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리는 국민연금 투자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리는 국민연금 투자
  • 광명시민신문
  • 승인 2009.11.2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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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 연재칼럼  

가계빚이 7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면 가계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파산하는 가정이 속출하게 된다. 지금처럼 정부가 가산금리 체계를 뜯어고치는 작업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 금융권의 폭리가 늘어나 외국투자가들의 봉이 되는 반면, 가계의 주름살은 깊어지게 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전체 국민들의 노후자금이 되어야 할 국민연금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은채 27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적립금을 둘러싸고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정부, 특히 경제부처가 국민연금 자금에 눈독을 들이면서부터 예견되어왔던 일이다. 공무원연금 고갈이 과거 정권들의 주가 떠받치기에 투입됐기 때문인데 국민연금도 그 꼴이 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운용에 대한 경제부처의 입김이 대폭 늘어났다. 외국투기자금에 놀아난 경제부처의 금융관료들이 외국자본의 치고빠지는 작전에 뒷돈을 대주는 역할을 국민연금에 맡긴 꼴이 되어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에 누가 봐도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 본가의 급한 불을 꺼야 할 사정에 있기 때문에 주가하락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돼있었다. 그런데도 주가유지를 명분으로 국민연금을 주식시장에 계속 밀어넣었다. 그 결과는 외국투기자본은 막대한 3조5000억원 차익을 거둬갈 수 있었고, 국민연금은 19조75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어느 누구도 지지 않았다. 이런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한 태도는 비단 주식투자에 국한된 게 아니다. 국민연금운용과정에서 특정한 재벌기업들의 편식이 심각한 지경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국민 전체가 모아낸 노후자금이 재벌기업의 돈놀이자금으로 둔갑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국민연금과 복지부, 정부의 경제부처들이 이제는 정체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는 미국권력의 핵심 이너써클의 펀드인 칼라일과 함께 해외부동산 매입에 나섰다. 일본 동경의 오피스빌 등을 4천600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한국에서 인수자격도 없는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먹어삼켰고, IMF 이후 헐값인수로 천문학적인 폭리를 취한 칼라일이 아닌가. 그때도 그들의 뒤를 봐주던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는 칼라일그룹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고, 그들은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 정체불명의 자금과 공동으로 한국의 국민연금이 투자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 거기에다 국민연금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있는지 런던의 홍콩상하이은행의 본점 건물을 1조5000억원(7억7250만파운드), 오피스 빌딩에 3500억원을 쏟아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드니의 빌딩매입에도 나서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지난해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 유통시켰고, 그 결과는 당연히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의 거품이 심각해 위기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일본, 런던 등 선진각국도 예외없이 30~40%의 자산거품이 문제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제 정신이라면 이런 바보짓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측은 기금이 너무 늘어나 채권이나 주식투자가 제한적이므로 투자의 다양화하는 불가피하며 어떤 흑막도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영위원회가 경제부처의 입맛에 좌우되고 있고, 그들 경제부처들은 알토란 같은 흑자공기업들을 해외에 헐값에 매각하는데 앞장섰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외국투기자금의 안전판을 위해 국민연금을 주식판에 집어넣었다는 것을...

따라서 국민연금이 지금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부동산거품이 잔뜩 끼여 있는 선진국부동산 쇼핑에 나서는 일이 아니다.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500여만명의 국민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가능성이 큰 부품소재기업에 투자하고 우리은행이나 대우건설처럼 회생 가능한 기업들을 사들여 경영안정 뒤에 되팔거나 계속 뛰기만 하는 원자재 분야에 투자하여 자원전쟁에 대비하면서 국민의 삶과 한국의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이태복 /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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