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자
감정 노동자
  • 김춘승 기자
  • 승인 2013.11.11 17: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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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승 기자의 '사색공감'
사무실에 유선 전화기를 설치했습니다.
통신 회사에 신청하니, 설치 기사 분이 오셨습니다.
검게 탄 얼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주로 밖에서 일하는 직업 탓이겠지요.
전화선 설치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길이가 긴 전봇대와 짧은 전봇대가 있는데 용도가 다른 건가요?'
'긴 전봇대는 전기선을, 짧은 전봇대는 케이블TV를 위한 용도에요.'

대접할 게 없어서 손님 접대용으로 사다 둔 식혜 캔을 드렸습니다.
문득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한겨레에서 노동자를 다룬 특집 기사 때문입니다.
신문 1면에 노동자 2명의 사진을 나란히 게재하고, 누가 정규직인지를 묻는 내용입니다.
전 한 번도 맞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사님께 여쭸습니다.
'기사님은 정규직이세요?'
'아뇨, 비정규직입니다.'
'처음부터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생소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나이로 보입니다.
'처음엔 정규직이었지요.'

기사님이 다녀가시고, 며칠 뒤에 전화가 옵니다.
'전화기 설치하셨죠. 설치 기사 서비스 설문 조사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기사가 친절하였나요, 반말은 하지 않았나요(제가 노안이라서 사회 생활 중에 반말 듣기 힘듭니다), 작업 중에 외부에 나갈 때(전봇대에서 전화선을 끌어 와야죠) 고객님께 말씀드리고 나갔나요 등입니다.
질문 사이에 '세 개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두 개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하는 것이 귀에 거슬립니다.
마지막 질문은 '설치 기사의 서비스 정도는 백점 만점에 몇 점으로 평가하십니까'
저는 누구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머뭇거리다 '백점입니다. 정말 친절하게 잘 해주셨습니다.'
그녀는 또 묻습니다.
'건의 사항이 있으세요.'
'설문 조사하시는 분은 통신 회사 직원입니까?'
'아닙니다. 통신 회사에서 의뢰받은 설문 조사 기관의 직원입니다.'
'이런 조사하지 말라고 꼭 전해주세요.'

전화 끊고 후회합니다.
그녀의 밥줄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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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다 2013-12-14 2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