿을 것은 우리 자신뿐인데, 우리 스스로 길을 찾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들은 그냥 땅만 파고 귀동냥을 해서 소, 돼지를 길러왔을 뿐이다. 어쩌다 우수농가나 선진농촌 체험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런 예를 따라하기에는 뭔가 우리 농촌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천북지역은 다른 지역과 다른 특성이 있었다. 충남 내포지역에 속해 있지만 오천과 결성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와 반도 모양의 지형이다. 서산 간척이 있기 전에는 김과 굴 생산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으나 한참 거리에 있는 서산 A, B지구 간척공사 이후로는 해류가 변화해 김과 굴 농사가 전부 망했고, 홍보지구 간척사업 이후로는 또 연안의 맨손어업이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로 돼지, 소, 닭 영농에 기대를 건 농가들이 늘어나 전국 면단위로는 돼지사육 두수는 최고의 축에 든다. 돼지는 18만 마리, 한우 1만2천마리나 키워지고 있다.

반면에 농촌의 고령화현상을 비껴갈 수 없지만, 아직도 40~50대의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향에 오랫동안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로 이웃집 숟가락을 셀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생활수준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하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4H운동이나 연극바람과 같은 물결은 진작 사라지고 대개 농촌이 그렇듯 각자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농촌의 생산구조에 갇혀 있었다. 그럼에도 잇따른 정부의 정책변화가 자신들의 생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생생하게 체험했고, 시장변동에 따라 일년농사가 춤을 추고 유통상인들에게 자신들의 피와 땀이 흘러가는 것도 매일 두눈으로 지켜보며 쓰린 가슴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정녕 다른 길은 없는가.

'천북의 미래’ 영농법인은 이런 개인의 한계와 갑갑한 농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모임이다. 그럼 이 천북의 미래, 아니 한국농업의 내일을 열어갈 조직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우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자신들이 생산하고 있는 돼지고기와 소, 닭에 대한 가공식품을 직접 만들어내는 일이다. 우수종자의 확보, 환경사료사용, 고품질과 위생기준에 합당한 생산시설 확보, 차별화된 생산제품과 판매,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둘째는 하루에 돼지에서만 1천㎥가 나오는 축산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재활용하는 일이다. 아직 경제성이 없지만, 정부도 재생에너지 사업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누이좋고 매부좋은 사업이다. 셋째는 현재도 전국적으로 알려져있는 굴구이 등 농수산물에 대한 대책과 친환경적인 농촌만들기 프로그램을 짜고 구체화하는 일이다.

'천북의 미래’가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고 내일을 열어가는 농촌만들기의 깃발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태복 / 전 보건복지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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