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것입니까?
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것입니까?
  • 양영희(구름산초 교사)
  • 승인 2014.02.10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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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읽고 / 양영희(구름산초 교사)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본문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의 일부-



강신주라는 철학자가 스피노자라는 스승을 곁에 모시고 48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풀어 헤치며 인간이 갖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하나씩 수업하듯 안내하는 책이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며 사는 사람도 이 책을 편안히 소화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의 감정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 자체가 익숙한 일이 아니어서 군데군데 쿵! 하고 얻어맞은 듯 멈추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내 감정의 맨얼굴과 대면하는 일이 때론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상황과 자신이 기대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덮는 일’을 반복하며 4일이 걸려 다 읽은 후 작가와의 긴 여행을 끝낸 기분이 들었다. 불편한 자신의 이야기들을, 지난날의 치부를 만나듯 낱낱이 시선을 고정시키고 감정의 결까지 만지고 나오는 그런 여행. 그러나 그건 수련을 거친 후 단단해지는 또 다른 수확이 있었다. 그건 감정을 억압과 부정으로 일관했던 과거를 떠나 저자가 요청하는, 자신의 감정들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인정하는 것의 내공을 쌓는 일을 배웠기 때문이다. 기도와 부처님 말씀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자신과의 만남이 있었던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감정의 윤리학’을 ‘기쁨의 윤리학’으로 소개하며 우리를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이끌어 준다.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반감, 박애, 연민, 회한, 당황, 경멸, 잔혹함, 욕망, 동경, 멸시, 절망, 음주욕, 과대평가, 호의, 환의, 영광, 감사, 겸손, 분노, 질투, 적의, 조롱, 욕정, 탐식, 두려움, 동정, 공손, 미움, 후회, 끌림, 치욕, 겁, 확신, 희망, 오만, 소심함, 쾌감, 슬픔, 수치심, 복수심 등 48개의 감정을 48개의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언어들이 이를 정리해주거나 안내한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이 어렵지 않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유는 바로 위대한 문학 작품들 덕택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영화로 소개되었던 48개의 작품 속 인물의 감정상태와 해설들은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다. 게다가 작가에 대한 상세한 소개 또한 흥미를 준다. 위대한 작가들도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을 하거나 심각한 불행상황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확인은 우리가 겪은 감정의 혼란과 상처가 특별하거나 과장되게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시대의 진실을 외치는 작가도 있었고 진한 사랑이야기로 자신의 이력을 장식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나,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썼고 그 감정이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저자의 표현처럼 ‘인문학과 예술의 동력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학교와 어른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예의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감정을 억누르고 느끼지 못하도록 학습시킨다. 감정이 일어도 표현하지 못하도록 학습시킨다. 긴 세월 이런 훈련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다시 그 세월을 걷어내고 자신을 만나도록,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만나도록 제안하는 강신주는 그래서 도발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우리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이여! 감정수업을 받으라’ 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토닥이며 새 긍정의 감정을 지혜롭게 만나라고.

‘감정은 우리 삶의 속도만큼 충분히 지속적이니 감정의 색채를 믿고 따르라! 자신의 심장소리와 함께 지속되는 그 감정의 목소리를 존중하라! 그것만이 당신이 현재에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라는 저자의 응원을 믿는다.

‘완전한 기쁨은 몸이나 마음 중 어느 하나를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기쁨으로 충만할 때,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쾌감으로 전율할 때, 바로 그 시간이 우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다.’-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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