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가?
  • 양영희(구름산초 교사)
  • 승인 2013.06.23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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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구름산초교사)

※ 본 글은 2013.7.4 광명교육지원청 주최 '경기교육공감토론회' 자료집에 실리는 내용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우리는 학교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가? 우리는 학교를 통해서 행복해 지는 것이 가능한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학교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어떤 이에겐 악몽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추억’과 ‘성장’의 과정으로 남아있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온 손이 하얀 선생님이랑 들로 쑥 캐러 갔던 일, 가정 방문 때 선생님의 자전거를 따라 다니며 친구들 집을 알려줬던 일, 운동회 때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했던 일, 진달래가 가득한 뒷산으로 매년 소풍을 가서 삶은 계란과 맛난 도시락을 먹고 보물찾기를 했던 일’ 들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모든 게 부족하고 배도 고팠던 시절이지만 언제나 이다음에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그 꿈들을 이루어내는 걸 보여줬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대학에 자식을 보낼 형편이 안 되었기에 상급학교 진학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런 추억은 모두 옛날 얘기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감옥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지 않으며 교사들은 관계와 업무의 폭주로 짓눌려 있다. 해답은 어디 있을까?

1.학교란 무엇인가?

1)학교에 대한 몇 가지 질문
학교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를 통해 우리는 무얼 얻고 싶은가? 나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학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등등. 근대교육이 생겨나기까지는 교육의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목적인 때도 있었다.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와 환경이 생긴 것이 200여년이 됐다. 아직도 이슬람권에서는 여자아이의 교육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이런 곳에선 교육받을 기회를 얻기 위해 투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교과서와 학비면제)을 하고 있으며 무상급식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모든 이에게 차등 없이 교육기회를 부여한다는 명시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누가 가르치고 배울지 모두 표준화, 규격화했고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획일화된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이 지적되고 있으며 종소리, 교실에 가두기, 줄 세우기, 동년배들의 집합, 혼자만의 영역박탈, 끝없는 감시등으로 상징된 200년의 근대교육의 역사가 달라지고 있다. 공교육의 개혁(혁신학교 등의 노력)과 더불어 대안학교, 홈스쿨링 등의 경계 허물기가 시도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성장과 미래의 꿈을 위해 학교가 적절한 역할을 해주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일 년에 7만명 이상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이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교사들과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자유를 느끼긴 어렵다. 교과서, 운영시간, 수업일수 모든 것들이 획일적 통제 속에 있는 것이 학교교육이다. 교육과정이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창의성과 관계능력 등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그것들이 도입되고 적용되는 과정은 더디고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통계로 본 대한민국 현실과 교육
-매년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7만명 이상
-사는 게 고달프다고 답한 한국인 69.1
-우리 아이들 36개국 중 ‘더불어 사는 능력’ 35위, 국제교육협의회(IEA)
-주관적 행복지수 5년 연속 최하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노인자살율 세계 1위
-출산율 최하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원인 성적, 진로고민(39%)
-청소년 학교 그만두고 싶다 자주 생각해 33%, 이유 부모가 원하는 성적 안돼서 (2012.10.15. 한겨례신문)

불안과 절망코드는 더욱더 아이들의 삶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교육은 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실은 암담하고 아이들은 가엽다.

2.공부는 왜 하는가?

세상을 만나고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갈 내적 힘과 관계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공부는 도전이고 안 해본 것들에 대한 흥미로운 만남이다. 배우는 일은 질문을 만들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자기 삶의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하버드생들이 본 한국학생들 공부 -KBS 다큐 ‘공부하는 인간’-
대화없이 밀폐된 곳에서 혼자 공부하는 게 이상하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수업방식에 적응 못함
책에 있는 사실을 외우려고만 하고 저자가 왜 그렇게 썼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성취가 아니라 가족이나 국가를 위해 공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 협조 받는 것을 어색해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존감에 상처를 받더라.
성적에 민감하고 질문을 두려워 함
공부를 못하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 받았다(한겨레신문 2013.1.10.)

하버드생 눈에 비친 우리는 ‘자발적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 , 대가를 위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말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의 삶을 살찌우고 성찰하며 깊어지기 위함이라고 말할 학생이 몇이나 될까? 내 아이가 지금 그렇다고 말할 부모가 몇이나 될까?

3.실수, 시행착오, 좌절, 실패의 경험이 ‘커다란 자산’

우리는 왜 꼭 인생의 전 과정이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할까?
불행의 순간이 절대 우리 곁에 오면 안 된다고 단단히 믿을수록 작은 어려움도 극복 못할 수도 있다. 날씨처럼 인생에도 바람 불고 비도 온다고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수와 시행착오가 즐거워진다. 넘어지지 않고 가는 것만 강조하지 말고 그때 다시 일어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손잡아 줘야 한다.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 부끄럽지 않아야 시도한다.
아이의 재능과 진로를 발견하기 위해 아이에게 못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과정을 보여주는데 부끄럽지 않아야 발전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을 ‘무기력’하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부모들도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뭔가를 시도했다 실패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혼나는 게 낫다는 걸 경험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선택한 행동이다.

*실패를 내면화 시키는 사회
한국사회는 아이들을 실패시키고 실패를 내면화 하는 사회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선생님 뇌는 딱 10명만 기억한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 5명, 문제아 5명’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이들한테 ‘잘 한다’, ‘지금으로도 충분해’ ‘그만하고 놀아라’ 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더 해야 한다’, ‘부족하다’ ‘그래가지고 뭐가 될래?’ 이런 말만 한다. 시험을 망친 아이가 있다면 본인이 가장 상처를 받았을텐데도 ‘밥이 넘어 가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열 번 혼나고 1번쯤 칭찬 받는다고 말한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고 산다.(김현수, 성장학교 별 교장)

4.미래사회의 학교

정보화, 세계화, 다가치화로 특징 지워지는 21세기 사회는 다학문적, 다기관적, 다층적인 사회구조가 전개되고 있다. 개인 내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공존하며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이 공유될 것이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사회에서 가상공간(인터넷)의 발달은 내가 세계이자 세계가 나인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개개인이 지도자인 동시에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수명도 120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며 우리 아이가 살아갈 시대에는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지 못하고 2~3개의 직업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을 보면 창의력과 관계 맺는 능력이 핵심인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으며 과거의 ‘공부’라고 하는 개념을 바꾸어 놓고 있다. 예술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을 부드럽게 드러내며 소통하는 능력이 아주 중요해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만의 체험과 생각을 관계 속에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의 교육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말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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