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캠프에서 정답 아닌 ‘해답’을 찾았다.
워크캠프에서 정답 아닌 ‘해답’을 찾았다.
  • 조상욱(광명고2학년)
  • 승인 2011.09.14 09: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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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었던 5박 6일 필리핀 워크캠프 참가기

난 저번 주 오늘, 말라보 아이들과 폭포, 온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별의 슬픔을 그들과 같이 나눈 뒤 우리의 마지막 활동 나눔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지난 일주일이 한 달이나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너무 슬픈 일이다. 그들과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무리 그 시간들이 꿈만 같았다지만 이렇게 벌써부터 다시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내가 조금은 미워졌다.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겪었던, 느꼈던 것들이 너무 많아 어느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곳에선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다. 우리가 묵었던 기숙사 숙소의 식당 직원들부터 읍내 시장의 상인들까지도 모두 우리를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물건을 사지도 않고 사진만 찍어달라는 우리의 무례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우리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그리고 이 필리핀 친구들은 정말 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의 방문이 마을에서도 큰 행사였으니 그랬을지 몰라도, 평일에도 하루 종일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뛰어노는 것이 일상인 것 같았다. 특히 아이들이 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되지도 않는 이상한 춤을 춰도 웃으면서 신나게 같이 해줬다. 단체로 청소년체조를 출 때도 따라해주던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들을 보며 감명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보니 나도 ‘어린이집 원장님 아들’이 맞긴 맞나보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땐가부터 아이들과 뛰놀며 살갑게 대해주고, 방과 후 활동 때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진행하던 수업 과제들을 잘 수행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내 영어이름은 ‘Aeneas(어네이어스)’이다. 이름의 출처가 로마신화에 나오던 신의 이름이라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조차 내 이름을 어렵다고 해서 중간에는 내 이름의 축약형인 ‘Nay(네이)’로만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말라보에서 지내는 날이 지나면서, 말라보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도 부르기 힘들어하던 내 이름을 불러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네이’가 아니라 ‘어네이어스’로. 예전부터 쓰던 이름이었지만 나도 필리핀에 와서 내 이름의 난이도(?)를 체감하고 이름을 불리는 건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나조차도 포기하고 있던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운동회를 진행할 때 함께 열정을 쏟아주신 말라보 초등학교의 선생님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들은 당연히 우리보다 나이가 많다. 또한 먼 외국에서 온 우리의 운동회 프로그램을 보고 당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프로그램에 적극 협조해주시며 현지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우리들을 위해 직접 아이들의 통역을 자처하셔서 우리들을 도와주셨다.

특히 난 말라보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교장선생님’ 하면 권위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분은 달랐다. 말라보 초등학교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우리의 프로그램에도 적극 동참해주시고 우리를 전적으로 믿어주셨다. 무엇보다 나는 ‘교장’이라는 직함을 다신 분이 학급의 종례를 하는 맡아 하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물론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이니 그런 것이겠지만,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많이 느꼈다.

말라보 마을에서 우리 한국인 학생들을 대표하여 읽었던 연설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연설이랄 것도 없고 1분 정도의 스피치를 급하게 영어로 써내려간 것들이었지만 우리의 말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환영의 박수를 쳐 주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대표’라는 자리는 내가 손을 들어 자원한 것이었다. 난 내가 이런 일을 내가 좋아함에도, 하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일에 ‘하겠다’고 손을 든 적이 많이 없던 것 같았다. 이 경험은 앞으로 이와 비슷하게 갈등할 일이 생길 때 나에게 큰 자신감이 되어줄 것 같다.

난 올해 3월부터 필리핀에 다녀오기 전까지 묘한 징크스를 하나 지니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들은 결국 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되고, 설사 그것이 내 생각대로 진행된다 한들 정신없이 지나가버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징크스가 아니라 그냥 당연한 사실 중 일부였다는 것을 필리핀을 다녀오고 나서 느꼈다. 원래 계획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늘 계획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상황으로 뒤집힐 수도 있는 것이고, 일이 잘 진행될 때도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가 버릴 때도 있다. 나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나 스스로 징크스라고 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생각대로 잘 진행될 때도 있는 것이고, 비록 최악의 상황으로 갔다 한들 전화위복으로 삼아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 자신이 조금 바보 같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징크스를 버리기로 마음먹자 그 생각의 변화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한국으로 오기 전 마닐라 공항에서, 같이 참가하셨던 광명시 공무원이신 박민관 계장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열 세네살부터는 사람이 자기가 생각할 줄 알고 생각에 맞춰 행동한다고. 시대가 바뀌어서 지금은 10대 후반을 넘어서도 아이처럼 지내는 학생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이 말이 아직까지 와 닿는다. 물론 아직까지 배울 것 많은 학생 신분이지만, 이제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대해 책임을 질 나이가 됐다는 것에 조금은 나 스스로 숙연해지면서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주로 고등학교 1학년생인 우리 아이들 중에서 나는 유일한 형, 오빠였다. 사실 그 노릇을 제대로 잘 하지 못한 것 같고 잘 챙겨주었던 기억보다는 잘 못 대해줬던 기억, 내 주장만 고집했던 기억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 말을 잘 따라주며 웃을 때 같이 웃고, 울 때 같이 울던 우리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 또한 현지에서 우리들의 안전과 원활한 행사진행을 위해 가장 힘써주신 서은혜 선생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너무나 고생하셨던 이영이 선생님, 변영진 선생님을 비롯한 광명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및 광명시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필리핀에 가기 전 날 나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있다. “나에 대한 ‘답’을 찾고 오겠다!”고. 물론 돌아오고 나서도 ‘정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해답’은 찾았다. 어차피 앞으로 내가 살아갈 때도 정답이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필리핀을 다녀오면서 얻은 ‘해답’들로 자신감을 얻고 살아갈 것이다. 2008년 이후 진행되지 않던 이 행사가 올해 다시 진행된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이제 2011년 8월에 있었던 일들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 필리핀 워크캠프는 청소년국제교류행사 일환으로 여름방학을 맞아 지난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됐다. 광명시가 주최하고 청소년상담센터가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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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iana 2011-10-28 01:56:49
Touchdown! That's a really cool way of putitng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