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마라토너, 100회 완주 그리고 인생을 달린다.
칠순 마라토너, 100회 완주 그리고 인생을 달린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0.11.09 20: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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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2동 광명사람 이철로(70)씨.

2008년 새벽 0시. 그는 여의도 63빌딩 한강둔치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는 거리는 백리. 42.195킬로미터다. 마라톤 ‘풀 코스’를 달리는 것이다. 그의 나이 68세. 매서운 추위를 이겨가며 인간의 극한적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을 시작한지 6년째 되는 해이다. 새해 계획을 다짐하며 칠순이 되는 2010년 100회 완주, 팔십이 되는 해는 200회 완주를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광진교를 지나 반환점을 돌아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와 함께 풀코스를 뛴 이들은 150명로 전국대회 참가자로는 적은 수였다. 강추위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반환점을 돌면서 얼어버린 바나나 한 조각과 빙과가 돼버린 냉수로 목을 축였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한강변의 맞바람은 반환점을 돌기 전과는 전혀 다른 고통이었다.

고령의 나이 그리고 새해 벽두에, 왜 그는 그 험한 여정에 나선 것일까. 그는 체력을 위해서도 기록을 위해서도 아니다. 스스로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고자 함이다. 그리고 그 삶을 꼭 보듬어 안고 싶어서다.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만이 그 삶을 알아주고 그 삶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도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함이다. 그는 말한다. 그리고 끝없이 되새겼다.

“삶이 힘들고, 외롭고, 슬플 때 나오는 속울음을 참아 삼키며 바람처럼 왔다 지는 꽃잎과 같이 외로운 길 떠나는 나그네의 고독을 씹으며, 상실된 삶에 용기를 싣고자 인내와 끈기를 염불처럼 외우며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 63세때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7년이 지난 2010년 100회 완주 자축연을 열었다. 왜 달리는가. 그는 과거 파란만장했던 삶을 돌아보며 마라톤을 뛰고 있다.

그는 약속대로 2010년 11월 7일(일). 입동의 길목에서 100번째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 정확하게는 102번째다. 오전 5시 집에서 나와 대회장에서 8시부터 뛰었다. 중앙일보 주최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그의 기록 4시간 48분 20초. 그의 나이 70세. 이철로씨(철산2동)다.

이날 마라톤 완주를 하고, 오후부터 자축연 행사를 했다. 그를 아는 많은 지인들이 축하했다. 전국적으로 12명 회원이 가입해 있는 ‘칠순 마라톤 클럽’ 회원들도 그를 축하했다. 회원 모두가 100회를 넘겼고, 올해 칠순이니, 이 모임의 막내다. 아마도 그는 70대로서는 광명지역에서 유일하게 100회 완주 기록을 가졌을 것이다. 한편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그동안 마라톤을 혼자 해왔다. 주변의 권유로 광명마라톤클럽이나 칠순클럽 등 동호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올해 상반기로 최근의 일이다. 이날 자축연도 마라톤 클럽 동호인들의 권유로 마련됐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다. 63세 때 지역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 삼아 테니스를 해왔는데, 문득 학교 운동장을 뛰는 주부들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두 바퀴 정도 돌고서 숨이 찼고, ‘아차 싶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날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고령의 나이에 시작한 마라톤의 고통을, 과거에 살아온 삶의 과정을 ‘파노로마’처럼 되새기고 곱씹으며 이겨냈다.

“백리를 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달리기 선수도 아닌데...그런저런 (삶의) 의미를 갖고서 뛰는 것이다. 그런 의미를 씹어 삼키며 뛰는 것이다. 과거 돌아보며 절박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통증을 이겨낸다.”

사실 그랬다. 주변의 권유로 100회 기념 자축연 파티를 열기는 했지만, 그는 100회 완주를 하는 날 한강변에 나가 혼자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다. 그 이유를 누가 알겠는가. 지나 온 날들의 회환을 잊고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채워가고 싶어서였을까.

“천년의 세월을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칠순을 막 지난 오늘에서야 기껏해야 백년을 살지 못하는 삶임을 알았습니다...이제, 남은 그러나 짧지 않은 세월은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채워가는 세월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는 자축연 파티를 하는 당일 인사말을 메모해왔다. 그러나 말하지 못했다. 그가 메모해 온 글의 일부이다.

이철로씨와 인터뷰는 11월 9일 광명경실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지금까지 달려 온 마라톤 기록지를 가지고 있다. 빼곡하게 대회참가 기록이 채워있다. 100여개의 완주 매달은 집에 비치돼 있다. 모두가 공식대회 기록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지난 온 세월의 삶을 돌아보며 때론 눈시울을 붉혔다.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인생과 마라톤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팔순 200회 완주를 위해 달릴 계획이다. 헉헉대며 고통과 싸우는 마라톤 현장에서 그는 깊게 삶을 껴안을 것이다. 그의 100회 완주를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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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2010-12-30 12:14:28
건강하셔서 200회 완주를 꼭 하시길 빕니다.
저도 축하연에 갔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