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는 노동자들의 밥'을 생각한다.
'밥하는 노동자들의 밥'을 생각한다.
  • 양영희(구름산초교사)
  • 승인 2012.11.13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월9일 학교비정규직 총파업을 보내며...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산다. 그 밥을 잘 먹고 살려고 우리는 몹시도 바쁘고 힘들게 몸과 마음을 쓰며 산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 ‘잘 먹고 살라고 공부 한다’ 는 그 말이 인생의 함축어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해주는 밥을 먹는 아이들, 그리고 직장인들,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밥을 해주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되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그들이 해준 밥을 감사히 먹기도 하고, 반찬 투정을 하며 투덜대기도 한다. 아무 일이 없을 땐 일상의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11월 9일은 밥 한 끼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한 날이었다. 이날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총파업'을 한 날이었다. 교과부와 교육청에서는 긴급히 대책을 세우고 회의를 하고, 학교장들을 모아 몇 가지 준수사항을 전달했다.

11월 6일 임시 교사회의를 소집해 우리가 전달받은 내용은 참으로 신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 달라고 행동하는 최고수준의 움직임인 총파업에 대해 어떤 경우도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 것을 긴급 전달한 것이다.

‘누가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했는지 확인해서도 안 되며, 파업에 동참할 것인지 물어서도 안 된다. 또 농성이나 피켓시위를 해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직접 행동이나 말 뿐만 아니라 암묵적 대응이나 분위기를 형성해서도 안 된다.' 즉 자유롭게 그들이 노동법에 보호된 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부당노동해위에 해당되며 2000만원 이하의 벌금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25년 전 전교조 탄생 시 보였던 교과부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그 자리에 모인 교사들의 표정은 어리둥절했다. 그 당시 너무나 심한 탄압 탓에 '노동조합'하면 교사집단에서는 '가까이 하면 불이익이 마구 쏟아지는 위험한 상자' 같은 생각을 한다. 해고와 일상적 탄압을 옆에서 목격한 탓에 조합원뿐만 아니라 교사집단 전체에 무서운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을 보이니 세월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프지 않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말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엔 갈수록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사립학교는 교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곳도 많다는 얘길 들었다. 공립학교도 법정교원수를 확보하지 않고 있으며(교원법정정원 543,277명이나 현 정규교원은 434,449명), 교원뿐 아니라 실무사, 방과후 코디, 급식실 조리원, 행정실 보조인력, 지킴이등 전체 인원의 20%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구름산초만 해도 2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매년 계약을 다시하며 자신의 일자리를 불안해해야 한다. 처우도 매우 열악하다. 정해진 일들이 명확하지도 않게 시키는 일은 다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정규직과의 관계에서 늘 주눅들어 지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요구는 고용안정, 임금인상, 처우개선이다. 교육감이 직접 이들을 고용해 교육공무직으로 정규직화 해달라는 것과, 단 한 번도 임금인상이 없었던 급식 조리원들의 100만도 안 되는 임금을 현실화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밥을 잘 먹고 싶어 하면서 ‘밥하는 노동자들의 밥’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학교환경을 개선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안정된 지원인력과 노동환경은 교육의 조건을 높여 주는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비정규직의 업무지원이 한시적이고, 자주 교체되는 사람문제로 인해 그분들이 처음부터 배우며 일을 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구름산은 혁신학교로 자리하면서 ‘배움과 돌봄으로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선생님으로 호칭하며 작은 일부터 학교의 큰일까지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하려고 있다.

스승의 날이나 졸업식때 아이들이 이분들의 수고로움에 감사의 인사를 꼭 빠뜨리지 않고 하는 건 그런 문화의 결과로 보여진다. 또 현장학습과 교사 연수의 날에 실무사 선생님들이 동행기도 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선생님들도 모두 아이들의 선생님이란 마음으로 따뜻하고 책임감있게 대한다. 우린 그렇게 산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사이좋게 지낸다 한들 정부가 결정해야 하는 제도와 근로환경은 학교의 몫은 아니다.

9일, 파업으로 빈 급식조리원 자리를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실무사 선생님, 행정실장님, 행정실 선생님, 학부모님들이 대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을 지지하며 하루지만 아이들의 밥을 따뜻하게 먹이겠다는 애정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를 쓰고 모두 하루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구름산 식구들이 모두 미소 지으며 서로를 위하는 그 훈훈한 감동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점심이 되었다. 이분들의 요구가 잘 받아들여져 우리 아이들이 밥걱정하는 날이 또 오질 않길 바란다. 가끔은 교장선생님이 퍼주는 밥이 맛있더라고 말이다.
(2012.11.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