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족반역자 김창룡 묘를 이장하라"
칼럼>"민족반역자 김창룡 묘를 이장하라"
  • 문병준
  • 승인 2003.06.10 09: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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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과 호국영령

"민족반역자 김창룡 묘를 이장하라"

6월 6일 현충일,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은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호국영령들을 기리려는 자손과 관계자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진다. 길 양쪽에는 '추모의 염'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현수막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아침 8시부터 대전의 국립현충원 입구에는 시민단체와 전교조, 정당관계자들이 추모의 염을 깨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과 피켓에는 "민족반역자 김창룡 묘를 이장하라" "김구선생이 통곡한다" 등의 글을 담고 있다. 동시에 '김창룡 묘 이전'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황금연휴의 첫날에 왜 이들이 거리로 나왔을까?

김창룡은 함남 영흥에서 1916년에 태어나 1956년 암살될 때까지 민족을 배반하는 삶을 영위했다.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관동지방 헌병으로 임관된 이후, 항일조직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해방 이후 일제청산과정에서 북쪽 정권으로부터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두 번 모두 탈출에 성공한 김창룡은 월남을 결행한다.
한 때 거지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미 민족반역자와 친일파세상이 된 남쪽에서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군 방첩관계 일을 하게 된다.

좌우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김창룡은 미국과 이승만의 총애를 받고 승승장구한다. 숙청과정에서 친일파와 이승만 등의 반대편인 많은 애국자들도 함께 처단하는 기민함을 보여준다. 김구선생 암살범인 안두희도 그의 지령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이렇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김창룡 특무부대장은 1956년 특무부대 내의 갈등으로 같은 군인에 의해 암살되고 만다.

순국선열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이 현충원에 묻혀 있다니! 원래 사택에 있었던 김창룡 묘는 김영삼정부 당시 대전 국립현충원이 만들어지며 슬그머니 장군묘역을 파고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 현충원에는 순국선열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묻혀 있다. 서울 현충원은 이미 진흙탕이 돼 버렸고, 대전은 아직 김창룡 정도가 문제이다. 민족반역자가 분명한 사람까지 현충원에 안장해 놓고 '추도의 염'을 가지라면 우리는 누구를 추모해야 하는가? 거짓되고 자기만을 위했던 사람을 기린다면, 후손들에게 거짓을 가르쳐야 하는가? 청산이 없는 역사는 미래의 죄를 미리 용서하고 조장하는 것이다. 역사의 심판은 냉엄해야 한다.

문병준/민족문제연구소 남서지부장 bjmoon23@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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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2003-06-10 09:01:30
무언가 보여 주어야 겠네요. 시민의 힘과 애국자들이 모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