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의 하루에 대한 조그만 이해라도 있다면...”
“집배원의 하루에 대한 조그만 이해라도 있다면...”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3.01.17 15: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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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_현장]광명하안우체국 오전 8시, 현장을 가다.

 

우체국의 하루는 오전 8시 이전에 시작된다. 우편물 분류 작업에 바쁘다.

15일 집 우편함 앞에는 봉화에서 올라 온 택배 물품이 도착해 있었다. 나름 무게가 있는 물품이었다. 16일 아침에는 하얗게 눈이 내렸다. 지인이 보내 준 반가운 물품이었고, 세상을 덮은 하얀 눈은 운치 있는 아침을 자아냈다. 누군가에게 반가운 것들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체국 택배 물품은 경북에서 보내온 것으로 대전 우체국 물류센터, 안양물류센터, 광명 하안우체국을 경유해 집으로 도착했다.

우체국의 아침은 바쁘다. 오전 8시 전부터 부산한 하루가 시작된다. 안양 물류센터를 거쳐 도착한 당일 배달물량은 오전 8시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해 각 구역별로 분류되고, 구역별로 분류된 물량은 각각 집배원의 배달 물량으로 분류된다. 오전 9시경에 분류작업이 끝난다. 발착준비를 거쳐,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 사이에 배달작업이 이뤄진다.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이 임박하면 우편물량은 크게 늘어난다. 명절 선물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물량이 증가하고, 비나 눈이 오는 굳은 날이면 우편물을 전달해야 하는 집배원들에게는 곤혹스런 하루가 될 수밖에 없다. 삶의 양면성이다.

 

분류된 우편물은 개인 이륜차에 실려 각 가정과 사무실로 배달된다.

15일 오전 총괄우체국인 하안우체국의 아침 현장을 취재했다.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집배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배달 물량은 총5,100개였다. 안양물류센터에서 직접 위탁배달 물량인 2,300개를 제외하면 직접 소화해야 하는 물량이 2,800개였다. 우편물은 광명시내 57개 구역으로 나눠 배달된다. 집배원 당 대략 50여개씩 할당된다. 8시부터 우체국 2층에 모인 50여명의 집배원들은 안양물류센터로부터 도착한 우편물과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산하고 바쁜 하루의 시작이었다. 우편물은 1차 분류를 거쳐, 2차 분류작업으로 이어졌다.

집배원들의 손과 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지러운 혼란으로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체계적인 질서와 시스템이 작동했다. 집배원들은 분류작업을 거친 우편물들을 개인 이륜차에 실었다. 이어 당일 처리 물량을 개인별 피디에이를 통해 등록했다. 피디에이 등록과 동시에 각 고객별로 당일 배송을 안내하는 문자가 전달된다. 발착장에서 우체국을 출발하는 ‘출국’ 준비가 비로소 완료되는 시점이다. 우체국을 출발한 집배원은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정해진 코스를 따라 배달 작업을 진행한다. 오후 5시경 우체국으로 귀국해 7시전까지 당일 우편물에 대한 분류작업을 하면 하루 일과가 정리된다.

설날 명절을 앞두고 우편물 물량은 평소보다 증가하는 추세였다. 광명지역의 특수 상황도 있었다. 광명뉴타운 사업 관련 우편물이 전날 접수됐고, 이날부터 발송되기 시작했다. 등기우편으로 고객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는 만큼 만만치 않은 부하가 따르는 작업이었다.

 

출발 전 집배원 개인 피디에이에 발송 우편물을 등록한다. 

손 글씨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손 편지의 왕래 자체가 드믄 시대이다. 우리 의식 속에서 손 편지는 사라지고, 집배원들에 대한 존재감도 수그러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돌아보니, 집배원들의 하루는 더욱 고단해지고 있었다. 우편물 분류 작업에서 부분 자동화가 이뤄진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일은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정감 어린 손 글씨가 사라진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택배 물량의 증가였다. 우편물에서 등기우편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등기우편은 대부분 체납 독촉이나 법원 등기가 많다. 우편물을 받는 고객의 입장에서 ‘썩 달가운 우편물’이 아니다. 손 글씨 편지를 받아 보며 기뻐하는 고객의 모습은 일의 보람을 자극한다. 반면 고객의 짜증을 자극하는 각 종 우편물을 전달하는 경우, 집배원들 역시 달갑지 않다. 등기우편물은 일일이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들이어서 통화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통화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편물 하나를 전달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이유이다. 더욱이 최근 아파트들은 문을 꽁꽁 잠그는 경우가 많아서 고객과 접근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더 소요된다.

 

집배원들을 둘러싼 배달 환경이 녹록치 않은 이유다. 또한 고객들의 요구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고객들의 나 중심적 사고는 ‘불필요한 민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배원들은 정해진 코스대로 순서를 따라 우편물을 배달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이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민원 대상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경우는 집배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정기수 집배실장은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금씩만 이해해준다면 서로가 편해지는데, 상황은 거꾸로 돌아간다. 고객들은 갈수록 편리한 것만 쫓고, 요구는 늘고, 또 자기 한 사람의 요구에만 맞춰달라고 하는 추세이다.” 고객 스스로가 집배원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들을 이해할 것인가. 짜증은 짜증을 더할 뿐이다. 일의 해결이나,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짜증 섞인 민원콜은 그래서 종종 야속하기까지 하다.

가을철에는 농산물이 택배로 배달되는 경우가 있다. 어르신들만 거주하는 집에 쌀을 배달하는 경우가 있다. 현관 앞까지 배달하는 경우가 통상적인 전달이다. 그런데 집 안 쌀독에 쌀을 부어달라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지만 고객만족을 위해, 기꺼이 어르신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과 소통이 흐르는 순간들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집배원들은 우편물을 전달하는 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편지만큼이나, 반가운 손님이기도 했다. 집으로 불러들여 물 한 모금을 건넸던 시절이 있었다. 집배원들은 고객의 집에 놓인 숟가락을 알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찾거나 회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 집배원은 우편물이나 택배 물건을 전하는 단순 전달자로 한정됐고, 그 마저도 주어진 시간에 서둘러야 하는 기능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륜차로 도로를 오가며 안전의 위협에 노출돼 있고, 주어진 시간에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업무상 중압감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고객의 완고한 요구나 짜증을 현장에서 감내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로의 전락은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었다.

하안우체국에는 66명의 집배원들이 일하고 있다. 광명시내에는 총괄우체국인 하안우체국과 6개의 우체국, 사설 우편취급소 2곳이 있다. 총 9곳에서 우편물을 수집하고, 총괄우체국에서 배달하고 있다. 집배원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현장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금만 이해하려고 한다면....’하는 ‘아쉬움’이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었다. 나 중심적 사고에서 한 발 물러서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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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자 2013-01-18 11:50:46
집배원님들의 일과가 녹녹치 않죠. 올해는 눈이많이 내려 더욱 힘드셨을거예요.강기자님의 심층취재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기사를 보면 광명우체국 사람들 모두 또, 집배원아저씨들도 힘이 이만큼 부쩍 나셨을거예요. 우리가 함께 따뜻하게 사는 길은 서로 이해하며 배려하는 마음이겠지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