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전 광명지역 ‘3.1운동’ 속으로...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93년전 광명지역 ‘3.1운동’ 속으로...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 광명시민신문
  • 승인 2012.02.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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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문화원, 오는 3월1일 기념식 갖고 항일정신 기린다.

▲ 온신초 교정에 조성돼 있는 3.1운동 기념비. 광명문화원은 이곳에서 기념행사를 시 개청 이래 처음으로 갖는다.

광명문화원(원장 이영희)은 93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오는 3월1일(목) 오전11시 온신초등학교 3.1운동기념비 앞에서 ‘2012 광명 3.1운동 기념식’ 개최한다.

이번 기념식은 시 개청 이래 처음 개최되는 행사로, 광명문화원은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항일의 역사를 되새기고,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애국심과 애향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자리로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행사는 식민지 시대 독립군들이 불렸던 독립군가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독립선언서 낭독, 광명 3.1운동 경과보고, 3.1 운동 추모 퍼포먼스,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날 행사가 개최되는 온신초 교정에는 광명에서 벌어졌던 3.1운동에 대한 자료와 식민지 시대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 통치에 대한 사진 등이 전시된다.

광명문화원은 이날 3.1운동 기념식을 시작으로 향후 ‘농민항쟁’, ‘의병운동’, ‘야학’ 등 지역의 항일운동 역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갈 계획이다.

한편 <광명시지> 등 관련 자료에 따르면 1919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이 광명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벌어졌다. 오늘날 광명지역을 포함한 시흥군 관내에서 일어난 집회 회수는 3월부터 4월 중순까지 23회에 달했으며 전체 가구의 80%에 해당하는 규모가 집회에 참가했다.

당시 광명지역의 경우 3.1 만세운동은 자발적, 조직적, 폭력적인 성격을 뗬다. 1919년 3월 27일 서면 소하리에 거주하던 이정석이 노온사리 주재소 부근(현재 온신초 자리)에서 독립만세를 선동하다 28일 아침 일본경찰에 강제 연행되어 치안법 위반죄로 노온사리에 구금됐다.

당시 배재보통학교에 다니고 있던 최호천(21세)과 윤의병(20세)은 이정석을 구출하기 위하여 200여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을 외친 후 노온사리 주재소를 습격하여 곤봉과 돌로 주재소를 타격하였다.

이후 폭력시위에 겁을 먹은 당직 순사가 이정석을 석방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사람들은 독립 만세를 외친 후 해산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은 이종원, 최호천, 윤의병 등을 시위 주동자로 체포하여 갖은 고문을 가한 후 징역 2- 4년을 선고하였다.

일제에 의해 주동자로 연루된 주민들은 최호천, 윤의병, 이종원, 김거봉, 최정성, 유지호, 최주환 등 7명이다. 이 중 최호천, 윤의병은 학생이었고, 나머지는 농민들이었다. 훗날 윤의병은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전선에 투신하여 활동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 외에 유지호, 최호천,최주환은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이종원은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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