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시 한편 어떠세요?
깊어가는 가을, 시 한편 어떠세요?
  • 양영희(구름산초교사)
  • 승인 2012.11.06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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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길 위에 서서 / 양영희(구름산초교사)

 

▲ 2012년6월. 광명혁신학교연구회 소속 교사들은 괴산 느티울행복한학교를 찾아 학교를 둘러봤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오늘처럼 단풍잎지고 비까지 내리면 춥지 않아도 옷깃 여미게 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꾸만 김이 ‘모락’ 나는 차 한잔을 손에 들고 창밖을 보게 된다.

 

▲ 2012년11월3일 가을밤의 잔치

너와 나의 공통점

우리는 두 개의 고향을 가지고 있잖아
서로 귓가에 닿았던 소리와
코로 들어왔던 냄새를 기억하고

생활은 가난한 것 같지만
삶은 풍족하고
외로웠으면서도 매일 행복했잖아

우리는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잖아
(느티울 행복한 학교 최한울)


괴산에 있는 대안학교 ‘느티울 행복한 학교’에선 11월 3일, 토요일 밤을 시 읽고 감상하는 날로 잡았다.

‘가을밤 잔치’라는 테마로 백일장에서 썼던 자작시들을 발표하거나 학생들이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책을 읽은 감상을 낭독하는 학생도 있었다.

▲ 가을밤의 잔치. 시 한편 어떠세요?

학교 마당에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가 모처럼 ‘시’를 통해 서로를 만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고민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쓴 시를 통해 엿보기도 하고 아이들의 생각의 방향과 위치를 가늠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타닥타닥 잔가지들이 타는 소리도 예쁘고 하늘의 별들도 예뻤다. 아이들이 쓴 시가 훌륭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그날 밤의 분위기와 시를 함께 나눴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추억하나 갖는 일이 중요했다. 시와 함께 추억을 남긴 아이들은 이다음 성장한 후에도 아이들에게 그냥 시집만 한권 던져주진 않을 것이다.

 

▲ 느티울행복한학교는 농촌에서 새로운 상상을 해보자며 마을 속 학교를 일구고 있다.

요즘은 ‘책읽어주는 도서관’, ‘책읽어주는 방송’처럼 목소리를 통해 책을 가까이하는 방법들을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이야길 신문에서 본 적 있다. 소리를 통해 문자가 뇌에 입력되면 훨씬 더 강하고 의미 있는 개념화가 생겨 효과도 좋고 상상력과 창조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어린나이부터 문자 교육을 시키고 ,글을 알게 되면 바로 혼자만의 고독한 독서(글읽기)를 권한다. 아니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목소리를 가까이해 책을 읽어주고 그 소리를 통해 책속으로 빠져들 틈을 갖지 못하고 산다. 각각의 방에서 각각의 ‘무음’으로 독서를 한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가졌던 독서와 관련된 관계가 사라졌다. 할머니가 들려주고 엄마가 읽어줬던 목소리낭독의 시기가 갈수록 사라지거나 짧아지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현대인들은 외롭다. 아마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사람의 향기가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리워하고 향수를 갖는지 모르겠다. 그중 가장 사람이 사람에게 편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목소리가 아닐까 한다.

과거 종이가 귀하고 책을 구하기 힘들 때는 마을에서 책을 한권구하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한사람이 읽어주는 내용을 집중해 듣는 풍경이 있었다고 한다. 구슬픈 이야기는 마을 아낙들의 눈물을 쏟게도 했을 것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나중에 책을 볼 수 없게 될 경우이다. 피곤하면 눈이 먼저 아파오는 증상을 겪으며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쓰기만 하면 글자가 잘 보이는 안경이 나와 하루 종일이라도 책을 보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안 된다면 누군가 옆에서 소곤소곤 책을 읽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어느 외국영화에서는 아픈 환자에게 책읽어주는 직업이 있던데 그런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틈만 나면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문화가 생겨난다면 이 문제는 쉽게 사라질 것이다. 공원이든 전철이든 작은 책 한권을 손에 든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책읽어주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런 나라라면 꼭 아는 사람에게만 책을 펼치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목소리로 책읽어주기를 원한다면 친절하게 책을 펼치고 싶다. 이왕이면 시집으로 말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시 한편 어떠세요?

(20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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