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력 단절을 딛고 다시 붓을 잡으며
[기고] 경력 단절을 딛고 다시 붓을 잡으며
  • 권혁미
  • 승인 2021.09.23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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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의 힘듬이 주변 환경에서 온다고 믿는 거야. 자신을 바꿀 생각을 안 하고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니 주변도 용서 못하고 자신도 용서 못하지.”
남편으로부터 늘 듣던 말을, 그 날도, 들었다. 그런데 결혼 10년 차가 넘자, 남편 말에 ‘내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데.’하며 ‘욱’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말을 달리 듣기 시작했다.

‘남편은 말할 때 어조가 투박하니, 옳은 말에도 내가 악감정으로 대했는지도 몰라.’
그리고는 ‘잘못’이란 단어를 ‘취약성’으로 치환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신의 고통은 환경의 취약이 아니라 자신의 취약함에서 와. 주변 환경은 강해지지 않아. 자신을 바꿔.’
남편의 말은 내게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여운은 발그림자가 되어 내가 2년 전 가입한 광명미술협회의 <2021 광명미술제>로 나를 향하게 했다. 광명미협은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시행사 <광명미술제>를 작년, 올해 모두 개최했음은 물론, <찾아가는 미술관> 등 여러 행사와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가는 터였다. 항상 SNS 알림으로 많은 정보를 받으면서도 나는 왜 그리 한 번도 용기를 내 참여하지 못했던가.

<2021 광명미술제> 전시장에 도착해 보니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광명시 개청 40주년을 기념하는 ‘광명사랑’이라는 주제로 유소년들과 중고생들에게 키트를 주어 제작하게 한 작품들과, 미협 회원들이 큰 작품으로 시민의 작품을 압도하지 않기 위해 60cm2로 크기를 양보한 작품들이 별자리들처럼 어울려 전시된 광경이었다.

광명미협 상시행사 2021<광명미술제> 광명시청 개청 40주년을 기념, 광명미협 회원뿐 아니라 유소년, 중고등 학생의 작품들이 합동으로 전시되었다. ⓒ광명미술협회

 

 

‘별 하나의 추억’아닌 ‘별자리처럼 어울림’을 꿈꾸며

미협 회원들의 작품 뿐 아니라 여러 학생, 특히 어린이들의 맑은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그만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일각에서는 금력과 부동산을 좇아 바쁜데, 전시장은 온 마음으로 정직하게 광명을 사랑하는 어린이, 청소년의 마음들이 가득했다.

“저, 가입한 지 오래됐지만…, 29일 열리는 <구름산 예술제>…,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러세요. 회원 명부에 있으시군요. 우산 드릴게요.”

죽어있던 나의 이름은 그제야 회원 명부에서 생명을 얻었다. 누가 인정해 줘야가 아니라, 내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내가 깨어나는 것이었다. 아이가 5학년이 된 지금, 나는 아이가 수업하는 동안 하루 세 시간을 투자해 다시 붓을 들고 있던 터였다. 그런 나에게도 차별 없이 우산이 주어졌다.

올해 <구름산 예술제>는 일상 사물인 우산 위에 광명 미협 회원들이 작품을 하고, 그것들을 광명시민회관 야외에 설치함으로써 완성되는 프로젝트로, 광명시 개청 40주년을 기념해 ‘40주년 예술의 힘으로’를 주제로 하고 있다.

관람객을 추첨, 10명의 시민에게 작품을 기증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마음이 고맙기까지 했다.

광명미협 회원들이 재탄생시킨 100여 개의 우산은 10월 2일~11일 광명시민회관 야외에 전시되며, 이중 10개는 추첨을 통해 시민에게 증정된다. ⓒ광명미술협회

 

 

그림자는 몰아낼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빛이 있다.

지금 온 나라, 온 시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시점에서, 나는 꿈을 꾼다.

첫째는, 내 그림자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빛 아래를 내 정체성으로 떳떳이 걸어가는 것이다. 한때 나는, ‘어디서 등단도 안 한 니깟 것이 그림을 그린다고 내 앞에서 붓질이야’라는 말에 상처 받는 나약한 존재였다. ‘내 앞인데 너는 왜 내 말에 반응을 하냐’는 말을 명령으로 듣고 죽어지낸 존재였다.

햇빛이든 달빛이든, 인공의 전등 빛이건, 옛사람의 등잔이든, 빛의 세계는 다양한데도 나는 불꽃놀이 앞에도 나아가지 못하고 내 회색 그림자가 옅어졌다 짙어졌다만 바라보는 존재였다. 침묵의 교실, 침묵의 강의실, IMF와 후폭풍의 시대를 겪으며, 나는 내 정체성으로 벌인 일들을 모두 무가치하고 남들에게 폐만 끼쳤다며 자책이나 하는 존재였다. 인생과의 팔씨름에서 난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겠다.

둘째, 다른 사람이 나아가는 과정이나 결과물을 나의 가치관, 세계관으로 잣대질하지 않겠다. 수년 전 나는 가까웠던 친구에게 충고랍시고 친구의 마음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었다.

“너 지금 그 일, 그만두면 안 되니?”

“왜?”

“형부가, 그 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나도 너만 피 빨리는 일 같아.”

하지만 지금 그 친구는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원거리 출근과 박봉이라는 조건도 불구하고 자기 정체성에 맞는 일에 취업을 했으며, 첫 월급을 타자 말없이 커피 쿠폰 선물로 답을 해 왔다.

그림자가 있음은 빛이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행여 해와 달이 없는 어둠 속에서는, 별들이 있지 않았던가. 해와 달보다 미미해 보이지만 모여서 모여서 별빛들 역시 우리를 비추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별을 읽기도 하고, 별을 이어 별자리 이름 지음을 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던가.

 

자연의 교훈, 또한 사람들의 의지와 약속을 잊지 말자

이제 나는, 별과 별자리를 좌표 삼아 하늘 아래 떳떳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 세계관은 내가 스스로를 확신해야 완성되는 것이었다.

별은 희망의 상징이요, 별자리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합의한 의지요, 약속이다.

이제, 내 삶에서 만나는 온 가치관과 세계관을 밀어내지 않고 다양하게 처신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약속을 아는 책임감이, 나를 긍정하는 긍지가, 나에게 갖춰졌으면 좋겠다.

코로나라는 역경으로 힘겹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행동하고 있으며, 우리 시 사람들이 바쁘고 활기찬 역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명은 살고 싶은 곳이 맞다. 우리나라는 그저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자기 문화가 있는 역동적인 나라이며, 우리의 광명 또한 그럴 것이다.


권혁미
광명시 설월리에서 태어나 한때 서울에서 자라다, 성년이 되어 다시 광명에 돌아왔다. 홍익대에서 도예와 조각을 전공했으나, 마을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먹그림과 글쓰기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 최근 광명에서의 어린 시절을 주제로, 교보문고 전자출판시스템(POD)을 통해 필명 ‘권용화’로 수필을 발행했다. 현재 주부이며, 광명미술협회 준회원으로 있다.

세 번째 꿈이 있다면, 태어난 설월리와 다녔던 서면 초등학교가 개발에 묻혀 문화적으로 몰이해되지 말고, 광명 독립운동사의 단초로서 기억되어 광명의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작은 기념비라도 세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자 세 든 모든 이를 따뜻이 대해 주셨던, 설월리 흙집 집주인 식구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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