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민을 길러내는 자본의 대학
죽은 시민을 길러내는 자본의 대학
  • 양영희 (하중초 교사)
  • 승인 2015.08.09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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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진격의 대학교>, 오찬호, 문학동네 2015.8.8.

대학의 길을 묻는다.

한마디로 끔찍하다
마치 무슨 공포소설을 읽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책을 덮고 내가 세상을 읽는 힘이 얼마나 감상적이었는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부끄러울 정도였다. 우리가 동시대 이야길 듣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이야기로 가득한 대학의 모습은 그 어떤 것도 동의 되는 게 없었다.

대학이 이런 모습이라면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게 훨씬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학거부 이후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보여주는 책들을 읽으며 낭만적으로 학벌 없는 사회를 외친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들었었다. 그러나 ‘취업사관학교가 되어버린 캠퍼스의 진풍경’, ‘영어에 미쳐있는 캠퍼스의 비극’, ‘캠퍼스에 구축한 이데올로기의 정체 즉 궁극적으로는 ‘죽은 시민’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을 보며 저곳을 대학이라고 칭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협력이 배제된 경쟁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지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이 생생하게 살아서 활발히 진격하고 있는 그 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학이 선택한 변화들이 사회 전체를 얼마나 황폐화 시키고 결국은 그 모든 피해를 현재의 대학생들이 감당할 수 밖에 없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대학의 평가는 재정지원과 언론을 통한 대외이미지손상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에, 대학은 평가의 기준이 되는 정량적 부분을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쓴다. 그리고 대학 평가자체가 정치적으로 ‘말 잘 듣는 대학’을 설정함을 목적으로 ‘솎아내기’라는 기법을 장착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런 효과는 정부의 의도와 맞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들은 영어몰입교육으로, 학생들의 취업률로, 강의실대비 학생 수, 시설투자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 항목이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어몰입교육의 수치를 높이기 위해 국문과 수업, 철학, 수학 등 우리말로 수업하는 게 훨씬 학문적으로 정당한 것들조차 영어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수업을 못 알아듣고 교수는 진도를 나갈 수 없어 같은 말을 영어와 우리말로 반복하여 결과적으로 수업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이런 수업을 학점만을 위해 듣는다. 그러나 영어중시는 이미 이 사회에서 ‘종교수준’이 되었고 ‘경쟁적 자기과시의 최고 수준으로 영어공화국’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대학 평가항목인 학생 수 대비 강의실, 교수비율 등을 높이려고 대학들은 정규직 대신 계약직 강사수를 늘리고 외부 기업과의 제휴를 끝없이 모색해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지은 건물들은 아무나 들어가지도, 사용하지도 못하고 자본의 방향이나 내용과 어울릴 때만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걸 통해 자본의 가치를 몸에 익히게 한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대학의 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지거나 노골적이고 그런 현상은 기업이 대학에 건물을 짓고 영업을 해도 되는 상황까지 와 있다. 마치 호화리조트처럼 화려한 대학 건물 곳곳을 학생들은 비싼 이용료를 내고 드나들며 자본에 둘러싸여 그 공기를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산다. 지금 신학생들은 ‘대학의 상업화’를 느낄 수 없으며 자본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취업만이 유일한 목적이 된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할 때도 자신이 원하는 학문이 아니라 쉽게 학점을 받을 수 있거나 취업에 유리한 과목만을 선택한다. 그 결과 대학에선 경영학 외 나머지는 주변학과가 되고 경영학과의 비율은 25%가 넘는다고 한다. 인문학, 사회학, 철학 등의 교수들은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경영학과의 복수전공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면접 때 써먹을 수 있다고 선전을 할 지경이라고 한다. 취업은 학생들의 경쟁문화를 극도로 높여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아니면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것이 돼버리고 만다. 이런 전쟁을 학생들은 신입생 시절 ‘취업9종 셋트 특강’으로 시작하여 졸업할때 까지 계속하게 된다. 학문은 멈추었고 사회성은 이미 사라졌다.

‘스펙을 쌓느라 자신과 세계에 진지하게 사고하거나 탐구할 시간이 없고 정신은 공동화된다. 그 결과 독자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지시하는 내용만을 받아들인다. 이는 권력층에게 좋은 일이다. 이런 대학에서 잘 성장했다는 것은 오늘날의 결점이다.’ (본문 중)

지금 대학의 모습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를 대통령이 외친 나라답다. 기업들은 대학에 상대평가를 요구했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학생들에 대한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요구로 ‘학생들의 경쟁과 부담감을 지나치게 높이고 이런 까닭에 협력적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학생들은 학점관리에 목을 매고 시험이 끝난 후 문제제기하는 학생들 때문에 논술, 서술형 문제는 단답형과 객관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르치는 데서도 평가에서도 사고의 틈은 사라졌다. 그리고 징벌과 모욕감’을 일상화한다. 가장 최악은 모든 것에 무감해진 대학이 유일하게 공감하는 것이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지성이다.
반대정보를 차단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집단사고는 걸림돌이 없고 그래서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상황인식도 늦어지고 진단도 피상적이다. 집단지성은 다수의 협력이 개인의 합 이상의 뛰어난 결론을 도출해낸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문제집에서나 보는 단어일 뿐이다. 그들은 성숙한 토론이나 비판적 사고에 대해서 배운 바가 없다. 그러니 민주주의가 훼손되어도 무덤덤하다. 교육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인 대학이 애초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결승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감을 만들어내고 영어를 숭배하며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하고 비판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곳에는 고통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술만 가득하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기업의 논리가 체화되고 순종하는 ‘완전체’가 된다.' (본문 중) 

자본에 완전히 굴복한 대학의 모습은 너무도 끔찍했다. 책을 읽으며 대학에서 학문은 커녕 ‘사람의 모습’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와 상황들이 어디에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자본의 대학’이었다. 이런 곳에 아이들을 보내려고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교육을 했는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부모들도, 초중고 교사들도 이런 현실을 똑똑하게 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공부가 무엇인가? 사는 게 무엇인가? 행복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혼자 행복해 질 수 있는가?...’
아주 정교하게 대학을 조직하고 구조화 시켜 그 속에 있는 구성원들을 완벽하게 빼앗아간 자본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대학을 돌려받을 길은 없는 걸까? 더운 날인데도 심장이 뛰어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대학의 진격’은 눈을 가린 채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처럼 느껴진다. 정말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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