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양영희(구름산초 교사)
  • 승인 2014.01.29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엄기호 저자>를 읽고
개학이 다가온다.
이때쯤 되면 학생도 교사도 달력보기를 싫어한다. 학교 가기 싫은 건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엄기호는 ‘폐허를 응시해 희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폐허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아이들과 동료교사, 학부모 모두가 얽힌 불행의 총체다. 그런데 하필 개학을 앞두고 바닥을 치는 학교 이야기인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를 읽었다. 어둡고 아프고 무겁다. 다 아는 얘기를 하나씩 꾹꾹 눌러 지적하고 분석해 ‘내 상처 들어내기’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약에 쓰려 해도 어디 한 군데 쓸모가 없는 것이 학교라는 학부모의 말, 그런데 그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어떤 미래도 준비가 안 돼 캄캄한 절벽으로 떨어지는 절망감이 온다는 학생의 이야기, 수업이 붕괴되고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려다 욕을 먹고 폭행까지 당하는 교사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용지물인 교사와 학교, 무의미한 관계, 무의미한 공간,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공동의 기억과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는 곳, 억지로 억류된 아이들의 분노와 적개심, 쉴 틈이 없는 학생과 교사들, 탈출구 없는 폐쇄회로, 그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괴물 같은 아이들, 침묵하는 교무실, 천개의 섬으로 고립된 교사들, 수업을 기획하지 못하고 표준화된 지식의 전달자로 만든 획일주의 관료주의 학교문화, 공적공간에서 공적으로 자신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교사들, 교실과 개인으로 울타리 안에 머물며 고립되어 개인책임, 자책만 커지는 교사들, 자식의 성적과 입시에만 매달리며 경쟁대오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해 내는 무서운 학부모들...’ (본문 인용)

중등 아이들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얼굴이 환해진다고 한다. 과목수업을 하니 한 교사가 ‘그 많은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개별적 만남을 갖는다’ 는 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 속에서도 투명인간이 되고 교사들에게도 존재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부를 잘 하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그 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수업을 포기한 학생이 학교에서 어떻게 재미를 느끼겠는가? 그 아이들에겐 입시위주의 수업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견디는 고통의 시간일 수 밖에 없다. 또 요즘 아이들은 교사가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와 간섭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동의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동의되지 않는 내용을 전달하느라 혼자 애쓰다 마는 것이 수업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매일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내게 우리 교육은 마치 산소 호흡기를 단, 회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말기 환자의 모습이다. 숨을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병실 밖 창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우성을 치고 삿대질도 하며 '일어나 이 모든 일을 책임져라' 하고 고함치고 있는 것 같다. 죽을 수도 없고 일어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늪에 빠진 모양이다. 머리는 무겁고 빛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찔해질 때가 많다.

25년을 교직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교육에 대한 마음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본문의 지적처럼 ‘상대에 맞는 이야기만, 그가 곤란을 느끼지 않을 정도’만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희망과 깊은 슬픔은 개인이나 주변에만 머물렀고 그건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 혁신학교에서의 동료성은 참으로 신선하고 건강한 창조력을 발휘했지만 그것도 조건부였다. 어떤 철학과 내용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관료들과의 관계가 유연할 때만 가능한 조건부 설렘인 것이다. 우리의 꿈은 그래서 늘 좌절되기 쉬운 불안정성을 갖고 있다. 교사들의 무력감은 여기서 온다. 엄기호는 학교 안의 사람들이 진정한 우정을 맺고 자기를 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동의 세계를 창조하는 평등한 우정’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 그에게 동의한다. 그런데 과연 그게 다일까?

‘진정한 우정과 동등한 파트너’, 그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도 학교 문화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또 어렵게 만든 동행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려면 이를 방해받지 않을 많은 조건들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무너졌다 일어서고 지치고 좌절하면서도 견뎌온 이야기들이 그나마 여기서 끝나지 않으려면,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학교의 문화와 내용을 지배하는 것들과 승진제도, 입시제도와 학력중심의 사회, 학부모들의 욕망이 바뀔 수 있는 이 나라의 안전한 삶의 구조 등등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꿈같은 얘기지만, 아이들이 생기 가득 안고 등교하고 졸업 후에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현재 교사들의 마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란 제목을 선택한 저자의 탁월한 감각에 박수를 보낸다. (2014.1.2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