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없이, 허허롭게 사는 인생의 멋”이산호씨
짜증 없이, 허허롭게 사는 인생의 멋”이산호씨
  • 강찬호
  • 승인 2003.01.08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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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없이, 허허롭게 사는 인생의 멋”
- 철산동 중앙시장상가 이산호씨를 찾아
 

 @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웃으며 살자는 것"이 좌우명인 이산호씨


철산동 상업지구 번화가 한 켠에는 재래시장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중앙시장 상가 건물이 있다. 이 곳에는 다양한 업종의 소상인들이 생업을 위해 장사 일을 하고 있다. 시장이라면 보통 아주머니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중에서 눈에 띠는 남성분이 있다. 옷 수선을 업으로 하고 있는 이산호씨(53세).
나이에 비해 10년은 젊어 보인다.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스트레스 안받는 거다”란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웃으며 살자는 것”이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짜증내지 않고 허허 웃으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덧붙인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복잡해 보이는 인생도 단순함 속에서 진리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 경우가 그렇다. 굳이 도를 언급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지혜를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 지금은 양장일을 주업으로 하지만 타고난 끼로 지역 주민들과 하나된다.


이산호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양장일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직업에 성별을 따지는 것이 구닥다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이런 쪽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매우 별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친구 누나가 양장점을 했는데, 그 당시 그 곳에 가서 일을 돕고 눈썰미가 있다는 말에 조금씩 배우게 된 것이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시절인 만큼 무언가 기술을 익히는 것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산호씨는 지금 양장일을 주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지만, 본래 타고 난 끼가 있다. 이미 중학교 때부터 학교 밴드부에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도 밤에는 음악을 했다. 당시 꽤 알려진 밤무대에 서기도 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원래 하고 싶은 일중에 하나였다. 결혼하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접고, 나름대로 할 것은 다해봤다는 부인의 의견을 존중해 생업에 열심히 종사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고 끼를 감추는 것은 아니다. 광명에 온 것이 85년쯤인데 그 전에는 봉천7동에 살았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한 뒤에 동네 골목길에서 주민들과 함께 춤과 노래로 한바탕 어울리면, 동네가 들썩들썩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거리의 악사다. 주민들이 이산호씨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봉천동 주민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광명시로 이사 와서 처음 느낌은 아파트 문화에 갇힌 개인주의를 느꼈다고 한다. 개인주택에 살면서 동네주민과 어울리던 봉천동과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산호씨는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이웃을 집으로 초청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산호씨 집은 이렇게 어울릴 수 있도록 준비가 돼있다. 집에 이미 조명시설 등 노래와 춤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잘 노는 것이 알려져 주변에서는 환갑잔치 등 잔치가 있으면 이산호씨를 초청한다. 트로트를 즐겨 부르고, 못 추는 춤이 없다. 별명이 ‘제비’일 정도다. 잔치에 흥을 돋구고, 서로 어울리게 할 수만 있다면, 여장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료로 해준다. 외부에 밴드나 전문 사회자를 부를라 치면 촌지도 들고 하는데, 자신이 하면 이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무료로 한다. 즐거우면 그만이다.
예전에 전국노래자랑 광명시편이 열릴적에도 당연히 출현했다. 그 끼를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은 생업 때문에 성당을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성당에서 레지오 봉사활동을 나가면, 마음껏 끼를 발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지금도 작업 테이블에는 새로 익히는 노래가사가 붙어 있다.


이산호씨는 군대제대를 하고 결혼한 후에 줄 곳 양장 계통 일을 해왔다. 의류회사에서 근무를 하기도 하고, 백화점에 수선 납품하는 사업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철산동 중앙상가에서 독자적으로 옷 수선 일을 시작한 것은 5,6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단골손님 중에는 여성주부들이 많은 데, 자주 찾는 손님들 중에는 집안일 등 속상한 일을 가지고서 자신에게 상담을 구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자신이 편하려면, 남을 먼저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라는 나름의 지혜로 만나는 주위 분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다.
지금도 작업 테이블 미싱대 앞에는 새로 익히는 노래 가사가 적혀있다. 조광조의 ‘사랑의 물’, 현지우의 ‘고로해서’.
가족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가장으로서 지금도 오전10시에서 저녁8,9시까지 옷 수선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한 한국사회 한명의 남성이지만, 그의 인생에 대한 멋은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 하다. 취재가 끝날 무렵 잠깐만 기다리라며 아래층에 들러 박카스 한 병을 건낸다. 시장인심이다.
 

 <강찬호 기자(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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