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 양영희 (하중초 교사, 전 구름산초 교사)
  • 승인 2014.07.0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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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 국내 강연 후기 / 양영희 (교사)
‘극도의 혼란과 갈등이 최고조일 때, 권력이 균질한 복수의 어른이 존재할 때 아이는 성장한다.
누구도 혼자서 좋은 역할을 다 담당할 수 없다.’

이 시대를 고민하는 교사나 학부모 그리고 교육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우치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우치다의 결론은 아주 단순하고 명쾌했다.
‘당신들의 질문에 답이 없다는 것이 답 입니다.’
우치다는 이 시대가 어른이 없다고 진단한다. 과거 부권제로 유지되는 집단과 대가족 안에서의 질서와 협의, 갈등 등이 아이를 성장시킬 적절한 토대가 되었다는 전제를 펼친다. 다양한 어른들, 균질한 권한을 가진 이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의 삶에 관여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혼란한 상황, 그 속에서 아이는 진짜 가야할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진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인생행로의 주인으로 서야 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은 해체되었고 해체된 가족관계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몰락한 부권을 대신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는 과거 부권제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아이를 잘 모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아이의 현실을 잘 알고 이해하나 권력이 약한 어머니와 강한 권력은 있지만 아이의 욕망을 전혀 이해 못하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는 성장한다고 우치다는 말한다. 이런 면에서 현대의 가정은 소비하기 좋은 단위로 최대한 해체된 상태에서 어머니 역시 경제활동과 소비활동의 주체로 왕성한 위치에 있다. 게다가 어머니는 아이들을 잘 알고 이해하며 그들의 단점과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 딸들과 어머니의 갈등은 커지지만 강한 어머니의 역할이 딸들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가정 내 존재가치가 사라진 무력한 아버지의 삶을 보게 된다. 아버지는 힘들게 일하고도 가족 내에서는 어떤 존경도, 이해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며 아들은 기능적 역할 모델을 상실해 버렸다. 아버지가 무너지면서 아들은 망설임의 자유를 상실했고 이제 더 이상 ‘격노하는 아버지는 없다.’고 그는 말한다.

부권제에서 아이들은 아버지가 우리 욕망을 잘못알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회적 합의는 ‘아버지는 아이의 욕망을 틀리고 있다’였다. 이 시대 아이는 이를 넘어 자기실현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싸웠다. 아버지란 존재는 크지만 틀렸다는 간단한 진리 속에서 아버지가 미성숙하고 아이를 잘 모를수록 아이는 성장했다. 아버지가 인간을 보는 눈이 부족하고 상상력이 부족할수록 아이는 성장했다. 이 묘한 밸런스 속에서 아이는 성장했다. .-강의 내용 중-

가족해체와 부권제 몰락, 사라진 성숙모델, 쇠락한 아버지와 방황하는 아들은 모두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다. 우치다는 그 속에 숨은 기업의 의도와 역할을 파헤쳐 낸다. 자기다운 삶을 외치는 매스컴을 통해 모두가 적극적 소비주체로 물건을 사대는 삶이 드라마와 연예인을 통해 잘사는 삶으로 보이도록 조장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는 더 많은 소비상품이 팔리는 상황이 되어 마켓이 활성화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어머니는 아이의 욕망을 점검하고 파헤치며 그것이 진정 내부로부터 출발한 것인지 TV나 주변인의 모방인지도 알아낸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의 추악함까지 모두 알고 있는 어머니에게 아이들은 저항하지 못한다고 우치다는 말한다. 이런 아이에게 어머니의 육아전략은 ‘큰 집단에 들어가 눈에 띄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아이들은 오로지 한사람, 바로 어머니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교마저도 모든 교사가 부모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아이들을 한길로 이끌려 하면서 조직적으로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중이라고 한다.

미성숙한 사람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성장하게 할 것인가?
그런데 아이의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없다. 아이는 갈등 속에 성장하기 때문이다. 3개 이상의 육아전략이 없으면 아이는 성장하지 않는다. 복수인간의 공동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똑같은 권한을 가진 복수어른이 필요하다. 부모 혼자 성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맥락으로 교사도 여럿이 필요하다. 교수전략, 아이에 대한 기대, 명령이 다른 복수의 교사들이 함께 해야 교육이 가능하다. 좋은 교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교사란 상황이다. 다양한 교육방법, 많은 교사가 모여 있는 상황자체가 답이다. 정치가는 교육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의 좋은 교육, 좋은 교사, 좋은 프로그램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모든 아이한테 좋은 프로그램을 동시에 넣어도 아이는 성장하지 않는다.  -강의 내용 중-

좋은 교육, 좋은 성장은 ‘대답이 없는 것이 대답이다.’ 혹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모두가 다르게 얘기해야 한다. 이 세상 어른들이 모두 같게 얘기하는 것은 ‘성숙해라’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것’이 목표인 아이는 없다. 성숙은 지금 어디를 향하는지 몰라야 한다. 다양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밟아가며 나아가야 한다. 살다보니 내가 ‘참 아이였구나!’ 돌아보게 될 때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성장이란 자기가 놓여있는 상황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성장이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해 자기 과거 경험을 고쳐 쓰게 되는 것이며, ‘성장이란 의미’도 계속 바뀌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떻게 하면 일탈할까?’ 생각하는 것이 성장이다. 과거의 경험이 바뀌지 않고 똑같이 다가오는 것이 ‘트라우마’다. 이는 시계바늘이 멈추는 것이며 성숙과 반의어이다. 성장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걸어왔던 길과 경험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성장이다. 다양한 복수의 어른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걸어가는 아이가 성장한다. 하나의 목소리만 듣는 아이는 성장하지 않는다.  -강의내용 중-

우치다는 강을 건네주는 사람, 길을 가르쳐주는 모든 사람이 멘토라고 말한다. 아주 간단한 물음부터, 아주 사소한 길부터 우리는 곳곳에서 멘토를 만나야 하고 만날 수 있음을 얘기한다. 또 우리 자신이 멘토인지도 모르고 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니 멘토는 유명 인사나 대학교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방안을 집단으로 구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또 공동체가 서로 다른 능력을 다양하게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나보다 나은 여러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할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말을 종합해 보니 예전 우리 조상들이 살던 마을이 되었다. 마을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던 시절, 어느 집에선 두부를 만들고, 어느 집에선 술을 만들었다. 어느 어른은 쟁기질을 잘하고 어느 집 아저씨는 지붕을 잘 고치고, 누구는 바느질을 잘하고 누구는 음식을 잘했다. 그런 능력과 솜씨들은 늘 공유되었고 언제라도 빌려 쓸 수 있는 관계가 유지되었다. 우물도 공동으로 사용했고 소나 쟁기 또 다른 농기구도 모두 함께 사용했다. 아이들 옷도 물려주었으며 책이나 놀이도 대물림됐다. 또 마을에 한 둘쯤은 못난이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내쫓지 않고 품어 같이 살았다. 그 시절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 때문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불안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은 모두 비용이 따르고 그것으로 인한 불안이 일상화 되어있다.
한국의 트라우마는 신기루를 쫓듯, 무언가 새로운 것을 향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들을 한꺼번에 좋은 곳으로 인도할 교육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믿음, 좋은 선생, 좋은 학교가 따로 존재한다는 믿음. 좀 더 참고 열심히 하면 잘살게 될 거라는 믿음..

그런데 우치다는 강연에서 한 가지만 반복해서 언급한다. 누구도 혼자서 좋은 역할을 다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도, 교사도, 프로그램도 단일하게 아이를 잘 성장시킬 것은 없다는 것이 답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러니 당신들 모두 같은 크기의 목소리를 내며 함께 다양성을 극대화하며 살라고. 그곳에 혼란과 갈등이 최고조일 때 아이의 성장도 그만큼 뒤따를 것이란 그의 말에 나는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경쟁만능의 시대에서 사다리타기 게임하듯 위로만 오르려는 삶을 해체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말과 다름없지만 그의 논법은 새롭게 다가온다. 모두가 제몫을 하고 좀 더 잘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 우리의 성장주의에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을 때 더 행복하게 집단에서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높게 오르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나보다 나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기쁘게 여기고 참조하라는 이야기로 나는 들었다. 이런 공동체적 삶의 방식의 환기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도 우치다는 우리를 다른 각도로 보게 해 주었다. 새로운 것은 단순히 젊음이 주지 않고 냉철한 분석으로 가능함을 우치다는 보여 주었다. 혼자 답을 찾겠다고, 나를 찾겠다고 분주한 사람들이 우치다를 만나길 권하고 싶다.

* <하류자향>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한국을 방문해 지난 2014년6월25일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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