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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번 서로 얽혀봅시다!’
행복교육 괴산어울림, 미원교육공동체를 찾아가다
2017년 11월 08일 (수) 16:42:18 양영희 mesochonsa@hanmail.net

   

11월의 찬 기운이 몸을 감싼다. 병이 나는 걸 무서워하는 나는 겨울용 목도리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은 행복교육 괴산어울림 사람들이 미원교육공동체를 처음 만나는 날이다. 이웃과 마을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그것만이 답이 아닐까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를 했다. 괴산과 미원은 30여 분이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다. 행정구역은 괴산과 청주시로 구분하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동네를 샅샅이 알 정도로 친근한 거리다. 함께 이동하는 차안에서 괴산의 마을교사들은 행정편의로 선을 긋고 삶을 나눠버리는 불합리함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오늘 행사는 ‘충북마을교사 워크숍’에서 만난 괴산과 미원의 선생님들이 이웃끼리 만나 뭐라도 해보자는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추진됐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먼저 맘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오늘 일정은 ‘괴산과 미원지역의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공유하며 체험하기, 정을 나누는 저녁식사, 두 지역의 귀농귀촌한 마을교사들 이야기를 들으며 우정을 나누기’로 계획돼 있다.
 
처음 도착한 곳은 괴산군 청천면 금평리 가을농원이었다. 늦가을 단풍이 예쁘게 어우러진 골짜기에 사과밭과 한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년 전 귀농했다는 주인 선녀님은 가을햇살 닮은 환한 웃음으로 우릴 맞아 주셨다. 선녀님은 만 평이나 되는 사과밭을 남편분과 초생재배로 가꾸신다고 말했다. 처음엔 비만 오면 날마다 사과나무가 쓰러져서 나무를 세우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 나무꾼에게 ‘나를 사과나무 밑에 묻어 달라’고 했다며 옛이야기를 전해주신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웃었다. 살면서 옛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웃으며 할 수 있다는 건 참 잘 살았음을 말해주는 걸 아닐까? 선녀님은 ‘뿌리 채 뽑힌 사과나무’를 안 들어본 사람은 그 무게를 모를 거라고도 하신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말리는 일, 약을 치지 않고 사과를 키우는 일을 고집스럽게 20년 이어온 선녀님은 지금도 농장의 풀을 깎을 때 그 풀냄새가 좋다며 웃는다. 나는 그 웃음꽃에서 사과향이 날것만 같았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과 따기, 사과 버터 만들기, 천 그림 그리기 등의 체험이 있어서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사과를 딸 때 주의할 점을 듣는다. 선녀님은 겨우내 양분을 저장해야 내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니 꽃눈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한다. 또 꼭지를 통해 병원균이 침투할 수 있으니 사과 딸 때 꼭지까지 따줄 것을 부탁한다. 또 상처 난 사과도 선녀님의 소중한 자식이라고, 함부로 버리지 말아 달라 말씀하신다. 아이들은 그 의미를 이해했을까? 아이들은 바구니를 들고 사과밭으로 뛰어가고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새를 쫓기 위해 줄지어 매달아놓은 종소리가 농원에 울려 퍼진다.

사과 따기가 끝난 뒤 농장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33년 된 사과나무를 보러 갔다. 보통 15년이면 과일이 많이 안 열려 잘라낸다는데 이 나무들은 아직도 주렁주렁 탐스런 사과를 매달고 있었다. 사과나무가 이렇게 늠름하게 보인 건 처음이었다. 오래된 것이 어떤 인연과 손길이 닿으면 시간이 멈춘 듯 빛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이동한 곳은 청주시 옥화리 ‘곰베사 농장’이었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젊은 주인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주인은 미국유학을 하고 잠시 휴식을 위해 고향에 왔다가 아버지의 사과농장을 맡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농부가 일만하고 그 대가와 보람을 갖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래서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비자와 관계 맺기와 소통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더 많은 사과나무를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을 위해 일정한 분량의 나무를 잘라냈다고 했다. 그곳에 체험장을 만들고 주차장을 만들며 사람들을 품을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름이 없던 아버지의 사과밭에 ‘곰베사’란 이름을 붙인 것도 아들이었다. 고향에 돌아와 외로웠던 그가, 아버지가 키우던 곰처럼 큰 개에게 사과를 베어 먹게 하며 친해져서 붙인 이름이란다. ‘곰처럼 생긴 개가 베어 먹은 사과’의 앞 글자를 딴 것이라며 웃는다. 젊은 주인은 지금은 ‘이야기가 있는 체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우리나라 청년들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외국에 가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데 그곳에서 정작 일 년 내내 소똥만 치우다 오는 사례도 봤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자신은 곰베사에서 그런 기회를 주고 싶다고도 한다. 또 외국의 여행객들이 곰베사에 머물며 색다른 추억을 만들고 가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한국최초 영어체험농장!’그는 농장이 교육과 마을에 접목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원교육공동체와 함께 한다. 그의 시작이 사과처럼 꽃피고 튼실한 열매가 맺길 바랬다. 곰베사에서는 사과버터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했다.

곰베사농원 체험시간에 미원도서관으로 이동해 천 그림 그리기를 체험한 팀과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괴산과 미원의 마을교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미원교육공동체 총무 김연철님이었다.
귀촌 4년차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남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많이 불안하다고. 그래서 늘 자신과 마음으로 싸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처음엔 넘치는 시간과의 싸움이 힘들었다고 했다. 시골은 스스로 계획하지 않으면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어찌할 길이 없더라고, 그럴 때마다 ‘놀아도 되나?’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 다음은 환경과 싸우는 게 힘들다고 했다. 마을 분들이 인사도 잘 안받아주시고 차가 지나가도 차종을 안보고 사람만 본다며 지역에 내려와 겪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셋째는 교육과 싸우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가 초등일 때는 놀려도 된다하더라도 중학교는? 고등학교는? 하는 고민이 끝이 없고, 공동체에 들어온 이유도 다 아이 때문이라고 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믿음이 없고 공교육에 화가 나는 게 많다고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먹고 사는 것과 싸우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처음 챙겨온 자금이 사라져가며 오는 불안을 그는 말했다. 𔃶시 내 고향’을 보면 다 성공하던데 나는 지렁이, 버섯, 사과 다 해보려고 가봤는데 농사짓지 말라고 말리더라며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그래서 펜션이랑 커피숍을 했는데 너무 어려워 커피숍은 접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가끔 로또를 산다고 한다. 그거 되면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성공하는 농사를 꼭 지어보고 싶다며 농담인 듯 진담 인 듯 웃었다. 그는 미원교육공동체에서 하는 고전읽기 모임하면서 처음으로 속마음 얘기하게 되었다며, ‘마음을 드러내니 즐겁더라. 이래서 공동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연철님에 이어 미원교육공동체 전지현 사무국장, 괴산 문화학교 숲 임완준 선생님, 괴산 마을교사 홍남화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원에 내려와 도시에서 주말에 아이들 간식해주던 음식 만들기로 먹고 살기로 결정해, 수제 햄버거가게를 하고 있다. 교육공동체는 아이가 다니는 행복씨앗학교와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학교 일을 할 때 학교만 갔다 오면 잠이 오질 않았다. 아버지회 회장, 운영위원장 등을 했지만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벽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교육공동체 분들 다 바보 같다. 왜  학부모도 아니면서 자기돈 쓰며 고생할까? 그러나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처럼 괴산과 만나는 게 서로에게 힘이 될 거라고 본다.
  -미원교육공동체 전지현 사무국장-

우연히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괴산 사는 선배가 놀러오라고 해서 간 곳이 폐교를 임대해 만든 어린이 문화예술학교인 신기학교였다. 그곳에서 교실에 구들을 손으로 놓고 있더라. 도착하자마자 작업복 던져주며 같이 일하자고 해서 즐겁게 땀 흘리며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에 홀린 듯 그게 좋더라. 학교 가서도 계속 생각나 주말마다 괴산에 내려가게 되었다. 원래는 사회범죄심리학을 공부했는데 우리 사회가 갈수록 범죄연령이 낮아지고 해결법을 찾기 힘들다. 신기학교를 만난 뒤 일을 하고 교육으로 풀어내는 게 답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무일, 시멘트일 등을 배우며 아이들을 만났다. 그 속에서 치유 받을 수 있었고 자신에 대한 이해력이 커지는 것을 경험했다. 나를 이해하는 힘은 남을 이해하는 힘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화학교 숲은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 영화, 만화, 라디오드라마 등으로 풀어내는 프로그램과 농사, 놀이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0년 전 에는 허우대 멀쩡한 놈이 시골에 왔다고 또라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10년 되니까 괴산지역사람들이 인사를 해주시더라. 지금까지 농촌의 가치를 생각하고 살아왔다. 지금의 땀이 삶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괴산 문화학교 숲 임완준 선생님-

미원에 가면 또래를 만날 수 있을 거라 해서 왔는데 모두 40대 이상만 있더라(웃음). 부모님이 먼저 괴산으로 귀촌하셨다. 회사를 다니다 힘들어 잠깐 쉬러 내려왔는데 벌써 3년이 가고 있다. 처음 일 년은 주말마다 도시의 프리마켓에 가서 초상화를 그리고 디자인을 했다. 그러다 문화학교 숲에서 놀이수업을 하고, 학교 방과후 미술수업, 마을학교 만화동아리수업, 청소년들과 영화 만들기, 그림책 만들기 등등의 일을 하고 있다. 시골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많은 일들이 생겼다.
고등학교를 안 다니고 예술을 하고 싶어 홈스쿨링을 했다. 친구들, 하자센터, 수유너머 등을 통해 인문학과 그림, 디자인, 영상, 만화 등을 배웠다. 청소년기에 학교 밖 경험들이 오늘을 있게 했다. 또 아이들과 그런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괴산의 마을교사로 사는 일중 가장 힘든 것은 20대 또래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다. 친구를 보려면 서울에 가야한다. 어떻게 하면 괴산에서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같이 지낼 수 있을까? 고민이다. 청년거점이 있어야 안정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데...
-괴산 마을교사 홍남화 선생님-

마을교사들의 이야기는 모두 ‘울림’이 있었다. ‘귀촌한 가장으로서 경제의 어려움, 시골 학교 교육 문제, 원주민과 문제, 지역에서 청년 삶의 문제’등이 모두 간절한 무게로 다가왔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뚫고 어느 분이 말했다.

‘우리 맨땅에 헤딩하는 거다. 한발 한발 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같은 생각을 한 분들이 많더라. 아이들이 20년 뒤에 이곳으로 돌아오고 꿈을 펼칠 수 있으려면 서로 연대하고 얽혀야 한다. 지역 나름의 특색 있는 영역도 만들어야 한다. 또 힘들 땐 이웃을 생각해라.’
 
그 말에 다른 분은 ‘우리 한번 얽혀 봅시다!’란 말로 화답했다.

*11월 4일, 토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한 괴산교육공동체 어울림의 이웃마을 나들이는 늦은 9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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