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계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기업 위주의 노동개혁
내 가계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기업 위주의 노동개혁
  • 김승식
  • 승인 2015.10.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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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의 저자

아래의 표어는 9.13 노사정 합의 이후 추석 전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우리 동네 사거리에 걸어놓았던 홍보 현수막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노사정 합의에 따른 노동시장 개혁이 청년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국민 홍보전이다. 과연 이번 노사정 합의가 노동시장 선진화를 통한 좋은 노동개혁이고, 또한 청년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의 결과가 거시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실제 개인들의 삶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차례로 점검해보도록 하겠다.


노동시장은 밥이다

<노동시장은 밥이다>는 전임 한국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용득씨가 자신의 노동운동 과정의 삶을 정리한 책 제목이다. 맞는 말이다. 노동시장은 개별 노동자의 소득, 즉 밥그릇의 크기와 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그래서 거시 경제적으로는 한 나라가 벌어들이는 소득을 1차적으로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노동시장을 1차 분배시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든, 국회의 노동 관련 입법이든 모든 노동 관련 법안이나 행정규칙은 노동자의 삶과 직결된다.

하지만 노동시장과 관련된 법규나 규칙 조항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련 법규가 너무 많고 용어들도 전문적이고 어렵다. 이번 노사정 합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관련된 법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 관련 법안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임금과 노동시간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기간제노동자인 비정규직과 관련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하청업체와 관련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실업자를 위한 고용보험법, 마지막으로 노동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피해노동자를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있다. 이번 9.13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의 내용들은 노동 관련 다섯 가지 법안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번 합의안은 사용자 위주의 노동시장 개혁안

이상에서 살펴본 개략적인 노사정합의 안으로만 보면,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노사정합의에 따라 임금피크제 도입과 정부의 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통해 청년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9.13 노사정 합의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한다.”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이는 그동안 노동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일반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에 관련된 항목이다. 합의문에는 노동자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완화’라는 표현 대신 ‘명확히 한다’가 들어 있다.

이는 보수정부 출범 이후 지난 8년간 사용자측(재계)이 줄기차계 주장해왔던 사용자 위주의 노동시장 규제철폐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선 ‘저성과자’나 ‘업무부진자’를 대상으로 쉬운 해고에 필요한 일반해고요건 완화이다. 다음은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시 노동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변경된 취업규칙을 이용해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손쉽게 변경하고 싶어 하는 사용자측의 오랜 숙원을 박근혜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MB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친 재벌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고수해왔던 보수정부의 경제정책이 박근혜 정부라고 특별히 달라질 리가 만무하다.

대표성 없는 불공정한 노사정합의

기존의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와 관련된 임금이나 해고, 근로시간 등의 중요 사안은 노동 관련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 그러나 취업규칙과 일반해고요건 완화가 정책적으로 실현될 경우 사용자 마음대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 환경이 추진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게 된다. 이것이 가능해질 경우 노동파괴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90%에 이르는 노동조합 울타리 밖에 방치된 1,800만 명에 달하는 비 노조 근로자의 고용불안정성은 극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대부분 취업규칙보다 더 구속력이 강한 단체협약을 두고 있어 취업규칙이 변경되더라도 노동조합이 합의한 단체협약은 보호받을 수 있다. 2014년 기준 정규직의 노조 가입 비율이 13.9%인 반면, 비정규직은 1.4%에 불과하다. 이번 노사정합의는 대표성에 있어서도 말이 안 된다.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자 대표인 한국노총은 26개 산별노조로 구성되어 조합원 수가 전체 근로자의 4.5% 수준인 90만 명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정규직노조를 대변하고 있어 이번 합의에 따른 불이익이 자신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한국노총이 전체 노동자에게 극히 불리한 데도 불구하고 쉽게 합의해 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노동개혁 후속작업으로 새누리당이 발의 중에 있는 비정규직(기간제 및 파견 노동자) 기간제한 연장(현재 2년에서 4년으로) 관련 기간제법과, 파견업종 확대(55세 이상 노동자,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 농어업 업종 노동자의 파견노동 규제 완화)를 위한 파견법 개정은 현재의 비정규직을 영원이 비정규직으로 고착화시키고, 일반해고 완화로 줄어든 정규직 일자리에 기간제나 파견 근로자로 대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결국,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은 쉬운 해고를 통해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의도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기업의 임금비용을 줄이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의도한 대로 임금피크제와 임금 상위 10% 이상의 임직원의 임금인상 억제를 통해 청년고용의 확대는 가능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임금피크제는 기업이 지켜야할 강제 조항이지만 청년고용 확대나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는 기업의 선의에 맡겨진 자율 권고 사안일 뿐이다. 따라서 이번 노사정합의는 기업과 노동자 간의 의무 이행에 있어 비대칭성이 뚜렷한 불공정 합의이다.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 확대는 별개의 문제

사실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 문제 간에는 별로 상관성이 없다는 것이 기존 업계의 사례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환 의원(새정치)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08-2014년 임금피크제 시행 5개 은행 신규채용 현황>자료를 보면, 2000년대 중반부터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우리(2005년), 하나(2006년), 국민(2008년) 등 5개 은행의 경우 2014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인원이 858명으로 2008년의 430명의 두 배가 늘은 반면, 정규직 신입 행원 수는 2008년 1,887명에서 2014년 1,401명으로 25%나 축소된 것으로 밝혀졌다.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으로 늘어난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과 청년 일자리 창출의 연계 전략이 현재의 청년실업 문제의 책임을 아버지 세대의 일자리 문제로 전가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노동시장의 환경 악화가 가계소득 축소와 기업소득 확대로 나타나

정부의 주장과 달리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우리사회의 노동시장 환경이 모든 면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최악의 조건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즉, 한국은 비정규직의 비중이 전체 근로자의 절반에 육박하여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고,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불평등도가 가장 심하고, 비정규직의 짧은 고용으로 인해 전체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5-6년에 불과하지만,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71시간(2013년 기준)으로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긴 국가에 속해 있으며, OECD 평균에 비해서는 무려 400시간이나 많다.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을 최악의 고용불안 국가로 지칭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기업 위주의 전 방위 노동시장 착취구조가 가져온 결과는 대부분 임금근로를 통해 살아가야 하는 가계의 소득분배 구조를 급속히 악화시켜 왔다. 이는 아래 그림을 통해 잘 드러난다. 국민총소득(GNI) 중에서 가계가 차지한 비중은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지난 1998년 72.8%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노동법이 개악되어 기업들의 무분별한 정리해고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의 대부분을 비정규직이나 파견으로 채워지면서 가계소득은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61.2%로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간 무려 11.6%p나 축소된 것이다. 가계소득 비중이 11.6%p나 축소된 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2013년 GNI기준) 무려 167조 원으로 이 만큼 가계소득이 축소된 것이다. 이는 2013년 GDP의 민간소비규모 728조 원의 2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매년 가계소득 비중의 축소로 인해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내수시장의 침체와 가계부채의 확대 원인은 여기에 있다.


한편 GNI의 가계소득 비중이 줄어든 만큼의 소득이 기업들의 곳간으로 이전되었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외환위기 이후 GNI의 기업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 13.9%에서 25.7%로 무려 11.8%p나 확대되어 GNI에서 가계소득 축소분 만큼 기업부문으로 고스란히 이전되었다. 최근 30대 재벌그룹의 사내유보금이 700조 원을 상회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상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재벌대기업 위주로 형성된 노동시장의 착취구조가 빚어낸 결과이다.

노동시장 개선 없이 가계소득 주도 성장은 불가능

우리나라의 사용자 위주의 노동시장 환경 악화에 따른 가계소득의 착취 정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보자. 2012년 기준 GNI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60.8%로 OECD 평균 67.7%보다 무려 6.9%p나 낮은 반면, GNI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25.8%로 OECD 평균인 18.2%보다 무려 7.6%p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OECD 회원국 중 최악의 노동시장 착취구조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따라서 최악의 노동시장 착취구조가 전체 임금소득 축소로 이어져 GNI의 가계소득의 축소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 일자리를 과도하게 양산하고 있는 열악한 노동시장 환경을 개선하는 것 없이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회복 정책은 불가능하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 보다 쉬운 해고를 유도하고, 비정규직 확대와 임금피크제를 통해 전반적인 임금소득을 줄이려는 의도임을 감안하면, 당초 최경환노믹스가 내세웠던 가계소득 중심의 성장정책이 허울뿐인 뻔뻔스런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이 9.13 노사정합의 이후 내건 홍보 현수막의 구호가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시장의 개혁이겠지만 다수의 노동자와 가계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위협하는 흉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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