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농장에서 온 편지
행복농장에서 온 편지
  • 민준맘
  • 승인 2011.11.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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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산초 학부모 동아리 ‘행복농장’ 일년살이 이야기

밥을 먹이려는 엄마와 밥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와의 밥상 전쟁이 한창인 오전 8시.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시끌벅적한 밥상전쟁이 사라졌습니다. 모두 베란다 김치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그 김치’ 때문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한 그릇 뚝딱 먹고 일어서니 아침이 괴로운 제겐 밥상의 구세주와 다름없습니다. ‘그 김치’가 무슨 김치냐고요? 아이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만든 그 김치”입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 만든 김치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슨 김치를 만들었겠냐 싶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김치에 들어간 주재료인 배추와 무, 쪽파 모두 고사리 손이 일궈낸 먹을거리로 만든 김치니 온전히 ‘내가 만든 김치’는 맞습니다.

아이에게 싹을 틔우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수확의 기쁨, 자연의 감사함, 그리고 공동체의 힘을 깨닫게 해준 그 김치의 이름은 ‘행복농장표 김치’입니다. 놀랍게도 행복농장표 김치는 엄마의 마흔 살도 바꿔 놓았습니다.

혁신학교 다니기의 첫 시작, 이웃사촌 만들기

꽃피는 3월, 아이의 손을 잡고 구름산초등학교 입학식에 갔습니다. 드디어 이사까지 감행해 가며 반년 가까이 별렀던 혁신학교 학부모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의지로 만나게 된 혁신학교. 돌이켜보면 일단 좋은 학교만 보내면 아이가 알아서 잘 자랄 거라고 순진한 생각으로 혁신학교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오리엔테이션 같은 3월이 지나고, 담임선생님께 넌지시 “우리 반 공동체 농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을 내놓으셨습니다. 가족 중심의 주말농장이 아닌 여러 가족이 함께 꾸리는 공동체 농장이라…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혁신학교 학부모들에게 내려진 ‘숙제’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죠. 이미 한해 주말농장을 경험한 바, 겁 없이 덤볐습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이가 친구를 사귀듯 부모들 역시 낯선 광명 땅에서 친구가 필요하기도 했으니까요. 이렇게 13가정이 모였습니다. 아이들은 ‘행복농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 그런데 말이죠, 농사라는 게 참 쉽지 않았습니다. 사십 평생 삽질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몸으로 이랑을 만들던 아빠들도, 뙤약볕 아래 호미 들고 김을 매야 했던 엄마들도, TV도 게임기도 놀이터도 없는 허허벌판 텃밭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하는 아이들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친환경 농사법인 유기순환농법까지 고집하다 보니 더 큰 노동이 필요했습니다. 상추와 고추, 방울토마토, 오이, 호박, 고구마의 모종을 심은 뒤 한 달쯤 흘렀을까요? 슬슬 농장을 찾는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농장에 꽃이 가득 피었더군요. 긴 꽃처럼 피어오른 상추 대와 하얀색 꽃이 매달린 고추, 또 노란 오이의 꽃은 또 어찌나 예쁘던지. 기적은 이어졌습니다. 꽃 끝에 고추와 오이, 방울토마토가 매달리면서 농장은 더 없이 화려해졌습니다. 매주 김을 매고 함께 싸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또 수확물을 거두어 저녁 밥상에 올려 먹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행복농장 방울토마토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자랑하고는 했죠.

반듯하고 아기자기하게 농장의 모양이 갖춰가듯 어느새 남편들은 남편들대로 퇴근길에 술 한잔 걸치는 친구가 되었고,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저녁 반찬을 공유하는 언니동생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요? 아! 팔자에도 없었을 친구와 누나, 동생을 숱하게 얻으셨죠.

태풍이 몰고 온 고난, 함께 일구어낸 땅

고난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리듯 비가 쏟아지던 지난여름, 행복농장도 비상사태에 들어갔습니다.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에 고추는 뿌리째 흔들리고 오이와 방울토마토는 가지가 꺾였습니다. 눈앞에서 그간 일구어온 땅이 한순간에 물바다로 변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엄마들 옆에서 아이들이 엉엉 울음을 터트립니다. 바로 그때 아빠들이 팀을 짜 온몸에 비를 맞아가며 농장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빗속에서 고랑을 파고 고추와 오이, 방울토마토를 더 단단히 묶는 모습을 지켜보며 “만약 혼자 하는 주말농장이었다면 저 비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를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쳤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학교를 중심으로 모인 모임이다보니 여름방학도 문제였습니다. 여느 밭들도 여름에는 두었다가 초가을 전 정리해 다시 가을농사를 시작한다던데, 방학이 끝난 뒤 찾은 행복농장은 “이곳이 언제 농장이었을까?” 싶을 만큼 잡초 무성한 숲 그 자체였습니다. 다시 땀 흘릴 일만 남았던 거죠. 그러고 보면 자연은 참 솔직합니다. 땀 흘린 만큼 열매를 맺고 또 우리에게 돌려주니 말이죠. 몇날며칠 동안 힘을 모은 끝에 농장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가을 농사. 이번에는 배추와 무, 알타리, 쪽파 등을 심기로 했습니다. 11월 김장철에는 꼭 우리가 키운 배추로 김장을 담가 보리라는 야무진 계획도 짰습니다. 그로부터 두세 달 후. 우리는 정말 김장을 담갔습니다. 떠들썩한 마을잔치마냥 시끌벅적하게 아이들은 손과 얼굴에 고춧가루를 묻혀가며 김치를 담갔고, 모두가 성공적인 첫 농사를 자축하며 한해 농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반 아이들 모두 전날 담근 행복농장표 김치를 함께 나눠 먹었다니 가슴까지 뿌듯해집니다.

그렇다면 학기 초 혁신학교 학부모인 우리에게 내려졌던 ‘숙제’는 모두 끝낸 걸까요? 가만히 되짚어보면 숙제는 아마도 꽤 오랫동안 현재진행형 상태일 것 같습니다. 아이가 커가듯, 부모들 역시 성장해야하니까요. 아마도 선생님이 우리에게 내준 숙제는 ‘농장’이라는 ‘공동체’를 일구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라는 얘기가 아니었을까요?

배추와 무, 고구마 등 모든 가을걷이를 끝내고 농장을 등지고 뒤돌아 오던 날, 뿌리째 내주고 텅빈 농장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모든 걸 내어주며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안겨준 고마운 땅. 어찌 보면 아이를 잉태해 키우는 부모라는 역할 역시 저 땅과 같지 않은지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힘을 더해 비옥한 땅을 만들었듯, 함께 마음을 더하면 건강한 아이를 키워내는 길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행복농장은 구름산초등학교 동아리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2학년이 되어서도, 3학년이 되어서도‘행복농장’을 꾸려가기 위함이죠. 이제 더 많은 아이들과 행복의 땅을 일궈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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