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왜곡,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 교과서 왜곡, 어떻게 볼 것인가?
  • 김덕유(광명시민)
  • 승인 2013.11.1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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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인권학당 강의 후기 / 김덕유(광명시민, 수강생)

“그들은 왜 역사 왜곡에 나섰는가?”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님은 ‘현대사를 통해 본 인권’(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검인정 통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 부르는(‘수구꼴통’이라고 불리길 싫어하는) 그들은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과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에 대한 진보 세력(그들이 ‘종북주의자’라고 부르는)의 비판적인 평가를 바로 잡아 20세기 성공 국가인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회복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실패한 국가인 북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부각하여, 그런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어떤 근대화 과정을 거쳤는지, 공산주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며 위대한 건국을 했는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어떻게 눈부신 산업화의 기적을 이루어 냈는지를 역사로 남기려고 한다.

뉴라이트의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가 그 시작이었고,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가 제도 교육 안에 그 뿌리를 내리려는 결과물이다. 이 교과서에서 그들은 반민족적 친일을 합리화하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이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초래한 사실을 외면하며, 천민 자본과 결탁하여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한 정권을 미화하고 찬양한다. 역사 해석이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더라도, 없는 사실을 만들고 있는 사실을 감추어 자의적으로 꿰어 맞추는 식의 왜곡이 자못 심각하다.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에서는, 일제 식민시기를 “서양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축적한 시기”(이하 <교육 자료집>에서 재인용)로 평가하며, 이 시기에 “조선인들은 일제 식민 통치 기구에 참여함으로써, ‘각종 근대 국가 운영의 경험과 능력’을 축적했고, 이는 해방 후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수탈과 억압’의 시기를 ‘수탈과 개발’이라는 모순된 말로 치환함으로써 일제의 근대화 시책이 결과적으로 해방 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는 역사적 기반이 되었다는 해괴한 논리이다.

그들에 의하면 독재자 이승만도 “자본주의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대한민국의 운명의 나침반을 돌려놓은 ‘국부’”이다. 또 “산업화 시기 좌익 세력들의 발호는 오히려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위대한 지도자와 관료 엘리트들, 재벌 기업에 의한 산업화의 성공으로 민주화가 가능하였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대안교과서>의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이 교학사판의 <한국사 교과서>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박한용 실장님의 강의는 무척이나 명쾌했다. 뉴라이트의 뿌리와 그 역사관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역사관이 기득권 세력의 이익과 결합되면서 증식되는 역사 왜곡의 실체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건국절’ 제정이 친일 세력과 그 후계들에게 ‘친일의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애국자나 건국 공로자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때때로 민생을 내세워 역사를 몰아내려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미래로 넘기고 민생에 전력하자고 한다. 과거에 사로잡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변한다. 마치 일본이 자신들의 과오를, 몰염치하게, 감추려고 하듯이. 그러면서도 그들은 음흉하면서도 치밀하게 그들의 역사를 세우려고 한다. ‘친일-친미․반공․독재로 얼룩진’ 치욕스런 과거를 씻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역사 왜곡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 교과서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결정화되는 것 아닌가?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 이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이미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일들이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국가 권력이 장악한 제도 교육에서 반대 세력을 억누르며 그들 입맛에 맞는 역사 해석만을 주입하려는 음모이다.

역사 교과서는 미래 세대들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인식의 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피해와 가해를 뒤섞어 버리는 왜곡된 역사의 주입은 필연적으로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게 한다는 데서 문제가 심각하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역사가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를 거쳐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인권도 바른 역사 인식을 뿌리 삼아야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나무이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압제와 학살과 전쟁의 참혹한 인권 침해를 낳는다. 그리하여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게 하는 뿌리이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자칫 외면하기 쉬운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볼 일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어루만지기 위해서라도.

(본 강의 후기는 지난 11월1일 평생학습원에서 진행된 제2기 광명인권학당 내용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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