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촛불을 켜 보았습니다.
어느 밤, 촛불을 켜 보았습니다.
  • 양영희(구름산초 교사)
  • 승인 2013.05.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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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구름산초 교사, 광명혁신학교연구회장, 본지 편집위원)
며칠 전 늦은 밤에, 식탁에 앉아있다 전기 불을 끄고 촛불을 켜 보았습니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기운이 참 좋았습니다. 언제 밤이 이렇게 잔잔한 어둠으로 나를 감싸며 다가왔던가? 일상의 것 하나를 잠시 내려놓았는데 그 느낌은 참 새로웠습니다. 고개 돌려 주변을 보니 모든 물체의 그림자가 마치 살아진 영혼이 돌아온 듯 거기 있었습니다. 오래 영혼을 버리고 껍질로 살아온 사물들이 각각 제 영혼을 챙겨 곁에 둔 것 같은 장면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걸 보니 오래 잊고 살았던 ,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골 방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밤이면 육남매나 되는 형제가 모두 한방에 자며 그림자놀이를 했었습니다. 손가락을 이용해 쥐도 만들고 토끼도 만들고 귀신도 만들고 그렇게 만든 그림자로 이야기도 엮으며 밤을 지냈던 사실을 전기를 끄면서 생각해냈으니 얼마만의 기억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여유가 가져다준 옛 추억을 보며 우리 아이들과 꼭 한번 그림자놀이를 해 봐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은 아무것도 없어서 참으로 많은 상상을 했고 새로운 것들을 스스로 창조해 내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이들’로 컸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엮어 낼 지요?

지난 화요일 아침, 우리 반 교실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피어났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생명’프로젝트 마지막 활동으로 콩나물 비빔밥을 해 먹는 날이었습니다. 급식이 생긴 이후 학급에서는 재미난 먹거리 활동을 하기가 참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침을 학교에서 먹는 걸로 했지요.

우리 반은 교실에서 시루를 구해 콩나물과 무순 키우기를 했었는데 그걸로 모둠비빔밥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마트에서만 파는 줄 알았던 콩나물을 직접 기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매일 물을 주며 생전 처음 본다는 시루 앞에 앉아 신기해했지요. 콩나물은 아이들보다 빨리 자라 그 기쁨을 더 크게 해주었지요. 양푼, 밥, 숟가락, 참기름, 고추장. 상추, 김치..아이들은 학교에 오자마다 준비물을 제게 보여줍니다. 혹 맞벌이 등으로 준비물을 놓치는 가정이 있을까 항상 여유 있게 보내 달라 부탁했더니 이날도 아이들이 먹기엔 넘칠 정도의 밥과 반찬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들은 맛있다고도 하고, 재밌다고도 하고 콩나물이 불쌍하다고도 했습니다. 또 채소를 싫어했는데 먹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급식의 음식은 쉽게 버리면서도 콩나물 한 개도 함부로 하지 않았지요.

교사는 교실에 어떤 것도 들여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무엇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도 있습니다. TV나 책, 컴퓨터를 통해서는 접할 수 없는 이야기와 체험들을 만나게 해 주는 일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생명키우기를 하면서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 씨앗을 3알씩 밭이랑의 구멍에 넣어주는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 사는 새와 같은 생명이, 하나는 땅속생명이나 땅위의 짐승들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지으면서 몇 차례나 씨앗을 다시 심어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절대 다른 짐승이나 새들이 그 씨앗을 먹었다 하더라도 화부터 내지 않는다는 것도 말해줬지요. 왜냐하면 새들이나 숲의 동물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만 농부의 씨앗이나 식물을 헤친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때마다 농부는 ‘다른 생명을 구하는데 내 농작물이 쓰였구나’라고 여긴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설명을 들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재밌어하니 자꾸 더 얘길하게 돼서 이런 이야기도 해 주었지요.
‘우리 조상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조용히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았단다. 요즘처럼 쓰레기를 만들지도 않았고 인간만 먹겠다고 둘레를 치고 검은 포장을 하고 약을 심하게 뿌리지도 않았지. 새참을 먹을 때도 ‘고시레!’하고 외치며 주변의 생명들과 음식을 나눠 먹었지. 담이 낮은 이웃들은 음식을 먹을 때 내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 음식을 먹을 것을 권하고 밥상에 앉게 했단다. 오죽하면 인사가 ‘진지 잡수셨어요?’였을까?‘ 배고픈 시절에 더 이웃을 챙겨줬던 우리 조상들이었지, ’

‘지금 도시는 이웃을 알 수 도 없고, 남을 내 집에 들이는 일은 거의 없으니 모두 외로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홀로 촛불 켜는 사람이 많아질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것보다는 좀 우울하고 슬픈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모두 자기 그림자를 잃어버려 속울음 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교사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아직 지우지 못했으니까요.


2013.5.17. 구름산초 양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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