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에 밝은 사람은 정치하면 안 돼
‘이재’에 밝은 사람은 정치하면 안 돼
  • 강찬호
  • 승인 2010.02.12 17: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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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경실련 시정감시단 하숙례 단장 인터뷰...시민단체 활동과 지역 어르신 ‘돌봄 활동’ 양수 겸장...움직이는 노인복지관...개성 표현은 바로 ‘차이’...지금이 가장 행복해.

▲ 하숙례 광명경실련 시정감시단장은 지역 독거노인 어르신들을 돌보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한다.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웃음) 나는 투명하고 낮은데서 일하고 뇌물 안 먹는다. 대차게 일할 줄 알고 건설, 가로수 식재 등 대충 보면 안다. 얼마 떼먹는지 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건데...(웃음). 그런데 난 백로다. 백로도 거기(정치권)가면 까마귀 된다. 거기가면 줄 서야 한다. 삶 당당해야지. 난 그냥 재밌게 사는 것이 좋고 지금이 행복하다. 말 잘한다고 정치나 정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침묵한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곧은 신념으로 주관 세우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나라던 가정이던 바로 서려면 ‘줄’을 끊어야 한다.”

하숙례(56) 광명경실련 시정감시단장에게 그동안 시의회 방청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묻자, 대뜸 쏟아낸 말이었다. 웃어가며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이재에 밝은 사람들은 정치하면 안 된다. 시정감시단과 같은 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고서 시의원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좋은 이들이 있다면 돕고 싶다.”

하숙례 단장은 도덕파크아파트가 조성될 당시 인근 현대아파트에 거주했다. 암반 발파가 진행되면서 그 피해를 인근 단지 주민들이 입게 됐다. 현대아파트주민대책위가 구성됐고, 하 단장은 당시 총무를 맡았다. 머리띠 묶고 포크레인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당시 ‘하 총무’하면, 주공 현장 소장이 치를 떨었다고 한다. 왜냐? “그 만큼 청렴했기 때문”이란다. 먹은 게 없으니 권리 주장을 당당하게 한 것이었고, 당시 이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현대아파트 주민대책위 활동하면서 바깥 나들이....화려한 나 만의 패션은 개성이자 차이.

이후 지인의 소개로 광명경실련과 인연을 맺게 됐다. 광명경실련에서 예전에는 ‘살기 좋은 아파트 모임’ 활동을 했고, 지난해는 시정감시단장을 맡아 활동했다. 여성이지만 큰 키에 화려한 패션을 자랑한다. 그래서 눈에 띤다. 튄다. ‘누구지? 시민단체 회원 활동가 맞아’ 싶을 정도이다. 빨갛게 염색한 머리에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고 방청 활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튀는 패션의 시작을 묻자 답변이 또 걸작이다. “당시 경실련에 갔는데, (생활)한복을 입고 있더라. 편하니까 입었겠지만, 거부감이 있었고 개성이 없어 보였다.” 하 단장은 그때부터 화려한 패션의 길을 걸었다. 다르게 하고, 개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 임대아파트 단지를 돌아 다니는 하 단장의 한 손에는 어르신들에게 전달할 음식이 실린 짐 수레가 들려있다.

하 단장은 ‘움직이는 노인복지관’이다. 그는 하안13단지 임대아파트를 누비고 다닌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활동했으니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13단지 가면 다 내 팬이다.” 화려한 패션에 아이스박스를 캐리어(짐 수레)에 싣고 다닌다. 아이스박스에는 임대단지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될 음식들이 담겨있다. 하 단장을 통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될 물품을 후원하는 이들이 많다. “난 애들은 예뻐하지 않는다.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예쁘다. 아이들은 달라고 하면 또 달라고 하는데, 어른들은 살아오신 연륜이 있어 ‘사랑이 진심이다’는 것을 알면, 10개를 준다. 어르신들이 주는 사랑의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이다. 그 묘미를 알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다. 하면 행복하다.”

하 단장이 10년 가까이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된 것은 현대아파트주민대책위 활동 이후다. 주민대책위에 모인 이들 중 ‘현대사랑’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역복지봉사회 경로식당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투쟁적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 있어서 이미지 탈피도 할 겸 보람된 일을 찾아 시작한 일이다. 이후 하안복지관 독거노인파견사업에 ‘생활관리사’로 참여해 일했다. 이전에는 지역복지 봉사회 가정도우미도 했다. 일을 하면서 독거노인들과 맺은 인연이 많아졌다.

13단지 임대아파트 단지 누비는 걸어 다니는 노인복지관...어르신들과 눈 높이 맞춰 친구처럼

매 월 첫째 주 목요일에는 철산4동 지역에서 독거노인 생일상 차려주기를 한다. 아는 사람 30여명과 함께 하고 있다. 우연히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생일상 차려주기 행사를 따라간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됐다. 혼자 차려주는 방식보다는 여럿이 차려 주는 것이 덜 외로워 보일 것 같아 친구 등 지인들과 함께 생일상 차려주기를 하고 있다. 지인들이 서로 음식도 나눠 맡아 해오고, 케이크는 뚜레주르에서 후원 받는다.

하 단장은 최근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심청방문파견센터 문을 열었다. 노인요양보험과 연계해 노인요양사를 파견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 단장은 10여년 지역 어르신들을 돌봐 오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원칙에 충실하게 운영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돈 버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어르신들)눈 빛만 봐도 안다. 그들에 맞게 ‘케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요양보호사의 활동이 가사도우미 수준에서 진행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케어를 통해 회복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돈 벌 목적으로 더디 회복하도록 하거나 하면 안 된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하 단장은 많은 후원자들을 통해 이 일을 해 나갈 계획이다. 하 단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행복하다. “애들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스스로를 위해, 자존감을 위해 사니까 몸은 힘들지만, 행복하다.”

나 보고 중국인이라고?...그게 바로 '차이'에서 오는 것.

“내 ‘닉’(닉네임, 별명)은 ‘차이’다. ‘다르다’는 우리말이다. 모습도 다르고, 사고도 다르다. 삶의 방식도 다르다. 다 다르다. 50대에 나 같은 사람 없을 거다. 어떤 때는 나 보고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차이나’는 것이다.” 하 단장의 ‘개성’ 예찬이자, 철학이다. 하 단장에게는 ‘93세 첫째 딸, 70세 둘째 딸'이 있다. 어르신들과 친구가 되어 격 없이 지낸다. “세 살 눈높이로 봐주면 된다. 일반인들은 어르신으로 대접하려고 하지만, 나는 바닥에서 같은 눈높이로 놀아준다. 그게 나다. 바로 차이다.”

하 단장과 인터뷰는 11일 오후 4시쯤 진행됐다. 인터뷰 중에도 전화가 울린다. “00씨, 사랑해요. 더 많이 사랑해요.” 비가 조금씩 내렸고, 흐린 날이었다. 전화 목소리는 도덕파크에 거주하는 70대 어르신이다. 집에서 막걸리 한 잔 먹다, 하 단장에게 ‘사랑해 달라’며 전화를 한 것이다. 언뜻 아이와 통화하는 듯하지만, 하 단장은 이 어르신의 처지를 잘 안다. 어르신 우울증은 일종의 화병이라고. 우울증 약을 먹고 있지만 잘 듣지 않는다.

“독거노인들은 가족이나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이 있어 마음을 선뜻 열지 않는다. 의심이 많다. 그러나 신뢰를 얻고 마음을 열면 무한정이다.” 하 단장은 이날도 붉은 색 계통의 화려한 의상을 입었다. 알고 보니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였다. 회색이나 검정색 등 어두운 계통의 색은 죽음을 연상시켜 안 입는다. 어르신들 기분 좋게 하려고 밝게 입는다. 화장도 꼭 한다. 어르신들에 대해 예의이고,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르신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달려간다. 하 단장의 전화는 24시간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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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8 13:51:23
나는왜좋은사람이라고못느꼈을까?

스마일 2010-02-13 13:07:17
정말 아름답고 고맘고 감사합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게되지요. 궂은일 마다하지 않으시고 경인년 새해 가정에 복에 복이 더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