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명예직인가 멍에직인가?
지방의원 명예직인가 멍에직인가?
  • 김성현기자
  • 승인 2003.05.23 00: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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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명예직인가 멍에직인가

유급제로 개혁적이고 유능한 인물들 끌어들여야

지방자치 시행 10년이 넘었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중요한 원인으로 지방의회 의원의 도덕성 미달과 자질 부족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지방의회가 개혁적이고 유능한 인재들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명예직인 지방의원의 신분을 유급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 모지역 구의회 김○○(36세) 의원은 최근 카드를 비롯한 은행 빚이 2000만 원을 넘어섰다.
98년 구의원에 당선된 뒤 2년 동안은 다른 생업을 가졌지만 의원 역할에 충실하려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그만둔 결과다. 김 의원은 “아내가 맞벌이를 하지 않았다면 의원활동도 이미 접었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의 최연소 재선의원으로서 나름대로 의회 개혁을 열망해온 그도 언제까지나 생계문제를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빚이 2000만 원을 넘어가면 의원활동을 그만두기로 작정했는데, 아직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 그만둘지는 확신이 없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기치로 시행 10년이 넘은 지방자치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는 커녕 갖가지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예산 감시와 조례 제정이라는 지방자치의 핵심적 기능을 담당하는 지방의회의 부패와 무능이 지방자치의 몰락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권업자가 장악한 지방의회

지방의회의원들의 능력과 도덕성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무엇보다 지방의회에서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N구의 경우 30대가 2명, 40대가 10명이고 나머지 12명은 50대 이상이다. 그나마 N구는 서울시 구의회 중에서 비교적 젊은 인물들이 많은 곳이다. K구의회는 전체 19명의 의원 대부분이 60대이고, 70대도 5명에 이른다. 이에 비해 30대는 고작 2명. 사정이 이렇다보니 50대 의원이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속한다.
김○○ 의원은 “N구의회 의원 중 의회활동에 대한 애착과 개혁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4-5명 수준”이라며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젊고 개혁적인 의원이 전국 지방의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도 안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나이는 의원들의 개혁성과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잣대에 불과할 뿐이다. 진짜 문제는 지방의회 의원 대부분이 의회 활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각종 이권사업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홍○○(33세) 서울 K구의원은 “의원들 대부분이 부동산업자, 중소기업 사장, 빌딩 소유자 등”이라면서 “지역 유지로 불리는 토착세력과 끈끈한 이해관계로 얽힌 의원들이 대부분인 지방의회의 인적 구성은 곧바로 개혁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청 지원을 받는 대한노인회가 지원 예산에 대한 회계서류를 엉망으로 작성해 제출한 것에 대해 일부 의원들이 항의했지만 대부분 의원들의 침묵으로 아무 문제없이 넘어간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지난 2월 충남 ○○시 의회의 민노당 소속 의원 2명이 단체장의 업무 추진비를 공개하는 조례를 만들기 위해 9582명의 서명을 받았지만 다른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있다. 도로 개통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구축사업이 잦은 지방의 경우는 의원들의 도덕성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경남 지방의회에서 군수 보좌관을 했던 한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10명의 의원 중 6명이 건설업자 출신이다. 한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에 ‘지금 내 사업이 어렵다. 회사는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 한 건설회사 사장은 당선되자마자 2억 원 짜리 공사를 수주했다. 또 다른 한 의원은 총 10억 원 규모의 공장 건설에 자비 2억 원을 들이고 나머지 8억 원은 군에서 지원받아 논란을 빚고 있다.”

무능·부패 악순환 막고 개혁인사 수급해야

지방의회의 수준이 결국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수준이라면 개혁적이고 능력있는 인물들의 지방의회 진입이 시급한 과제임은 불문가지. 노무현 당선자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로 참여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유급제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NGO 활동가들 같이 젊고 개혁적인 인물들이 활동을 잠시 접고 의회도 들어가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생활이 안 돼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상태로 가면 급여 없이도 다른 부분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인사들만 지방의회에 들어갈 것이다.”

현재 기초의원은 월 55만 원의 활동비에 하루 회의수당 7만 원(회기 80일을 곱하면 560만 원)을 받는다. 여기에 구의회에서 직접 관리하는 활동비가 의원 1인당 400만 원꼴로 책정돼 있다. 광역의원의 경우는 월 90만 원의 활동비에 1일 회의수당 9만 원(회기 120일을 곱하면 1080만 원)으로 기초의회보다 조금 많다.

이에 대해 지방의회 의원들이 받는 활동비가 이미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능과 부패, 회기 불출석 등으로 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지방의원들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이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기초의원의 활동비에 대해 홍○○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무감사와 정책대안 제시라는 의원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월 55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통비와 자료수집 비용도 안 된다. 400만 원의 1인당 공동경비는 의정보고서 작성 같은 개인적인 의정활동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정말 제대로 하려면 입법보좌관도 필요하다. 의회사무처의 의원보좌 기능이 대단히 제한돼 있는 광역의회는 더 그렇다.”

더구나 의회활동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출퇴근하면서 월급을 받는 직업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자영업을 하지 않는 젊은 의원들 대부분은 과외, 학원강사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심지어 신문을 돌리는 의원들도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에 대한 지역주민의 불신이 지금처럼 심한 상황에서 유급제의 도입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김○○ 의원 역시 “현재의 지방의회 인적 구성으로 본다면 유급제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방의원 유급제는 의회의 바로 그 ‘한심한 수준’ 때문에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0년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 유급제를 추진하다 중단한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국회가 유급제를 추진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했다가 기초의원의 60%가 반대한다는 뜻밖의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유급제로 인해 개혁적이고 능력있는 인물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한 현직 의원들의 심중이 드러난 결과”라고 평가했다.

노무현정부는 지방의원의 유급제에 대해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교수는 “지방의회의장단협의회의 건의를 받아 유급제에 대해 깊이 있는 검토가 이뤄졌다”면서 새 정부가 유급제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무자격 의원의 의회 진입을 막는 제도적 보완 없이 바로 유급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박동완 행정자치부 장관 비서실장은 “지방자치법에 이권 개입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의 입후보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지 않는다면 유급화가 무자격 부패 의원들에게 용돈이나 얹어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홍○○ 의원은 “현재 지방정부는 기관위임사무가 70%, 자치사무가 30% 밖에 되지 않아 지방의회 업무가 너무 제한적”이라며 “유급화는 지방분권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방의회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은 의원 유급제를 되도록 빨리 실시하되, 지방의원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 마련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이 기사는 <참여사회>에서 옮긴 것이다.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소개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 판단되어 싣는다.
지금 지방의원들 5명이 해외 연수 중이어서 인터뷰 일정에 변동이 생겼다. 이번미국, 캐나다 공무연수에 참여한 의원은 최호진, 최남석, 임종금, 김광기, 이춘기의원이다. 이들은 오는 5월 30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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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2003-05-23 00:16:01
특집의 지방의회를 돌아보기 위한 자료성격의 기사입니다. 이후의 취재에 참고될만한 자료라고 판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