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투기자금 89조원 폭리, 반투기법 제정해야
외국투기자금 89조원 폭리, 반투기법 제정해야
  • 이태복
  • 승인 2009.12.20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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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예산을 둘러싸고 여야의 싸움이 치열하고, 행정관청의 세금낭비인 연말의 몰아치기 관행은 여전하다. 그런가 하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세군 냄비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쪽방촌에 연탄을 나르는 미담도 들린다. 주변에는 50대 초반에 일자리를 잃고, 내일생활에 한숨이 이어지는 가정이 많건만, 경제회복이니, 5% 경제성장이니, 무역흑자 등 장밋빛 단골손님까지 신문방송을 누비고 있다.

우리가 허우적 거리고 있는 사이 중국의 부주석급 인물이 국빈대접을 받고 한국에서 한수 배우겠다는 예전의 겸손한 자세는 사라지고, G2국가의 위상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이러다간 미국에 이어 또 하나의 상전이 들어설 것 같은 예감이 머리를 흔든다.

하지만 그래도 올 1년의 국민경제를 되돌아볼 때 가장 크게 손실을 보고, 국민경제를 멍들게 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역시 한국증시에서 외국자금이 89조원 평가익을 얻은 문제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한국의 개미군단들은 해외펀드에 목돈이나 월급을 집어넣었다가 대개 쪽박을 찼거나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한국에 진출했던 투기자금들은 한국에 잠복해있던 경제저격수들의 활약으로 국민연금의 뒷받침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빠져나갔다가 세계 최고의 환율폭락을 이용해 대거 한국주식을 다시 사들여 89조원, 890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평가이익을 얻었다. 이들은 원화절상이 이뤄지면 다시 환율이득을 볼 것이고, 선물과 파생상품에서도 여기저기 미끼를 던져 한국의 개미군단을 털어갈 것이다. 이제 이런 풍경은 OECD 가입 이후, 특히 IMF 이후 한국경제의 일상의 모습이 되었다.

도대체 한국의 금융제도의 어떤 허점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끊임없이 개미들은 털리고 외국의 투기자금은 10여년 동안 황금노다지를 한국증시에서 깨고 있을까? 왜 한나라의 피와 땀의 결정체인 무역흑자액보다 배가 많은 폭리를 외국의 투기꾼들이 취하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은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경제정책의 당국자들과 언론들이 한통속이 되어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증시에 대한 금융당국의 인위적 개입은 이른바 글로벌 기준에 위배된다고 주장해왔으므로 그 판에서 실력 좋은 자들이 이득을 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므로 문제삼을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국정부는 그들 자신이 먼저 규제의 칼날을 휘둘러 사태확산 방지에 나섰고, 국유화 조치도 서슴치 않았다. 한국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 신용평가 회사들을 동원해 신용등급을 낮추고 온갖 협박을 서슴치 않았을 텐데, 그들은 국가부도위기에 빠진 미국의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의 금융당국은 외국투기자본이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분탕질을 방치하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에서 계속 폭리를 보장해주는 하수인 노릇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몇 년 전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경제 저격수의 고백’의 진실은 한국에서도 어김없는 진실이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수십년 동안 피와 땀을 흘려 이룩한 알토란 같은 국부를 국제투기꾼들의 먹이감으로 만들고 2만달러 선에서 허욱적 거리게 만들고 있는 경제저격수들의 정체는 언젠가 밝혀지고 말 것이다.

어쨌든 2009년을 보내며 1년에 89조원, 나라를 분열로 몰아가고 있는 4대강 사업 예산의 5배가 넘는 1천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폭리를 취하고 있는 외국의 투기자금을 규제하기 위한 강력한 반투기법을 시급히 제정하라. 출구전략의 시기를 둘러싼 논란만 벌이지 말고, 환율정책과 재정확대의 적절성에 관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투기자금의 진입을 제한하고 일단 한국시장에 진입한 투기자금의 유통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폭리에 대한 과세를 시행한다면, 경제성적과 관계 없이 등락을 거듭하는 투기꾼들의 작전도 억제될 수 있고, 개미군단들의 상투잡이도 줄어들고, 국부유출도 막을 수 있다. 브라질은 이미 2%의 거래세를 도입했고, 유럽각국도 토빈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경제저격수와 국제투기꾼들이 애국주의, 국수주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던 정책들이 선진국과 세계 각국에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금융시장은 자신들의 ‘현금인출기’라는 오명을 언제까지 뒤집어 쓸 것인가.

이태복 /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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