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더위 사실래요?
누가 내 더위 사실래요?
  • 양영희(구름산초교사)
  • 승인 2013.02.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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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구름산초교사, 광명혁신학교연구회장, 본지편집위원)

정월대보름 달집에 소원을 빌어본다. (광명경실련 2006년 당시 대보름 행사 자료사진)

봄방학 중이지만 아직 영하의 날씨로 겨울 내내 입었던 두꺼운 잠바를 몸에 걸친다.
‘언제나 이 옷을 벗을 수 있을까?’
하늘거리는 얇은 원피스를 입고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경쾌하게 걸어보고 싶다. 들판에 새싹 나는 것도 보고 싶고 쑥도 캐고 싶다. 향긋한 봄나물도 먹고 싶고 꽃이 피는 것도 보고 싶다.

학교의 2월은 참 스산하다. 찬 공기가 짙은 건물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년을 마무리하고, 6학년 아이들은 졸업을 했다. 교사들 중 일부는 근무지를 옮기기도 해서 떠남과 새로운 만남이 교차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학년말 업무를 끝내고 새 학년의 교육과정을 짜느라 새 팀의 동료들과 작업을 하는 것도 2월이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서적 상황과 관계없이 속도 있게 진행된다. 해서 2월의 학교와 구성원의 마음은 안정적이지 않다. 불안이나 불편함이 평소보다 크고 넓게 존재하는 시기이다. 봄방학이란 말은 학생인 아이들한테 적용되는 말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전 내내 ‘이제 그만 쉬라는 몸의 소리’를 듣다가 겨우 일어나 엄마한테 간다. 내일은 대보름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땐 오늘이 정말 재미있고 분주한 놀이로 바빴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도 골목이 모두 놀이터였지만 이날은 더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나와 너도 나도 한데 어울렸었다. 윷놀이도 하고, 쥐불놀이도 하고, 땅에 그려놓고 온 몸으로 뛰어다니는 갖가지 민속놀이도 신났었다. 평소엔 해질녘이면 불러대던 아이 찾는 엄마들의 목소리도 이날만은 들리지 않고 애, 어른 구별없이 늦은 밤까지 즐거웠었다.집집마다 고사리, 취나물, 무나물, 호박나물, 시래기나물 등을 만들고 오곡밥과 밤, 호두 등의 부럼을 준비하고 나눠먹었다. 풍물패의 농악소리가 온 마을을 흥겹게 하고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더 정감있게 서로를 챙겨주었었다. 서로 만든 음식을 나눠먹으며 앞으로 보낼 일년 농사가 잘 되길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건강하길 기원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 엄마의 향기 닮은 나물향이 가득하다. 나는 몸이 아프면 엄마한테 간다. 거기 가면 약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치료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엄마랑 얘기하고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음식 먹고, 또 일용할 반찬들을 싸 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길 다녀오면 몸에 새 기운이 돋는 걸 느낀다. 엄마는 그런 존재일까? 엄마가 나보다 훨씬 연로하시고 힘드실 텐데도 나는 그렇게 기운을 얻고 온다.
이런 까닭에 나의 지론은 모든 엄마는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척 이기적인 딸의 시선이지만

‘낼 아침 더위를 팔 사람이 없네? 아들한테 팔수도 없고’
‘세상에 아들한테 더위 파는 엄마가 어딨냐?’
옛날 고향에서의 대보름을 추억하다 엄마랑 더위 파는 얘길 하며 웃었다.
해뜨기 전에 팔아야 한다는 더위, 대문도 현관문도 없던 고향에선 방안에서도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우린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단단하게 일러두었지만 어느 순간 그걸 잊고 친구가 부르면 대답을 해버려 더위를 사야만 했던 억울한(?) 기억도 떠올랐다. 그땐 밥만 먹으면 골목에 나와 동네의 모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마을이었으니 더위 팔 사람은 넘치고도 남았다. 그런데 도시의 아파트에서 해 뜨기 전 누구에게 더위를 팔 수 있을까?
‘혹시 핸드폰으로 안 될까?’ 했더니 엄마가 안 된단다.
엄마한테 가면 이렇게 잊었던 옛이야기도 찾아내고, 그 시절의 우리도 찾아내서 참 좋다.
‘누가 내 더위 사실래요? 해 뜨기 전에 우리 집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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