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안 그리고 매력적인 ‘기본소득’
삶의 불안 그리고 매력적인 ‘기본소득’
  • 양영희
  • 승인 2013.08.0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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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구름산초 교사, 본지 편집위원)

국민모두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주는 것을 제안하는 녹색평론 7~8월호의 글에는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생존과 삶의 질에 관한 해답이 들어있다. 청소년부터 노인자살에 이르기까지 세계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그 모든 문제를 실타래를 풀 듯 실마리를 제시한 내용이 설명만 들어도 설레게 한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언제라도 나락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취업도 힘들고, 어렵게 된다하더라도 단기계약과 쉽게 버려지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주택, 의료, 교육, 환경 어떤 곳에서도 국가나 사회적 관계에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모두가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책임이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결혼도 어렵고 아이 낳아 기르는 것도 가진 자들의 선택이거나 무모한 시도처럼 느껴진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는 모두 철저한 개인으로 생존을 발버둥치며 견디고 있다. 이렇게 여유도 없고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과 세상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 틈새를 부도덕하거나 부조리한 자본이 갖가지 형태로 국민을 기만해도 자유가 없는 개인들은 침묵한다. 그 침묵이 우리사회의 진보를 막아선다. 이런 순환고리를 기본소득으로 끊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을 기다려본다.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사회에 소회계층이 사라지고 먹고 사는 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재능이나 꿈을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 그러면 세상은 문화예술이나 창의적인 부분에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은 사회에 그대로 기여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져서 사회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부자들도 경비원을 고용하거나 아이들은 편안하게 학교에 보낼 수 있다. 또 모두에게 주는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을 골라내는 데 따른 행정비용이 감소하여 선별복지방식보다 더 효과적이다.

부자들도 사업에 실패하면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감옥(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하기 때문)까지 가거나 자실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들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고 자손에게 불법적 방법으로 상속을 하는 것도 모두 불안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자들에게도 기본소득은 환영할 만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는 정도와 중심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일하지 않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란 주장에 대해 독일시민이나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실시한 질문을 소개한다. 대부분 남들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을 계속 일을 하겠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기본소득을 실시한 경우의 사례에서 일을 그만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만 일을 잠시 쉰 형태는 늘었는데 육아나 병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 노동시간의 단축이 생겨났다고 한다. 세계 최 장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니 노동시간 단축은 환영할 일이다. 일을 중단하는 경우도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에 포함되지 않을 뿐 ‘그림자노동이라고 칭하는 생활에 꼭 필요한 일을 위한 것이었다. 가사, 육아 ,사회봉사, 예술 활동 등 모든 사람이 하는 유익한 일들 ’그림자노동‘은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 하는 측면에서 존중이 되어야 한다. 또 요즘 유행하고 있는 도시의 텃밭농사도 사람들이 여건만 된다면 모두 하고 싶은 일이니 기본소득이 줄 삶의 여유가 그려진다.

이런 것들을 봐도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우는 아이 억지로 떼어놓으며 일하는 엄마들도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안정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교육이나 이 사회에 미칠 사회적 관계도 클 것이다.
요즘 지하철 검표원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직종이 있다. 가장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한다는 마트의 계산대 종사원도 곧 사라지게 할 리더기가 연구 중이라 한다. 카트에 가득 실은 짐을 한꺼번에 자동계산해서 결재까지 하는 ‘RFID’가 벌써 몇몇 매장에서 실험중이라 한다. 또 구글무인 택시도 택시기사를 모두 사라지게 할지도 모를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보다 정확하고 안전하게 ‘음주음전도 없고 신호위반도 하지 않는’ 택시가 네바다주와 켈리포니아주에서는 시내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용인, 의정부, 신분당선도 무인전철이라니 앞으로의 세상이 짐작이 간다.

경쟁하지 않고도 생존이 보장된다면 사회는 정말 따뜻해지지 않을까? 지금처럼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삶을 훼손하는 건 죄악이다. 모두가 영혼이 없이 부유하는 듯한 생활은 끝내야 한다. 목숨 걸고 덤비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공동체가 서로를 보듬고 있으면), 잠시 쉬거나 놀아도 굶어죽지 않는다면 , 얼마나 다양한 모습의 삶이 탄생할지 상상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도 춤추고 노래하고 놀이하며 식물도 키우고 달리기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듯이, 어른들도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고 순서 없이 즐겁게 선택하며 살아도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어떤 일이든 위아래 없이 존중되어질 사회는 그렇게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는가? 이끌리는 대로 내 멋대로 선택해도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 자유가 일상화 되는 세상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잣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의 폭의 깊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양영희. 구름산초 교사. 광명혁신학교연구회 회장. 본지 편집위원. 경기새로운학교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혁신학교보내도될까요?>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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