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 양영희(하중초 교사)
  • 승인 2015.03.01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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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호모 큐라스 서평(고미숙/북드라망)

마당, 골목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학교의 교실이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나이 들어 혼자 사는 탤런트 김광규를 보고 JTBC의 한 프로에서 ‘1인 가구가 정상인가?’ 라는 주제로 찬반토론을 하는 것을 봤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젊은이들의 말에 의하면 1인 가구의 증가는 지구 곳곳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차이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 이다. 단순히 혼자 지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네트워크가 끊어져버린 채 고독하게 지내는 가난한 1인가구의 증가는 사회가 관심가질 부분이라고 본다.

김광규는 말한다. 사람들이 결혼보다 노후를 준비하라고 한다고. 그 말에 출연진과 티브이를 시청하는 나도 순간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것이 우리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어릴 때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위해 분투하던 노력은 평생 지속되다 노후까지 연결된다. 모든 걸 화폐의 교환으로 가져와야 하는 자본주의는 노후준비, 죽음의 준비까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순간 레이스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참 재미없고 빈곤한 삶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빈곤한 삶은 학교에서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학교는 삶을 준비시키지 못하고 불안의 크기만 아이들 몸속에 정교하게 새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느꼈을 때보다 무얼 해도 소용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암울하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고 기꺼이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도록 유도하라고 하지만 아이들과 부모가 걱정하는 삶의 끝은 절망이거나 미궁이다. 스스로 시스템의 굴레를 벗어나 길을 가라고 하기엔 험난한 여정이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어느 곳에서도 길 찾기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학교는 빈곤하다. 열심히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허무한 몸짓이다.

새 학년 새 학기 준비를 하면서 눈에 띤 책이 바로 낭송 시리즈와 ‘호모 큐라스’였다.
신문을 통해 고미숙의 낭독, 낭송의 중요성과 여러 시도들을 접한 적은 있지만 교실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진 못했었다. 그러다 올해 고학년을 맡게 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졌다. 그냥 독서지도가 아니라 좀 더 인간 본성에 맞는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시도하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낯선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정말 궁금하다. 그러나 아이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며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는 속도대로 가면 어떨까 한다. 그건 아이들과 일 년을 걸어가는 길 위에서 우리들의 영토를 수 놓은 방식이 될 것이다. 한명 한명의 호흡과 소리가 서로를 연결해 주고 확장시켜주며 책 속에서 만난 세상을 이야기로 끌어가고 싶다. 구술, 낭독, 릴레이 낭독, 작은 낭송회 등등 새로운 읽기 문화이자 공부 방법 그리고 우정을 나누는 방식이 될지 모르겠다.


성장한다는 건 말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골목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이 통로가 다 끊겼다. 골목은 사라졌고 거리에는 광장이 없고 학교와 집에는 마당이 없다. 이벤트와 쇼가 다 구경을 위한 것이지 쌍방향적 소통의 무대는 아니다. 하루종일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단어도 불과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카톡이 대신한다. 목소리를 단련하고 ‘말의 맛’을 즐길 시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성형과 다이어트 , 페이스북등 한편으론 표현의 과잉시대에 살고 있지만 모두 비주얼에 집착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만 열중한다. 우리 시대화법은 호흡이 짧고 서사는 빈곤하다. 이를테면 말의 길이 끊어진 곧 실어증을 일상적으로 앓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호모 큐라스, 본문중-

교실에서 목소리를 살려내고 아이들 마음에 쌓인 독소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교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자유롭게 도와주는 싱싱한 충돌을 상상한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서면 평화를 느끼고 주인으로 행동하며 밖에서 받은 상처도 서로 만져주는 따뜻한 교실을 그려본다. 사라진 골목도 마당과 광장도 모두 대신할 교실을 꿈꾸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결과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도 길을 가야할 때가 많다. 게다다 이곳은 아직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이 있으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부단한 노력을 전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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