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광명에서 일년동안 ‘밀양’을 산 엄마들의 특별한 하루
‘좌충우돌’ 광명에서 일년동안 ‘밀양’을 산 엄마들의 특별한 하루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4.12.28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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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누구 편인가를 두고 옥신각신..밀양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쿨...지역에서 실천할 무엇은?...그리고 엄마들과 깨어있는 시민.

밀양을 걱정하고 원전의 위험을 걱정하는 엄마들의 모임, 광명 '밀양댁' 송년회 모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두 세계의 충돌이다. 에너지 수급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갈린다.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도 나뉜다.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는 입장은 원전 에너지의 효율성, 경제성을 주장한다. 필요불급을 외치고, 경제논리로 모든 것을 돌파하고 강요한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그것이고, 이를 통해 이익을 누리는 집단이 그러하다. 소위 ‘원전마피아’로 불리는 입장이고, 세력이다.

반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은 원전 의존을 줄이고, 대체 에너지,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전의 위험성을 감안해 사용연한이 지난 원전부터 우선 폐쇄하고 나머지 원전도 순차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사용 방식을 전환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멀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가깝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원전 폐기내지 축소로 나아가고 있는 독일 등 선진국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잦은 원전사고나 비리 문제는 원전 위험의 적신호라고 우려한다.

밀양 어르신들의 투쟁은 이러한 세계의 충돌, 갈등이 담겨 있다. 몇 대에 걸쳐 살아온 소중한 삶터인 지역을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의지와 애정이 투쟁의 출발이지만, 이 싸움이 결코 쉽지 않았던 이유는 원전 마피아라는 거대한 벽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에 맞선 촌로들의 투쟁은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울분과 안타까움 그리고 커다란 부채의식을 안겨주고 있다. 밀양의 싸움은 몇 년에 걸쳐 지속됐고, 공권력에 밀려났지만 현재도 진행 중이다.

송년회 시작 전에 이날 사용했던 우비를 접어 보관하는 밀양댁 엄마들.

광명 ‘밀양댁’ 모임은 2013년 11월경에 시작됐다. 밀양 투쟁 현장을 방문하고 온 두 명의 주부가 밀양의 안타깝고 절실한 사정을 지나칠 수 없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시작한 작은 모임이다. 2014년 12월 현재 만 1년이 지난 모임이다. 현재는 11명의 주부들이 모여있다.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지역 대안학교인 볍씨학교 학부모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올해 동국대 김익중 교수를 초청해 ‘탈핵강연’을 열었고, 자체적으로 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마을 성대골도 다녀왔다. 매주 금요일 저녁6시반 철산역 앞에서 탈핵, 노후원전 폐기를 요구하며 일인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12월 26일(금) 저녁6시. 밀양댁 모임은 올해 마지막 모임을 의미있게 진행하기로 했다. 볍씨학교 아이들과 함께 노후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거리 캠페인을 전개했다. 광명사거리를 출발해 철산역까지 걷는 거리 캠페인이었다. 노란 우비를 입고, 우비에는 노후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문구를 새겼다. 볍씨학교 20여명의 학생들이 엄마들과 함께 했다. 그런데 이날 캠페인은 철산역에 도착해 거의 마무리 시점에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났다. 누군가 민원을 제기해 정보과 형사 두 명이 급하게 왔고, 상황파악에 나섰다. 밀양댁 엄마들과 아이들도 당황했다. 거리 캠페인인데, 집시법 어쩌고저쩌고 하는 상황은 이해도 안 되었고, 예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시비가 붙기도 했지만, 곧 상황은 정리됐다. 경찰을 만나, 즉석에서 우비를 벗고 거리 캠페인을 멈춰야 했다. 밀양댁 엄마들은 ‘김샜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무엇인가 의미있는 행동을 해보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어렵다는 어떤 벽도 체감했다. 거리 캠페인이 단순 캠페인인지, 집시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므로 사전 신고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공부의 기회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거리캠페인과 거리 시위 경계에서 찜찜함을 두고 일단 이날 행사는 마무리했다.


뒤끝이 개운치 않았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을 보듬고 근처 중국집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장면과 짬뽕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친구들과 하나둘씩 손을 잡고 자기들만의 시간을 갖고자 헤어졌다. 저녁 8시를 넘긴 시간 밀양댁 엄마들은 올해 한 해를 돌아보는 뒤풀이 시간으로 송년회를 가졌다. 철산4동 모임방 한 곳을 빌려 맥주와 과자, 귤 등 간단한 음료를 준비했다. 두런두런 모여 앉아 대화의 물꼬를 텄다. 엄마들과 아이들의 순수한 거리 캠페인을 용인 못하는 경찰에 대한 화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집시법 운운하는 경찰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거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갑론을박 대화의 끝은 절차를 알아보고 집회 신고를 하고, 이날 못다한 거리 캠페인을 다시 한 번 하자는 것으로 결론냈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은근과 끈기(?)였다. 이어 올해 진행해 온 일인시위를 지속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도 진행됐다. 이 역시도 은근과 끈기로 결론냈다. ‘지속적인 것이 중요하다. 늘 그 자리에 서있는 모습이 하나의 상징이 돼야 한다.’라는 의견이 채택됐다. 이날 캠페인에서 사용했던 노란 우비를 입고 서있으면 시각적인 효과도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보태졌다. 자연스럽게 술자리 톡은 하나하나 의견을 정리해가며 진행됐다.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진 와중에도 아이들과 한 컷

한 순배, 두 순배 술잔이 돌았다. 진도를 조금이라도 서두르는 이들은 어느 모임이나 그렇듯, 모임에서 진을 뺀 이들이기 마련이다. 밀양댁에서는 단연 한미선씨이다. 밀양댁 지기이다. 밀양을 다녀 온 후 뭐라도 해야 한다며 앞장서서 나섰고, 그런 한미선씨를 묵묵히 응원하며 언니들과 동생들이 함께했다. 한미선씨는 “혼자는 못하는 일인데, 언니들이 함께 해줘 너무 고맙다. 같이 손잡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언니들 역시도 “한해 너무 애썼다”며 격려와 위로를 건넸다. 송년회는 술자리 수다와 함께 모임 운영, 밀양 이야기로 자정을 훌쩍 넘겼다.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등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대답이 술자리 토크 속에서 진행됐다. 탈핵의 연장에서 지역에서 에너지 조례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세부적인 실천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와 제안도 나왔다. 앞으로 공부해가며 실천해가자는 제안들은 깨어있는 엄마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밀양댁 송년회는 그렇게 웃고 떠들며 그리고 가끔 밀양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울먹이며, 한해를 의미있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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