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국가는 없었다.
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국가는 없었다.
  • 양영희(교사)
  • 승인 2015.12.04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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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침묵의 살인자-죽음의 연기는 누가 피웠나?)를 보고

▲ SBS '그것이 알고싶다'(사진)는 지난 11월28일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은 국가의 존재를 묻게 한다.

우리는 끔찍하고 이해 안 되는 갖가지 일들로 둘러싸여 극도의 피로감에 지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누구도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일이 행복하다거나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땐 모두 불안과 암담함을 떨칠 수가 없다. 눈 내리고 추운 날 수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천막을 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정부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풍경이 익숙하다. 억울함과 뻔뻔함 그리고 무관심이 동시에 교차하면서 서울의 공기는 제각각 흐르고 있다. ‘비정상의 일상화’ 그것이 현재의 국가 모습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힘없는 국민들이 눈 내리는 이 순간 광화문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버리고 있다. 거기에 수년간 1인 시위를 해온,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와 아내를 잃은 사람들도 가녀린 희망을 잡고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침묵의 살인자-죽음의 연기는 누가 피웠나?)’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몇 년 전부터 간간이 뉴스나 시사프로를 통해 가습기 피해로 인한 참사문제가 다뤄졌지만 사람들은 뉴스가 끝나면 사건도 잊게 된다. 우리가 잊었듯 문제가 밝혀지고 해결되면 참 좋으련만 문제는 원점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아내를 잃은 사람들, 피해로 후유증을 앓으며 산소통을 둘러메고 호소를 해도 정부도 기업도 대답이 없었다.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530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그중 143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된 전체 맥락을 거의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부도덕한 정부 관련 부처의 답변은 놀라울 정도다. 서로 자신들소관이 아니란 변명만 하고 자신들은 규정에 충실하게 일할 뿐이라고 답한다. 식약청,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 환경부, 국가기술표준원...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국가조직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영유아와 산모들이 호흡을 하지 못하고 폐가 딱딱하게 굳어가며 사망하는 현상을 보고 의료인들이 정부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 해도 역학조사를 바로 하지 않았고, 여러 과정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직접적 피해 원인임이 확인된 후에도 수사도 하지 않았으며 국민안전을 위한 조치도 너무도 늦게 취해진다. 심지어 가장 많은 양을 판매한 ‘옥시’ 등의 업체를 바로 수사하지도 않았고 4년 이상의 시간을 끌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업체에 내린 처분은 과장허위광고라며 5천만원 정도의 과징금을 내린 것이 다 라고 한다. 피해자 가족들이 느꼈을 분노와 절망감은 어땠을까 상상이 간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들이 낸 소송에서도 정부는 법적 책임이 없다고 답한다. 자신들은 미비한 법이지만 충실히 이행했노라고. 눈앞에 죽어가고 있는 국민이 있어도 우리는 할 일을 다하고 있다고 답하는 국가의 모습을 보며 분노가 일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살균제를 호흡하도록 제품을 만드는 살인행위를 하는 나라는 없었다. 법조항이 미비했어도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조사도 제때 하지 않고 피해자들에 대한 파악과 지원도 전혀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정부는 누가 봐도 기업의 입장을 배려하고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정부의 모습은 마지못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최소한의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기업은 그 뒤에 숨어서 안전하게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기를 위해 사용하라’고 광고하며 안전을 장담하던 기업들은 자신들과 이 사건이 관련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몬 기업의 부도덕한 민낯이 대한민국에서는 참 당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과한번 한 적 없으며 그 어떤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4 출시이후 900만명 이상 사용했다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실제로는 훨씬 더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는 피해자 조사를 홍보하지 않고 조용히 접수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추가로 접수된 피해자는 111명, 사망자22명이라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접수처: 환국 환경산업기술원환경피해자 구제실 02.380-0575)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국가의 무능과 부도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언제 목숨과 삶의 기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보듬어 주고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면, 이런 참사들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누가 제2, 제3의 참사의 대상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던 피해자,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 진실이라도 밝혀주고 싶다던 엄마의 절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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