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흘린 작업복 하나가 매력이다.
땀흘린 작업복 하나가 매력이다.
  • 강찬호
  • 승인 2002.12.1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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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남기표씨의 작업장. 아래/ 일하는 모습>


“땀 흘린 작업복 하나가 매력이다.”

- 철산4동 남기표씨를 찾아

광명에 들어와 12년째 살고 있다.

앞으로 광명을 못 떠날 것 같다. ‘광명’이라는 이름이 좋아서다.
현재 일터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8년째다. 하안1동 제일은행 옆 2평 남짓 공간. 두 사람 앉을 공간이다. 손님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공간.주인공은 남기표(42)씨다.

겉모습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인지라,

그럴듯하게 열쇠 등을 진열하고 싶지만, 이 공간에서는 턱없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다.
“2년이 지나면 10년이 된다. 뭔가 새로운 일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구석 책꽂이에 부동산학개론 책이 눈에 띤다. 미래를 준비하는 겸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업종전환. 최근의 가장관심사란다. 50대를 준비하는 40대 한국남성의 고민이다.
22살 때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에서 상경했다. 밀가루 공장, 숟가락 공장, 실내장식, 보조키 손잡이 제작 등 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일은 안 해본 것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열쇠제작 및 수리. 공장에서 보조키 제작 일을 하다 중단한지 10여년이 지나 다시 열쇠 관련 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 일터 자리는 원래 구두 수선방이었다고 한다. 인수하고 처음 6개월은 구두 일을 했지만, 비젼이 없다고 판단하여 열쇠 일을 시작했다. 기계를 들이고 무조건 하였다고 한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다. “닥치면 하게 된다.”

남기표씨는 혼자 산다. 노총각이다.

가족을 꾸리지 않았으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돈을 많이 모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돈이 없다고 하신다. 이유를 물었다. “눈이 안 좋아 치료비가 많이 들었다. 선천적인 문제는 아니고 어려서 홍역을 알았다. 그 후유증인 것 같다. 최근에 라식 수술을 받아 그동안 사용해오던 렌즈를 뺐다.” 눈 때문에 겪어 오던 어려움들을 이제는 어느 정도 극복한 듯 하다.

일 하면서 드는 소감에 대해 물었다.

“일터 앞을 지나는 어린이들이 종종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인사를 해오면, 몸이 가벼워진다.” 그러나 남기표씨는 신중한 편이다. 세상에 험한 일이 많아,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마음만큼 대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오해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는 주부들이 지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먼저 인사를 걸어오는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혼자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부러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는 이가 오해 받을 것 같아서란다. 간혹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으며, 당당하게 직업의식 투철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언론에 소개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4,50대 인생을 살아오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다른 이들의 입장을 먼저 헤아린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사회 20,30대보다는 40대가 수준이 더 높다고 본다.

일을 하다보면 가격을 할인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젊은이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연령이 높을수록 달라진다. 오히려 젊은이들에 비해 감사해한다.” 단적인 예다. 감사해할 줄 아는 인간의 도리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간혹 혼자 사는 독거노인 집에 방문해 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공짜로 해준다”고 한다. “어떤 노인들은 반값으로 할인해주는데, 오히려 원래 값을 치르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젊었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며 오히려 가격을 제값에 치른다고 한다. 세태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이다.

남기표씨는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인생에 대한 쓸쓸한 표정이 있으면서도,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천진한 느낌을 인터뷰 내내 받았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별명이 ‘목사’였다.
남기표씨가 시간이 나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종종 들르는 곳이 있다. 광명만남의집이다. 혼자 살다보니, 늘 반갑게 맞아주는 만남의 집으로 발길이 종종 닿는 가 보다.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통해 이 단체의 회원이 된 것이 5년 정도 됐다고 한다. 회원이지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들리는 것이라고 그저 편하게 이야기 한다. 만남의 집은 참 좋은 곳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또 느껴본다. 그러나 만남의집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온갖 굳은 일을 다해준다. 싱크대, 선반수리 등. 나사로 하는 일은 뭐든지 한다. 철산4동 주민들의 일상을 다 파악하고 있다. 아는 것도 많다” 만남의 집 문금례 위원장, 조명선 간사의 평이다. 작지만 복지단체 ‘한국사랑밭회’에 꾸준히 후원을 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남기표씨 자신은 “지역에서 뭐 큰일 하는 것 없이 그저 혼자 살아가는 ‘독불장군’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평가하기도 한다.

한때는 체신청 공무원이 되고 싶어

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인생은 어느 덧 여기까지 왔다. 모아 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면 언제 장가는 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저 하루하루 일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현재고, 모습이다. 열심히 생각하고, 모색을 한다. 누구나 각 자의 길이 있다. 그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누가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남기표씨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한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어느 대선 후보의 공약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작동방식이 문제인거다. 그래도 남기표씨는 제 길을 가고 있다. 명함을 내민다. 보통의 명함에 새겨진 ‘직장’, ‘집’ 대신에 ‘일터’, ‘쉼터’를 새겼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다.

이 일터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눈에 띄는 두 가지가 것이 있다.

하나는 이번 16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사진을 신문에서 오려 벽에다 붙여 놓았다. 이곳에 찾는 이들이 당연히 질문을 한다고 한다. 먼저 말을 건다. “다들 똑똑한 사람들 아닙니까?” 손님반응. “찍을 사람이 없다.” 그럼 다시 답한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지요.” 다시 손님. “아저씨는 누구 찍을 생각입니까?” 그러면 남기표씨는 “아직 정하지 않았고, 투표 전날 정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어느 특정 후보를 정해놓고 그 후보를 찍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손님과 자연스럽게 세상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먼저다. 이러 식으로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또 하나 눈에 띤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속담 문구가 아크릴로 해서 벽 구석 한쪽에 부착되어 있다. 미리 집안 돌아보고, 열쇠 미비로 인한 사고를 당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재치있다. 또 눈에 띠는 게 있다. “웃는 얼굴, 밝은 미소 다시 찾는 신광명 열쇠” 작은공간이지만 나름대로 운영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남기표씨는 평범할지 모르지만 프로의 인생을 살고 있다.

“땀 흘린 작업복 하나가 매력이다.”

“노는 기쁨 순간, 일하는 보람 오래 간다.”
잘 살아보세! 새마을운동 시절 산업역군들을 위한 구호 같지만, 하루하루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살고자 하는 남기표씨의 삶의 구호이자, 철학이다.
남기표씨는 얼마 전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2차에 붙었다. 면허를 따면 ‘다마스’차를 뽑을까 생각중이다. 이동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력문제로 엄두를 못냈는데 이제 가능해진 것이다. 또 공인중개사 시험도 치뤘다.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희망을 가질만하다. 덧붙여 컴퓨터 공부도 할 계획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앞으로의 계획들이다.

끝으로 기자가 물었다.

“계획 중에 뭔가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어리둥절해 한다.
덧붙였다. “장가가셔야죠. 공개구혼하시죠? 어떤 여성을 원하세요”. 난감해 하다 마지못해 이야기 한다. “마음 착하고,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 외적인 조건보다는 보이지 않는 인격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노총각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보다 한 참 젊은 기자를 걱정한다. “장가안가?”

강찬호 기자 (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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