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가 직업인 그가 궁금하다.
자원봉사가 직업인 그가 궁금하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3.01.04 21:1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명사람들]자원봉사센터 굴렁쇠 모임 회장 이덕상씨 인터뷰

▲ 이덕상씨는 직업이 자원봉사이다.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건강상의 위기를 겪고 난 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조미수 광명시자원봉사센터 소장은 그를 ‘직업이 자원봉사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전 자원봉사센터 소장인 이문찬씨는 그에 대해 ‘자원봉사를 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삶의 스타일도 달라진 사람’이라고 평했다. 새해 첫 인터뷰로 ‘그’를 인터뷰했다. 그를 인터뷰한 당일 공교롭게도 현재 자원봉사센터 소장과 전임 자원봉사센터 소장을 나란히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문찬 전 소장과 인연을 통해 자원봉사 세계에 입문했고, 그 인연이 현재 조미수 소장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덕상씨이다. 올해 60의 나이에 들어섰다. 이덕상씨는 이채로운 삶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의 호기가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어떤 사건과 계기를 통해 인생의 큰 전환점이 오기 마련이다. 이덕상씨도 그런 경우이다. 이씨를 4일 오후 그가 늘 출근하다시피 하는 자원봉사센터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자원봉사센터 업무 보조 활동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덕상씨는 자원봉사센터 자체 봉사 동아리인 ‘굴렁쇠’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굴렁쇠 모임은 12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월 1회 정례 모임을 갖고 있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요청하는 일이나 지역에서 요구되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10, 2011년 동두천시와 양주시 수해복구 작업에 참여해 활동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씨는 광명희망나기운동본부 산하 자원봉사단체인 ‘좋은 이웃들’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가 나고 자라 온 소하2동 적십자봉사회 회장, 해병전우회 부회장, 대한흙사랑봉사회 부회장을 맡아 참여하고 있다.

5개 모임을 통해 지역 자원봉사 활동, 지역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가 가장 편하게 여기고 삶 자체가 봉사인 현장은 자원봉사센터이다. 그는 거의 매일 자원봉사센터로 출근을 한다. 일주일에 3,4일이 되고, 많은 경우는 한 달에 20일 가까이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편안한 곳이 있고, 편안한 관계가 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만나는 그런 곳이 있다. 자원봉사센터는 이씨에게 그런 곳 중에 하나이다. 더 욕심을 부릴 것도 없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걸칠 필요가 없는 삶이고, 생활이다. 자원봉사센터에 출근해 필요한 일을 거드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이고, 삶이다. 이씨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 조미수 소장의 말처럼 ‘자원봉사가 직업인 사람’이라는 평가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이씨는 인생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다. 급기야 건강상의 이유로 위태로움을 겪기도 했다. 30대 중반부터 몸에 경고음이 울렸다. 간 경화 조짐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호기로운 사람이었다. ‘50대까지 살다 죽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하며 ‘기새등등’했다. 좋아했던 술을 끊지 않았다. 속된 말로 계속 달렸다. 건강은 악화됐고, 결국 경고음은 실제 상황이 됐다. 40대 중반에 들어설 즈음 식도정맥이 7번이 터지면서 피를 토했다. 수술을 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고, 지금의 간으로는 한 달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어야 했다. 결국 유일한 대안은 간이식 수술. 이식을 위해서는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자식들도 맞지 않았다. 자신을 살린 것은 부인이었다. 부인의 간을 맞교환하는 상황을 통해 이식할 간을 확보했다. 전국 최초의 일이었다. 자신의 부인이 다른 상대에게 간의 일부를 떼어 주었고, 상대 부인의 간을 이씨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이식 수술은 2006년 1월 진행됐고, 이씨는 다시 제2의 인생을 살수있게 됐다. 아프기 이전부터 적십자 봉사회 활동을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이씨였다. 이식 수술을 하기 전 1개월 전에도 영암 설해복구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가능한 일일까. 이씨는 “간이 참 어리석더라”라고 말했다. 피를 토하다가도 때로는 멀쩡한 듯 있는 게 간이란다. 그 틈을 이용해 설해복구 작업에 따라 나선 것이다. 당시 적십자 봉사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이문찬 전 소장과 그를 통해 맺은 적십자와의 인연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아픈 중에도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것은 그런 인연에 대한 화답이었다.

적십자를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했지만 간이식 수술 이후의 삶은 더욱 확연하게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자원봉사 삶에 뛰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재미에 푹 빠지면서 나름대로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 건강도 함께 나아졌다. “자원봉사센터에 일주일에 3,4일 온다. 찾아서 일을 하기도 하고, 부탁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내일처럼 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자원봉사도 마약처럼 중독성을 갖고 있다. 안하면 그런 것도 있고...진짜 보람된 자원봉사를 더 찾아서 하고 싶다. 진짜 어려운 분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 소하2동에서 어려운 독거 노인을 도운 적이 있는데, 뭔가 모르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 맛에 자원봉사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서 한다.” 달라진 삶에 대한 이씨의 자부심이고, 철학이다.

이씨는 소하동 토박이다. 대략 5대째 이상 광명에서 대대손손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집터가 시세가 오르면서 집을 지을 여건도 마련됐다. 서면초를 나왔고, 당시 중학교가 없어 안양중, 안양공고를 다녔다. 졸업 후 (주)선경에서 일했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 회사 근무를 하다가, 나중에 퇴사했다. 수원역에서 10여년 ‘돈 장사’를 하기도 했다. 아프기 전까지 그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을까, 어림잡아 짐작이 됐다. 인터뷰어로서 그의 인생 ‘야사’가 새삼 궁금해졌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돈도 벌었고, 아파서 돈을 까먹었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있는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굴려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생활의 상식’처럼 돼 버린 세태지만, 이씨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더 적극적으로 봉사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돈은 아껴 쓰면 될 것이고, 돈 벌이 대신 봉사를 하자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직업 없이 15년을 살았다.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살림을 줄이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다고 이씨는 말한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혼자는 안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씨도 생사를 오가는 삶에서 생을 유지하고,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이명옥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옥씨를 통해 간 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를 통해 자원봉사를 하는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 이덕상씨가 소개하는 부인의 일과이다. “월요일은 하안복지관, 화요일은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수요일은 노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 목요일은 소하2동 주민센터 푸드뱅크, 금요일은 광명복지관 주간보호센터, 토요일은 구름산복지센터...” 부부가 자원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원봉사센터에 등록할 경우 자원봉사 활동시간을 인증 받고 기록으로 관리된다. 똑같이 시작했는데, 누가 더 많을까. 이명옥씨의 활동시간이 더 많다. 7천시간 가량으로 광명지역 봉사자들 중 10위권에 들 것이라는 것이 이덕상씨의 자랑이다. 이덕상씨도 만만치 않다. 현재 5,600시간이다. ‘좀 더 분발하셔야 겠어요.’라면 농담을 건네자, 이덕상씨는 ‘그걸 뭐 따지나...’하며, 초연한 웃음을 짓는다. 부부는 지난해 12월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 자원봉사대회에서 자원봉사 시장상을 나란히 수상해 이목을 끌었다.

계사년이 밝았다. ‘사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이덕상씨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과 나누는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효선 2013-09-01 10:51:04
토박이중에 봉사자가 의외로 적어
도의원 시장 하며 당황했엇다
너를 보며 그몸으로 봉사해도 되나
걱정했지만 세월이 지나며
너를소개 할때마다 직업이 봉사자라고 말했지
시장했던 나보다 네가 지역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다
넌 나의 자랑스런 친구야
건강해다오 너를 기다리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허승무 2013-01-07 11:50:27
형님을 가끔 뵈곤 했지만 이처럼 봉사의 삶을 사시는 줄은 몰랐네요.
형님같은 분을 알고 있다는것이 행복하네요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좋은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