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한차례 내린 소나기로 개울가 물소리 커지고, 하늘엔 총총 별이 나오기 시작한다.
마당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잔디밭에 의자를 놓으니 도시의 소극장이 부럽지 않다. 시원한 밤공기가 기분도 상쾌하게 해 준다. 10여명이 모였는데 그들 모두가 배우이거나 그 가족이다. 그러니까 오늘 상영회는 ‘가족파티’가 되었다.
열일곱살의 아이가 홈스쿨링을 선언하고 만든 처녀작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다.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구하고 다시 처음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이 모든 과정이 주변의 사람들(네트워크)로 채워졌다. 영화수업을 해주신 선생님, 기꺼이 ‘노 개런티’로 출연해준 배우들, 해서 영화 스캐줄은 배우들이 시간될 때만 촬영이 가능했다. 게다가 감독이 젤 나이가 어린 탓에 누구한테도 맘에 있는 소리를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스물한살의 남자주인공 무영은 화가가 되고 싶다. 사이비 교주인 아버지와 단둘이 시골에서 갑갑한 생활을 하며 그림에 모든 걸 건다. 무영은 두평 남짓 다락방에서 생활하며 생의 ’또아리‘를 튼다. 3년 동안 만난 여자 친구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떠난다. 모든 이별에서 상대를 이해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무영도 그렇게 남는다. 괴로운 시간 속에 아버지도 떠나고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 그러다 생의 모든 걸 잃고 죽어간다.’
영화엔 미래를 알 수없는 깊은 자기성찰과 고뇌하는 청춘이 그려져 있다 . ‘아버지는 자기말만 하고, 아들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둘의 일상’처럼 영화와 감독의 이야기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의 시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자기 고민이 많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아직은 습작이니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을 수 없다. 감독으로서의 연출력, 카메라 다루는 솜씨도 능숙할 수 없다. 게다가 ‘무예산’, ‘노 개런티’, 그러니까 ‘생’으로 만든 작품이다. 자신이 가진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래서 영화에 등장한다. 자신의 방, 자신의 집, 마을...
그런데 그냥 지낼 땐 모르던 것들이 영화에서 보니 아름답다. 관객들의 반응이 우리가 이렇게 예쁜 곳에 사는 줄 몰랐단다. 마을의 재발견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고 작품화 한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일이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처음이라 부끄럽다고 말한 ‘ 열일곱살의 감독’, 이번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도전한단다. 대사나 ‘상실의 과정’ ‘청춘의 아픔’이 잘 드러나 좋다는 관객 평에, ‘낯을 가린다는’ 감독은 또 부끄러워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길,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돕는 아주 예쁜 영화상영회였다. ‘아직은’인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는 힘, 그 속에 멋진 날개를 키우는 ‘어린 감독’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